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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01143736
· 쪽수 : 292쪽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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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현관에 담요를 깔아서 자리를 마련해주었는데, 어미를 찾아 우는 소리도 이제는 많이 가셨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내 바지 자락만 물면서 졸졸 따라다니는데, 이 녀석이 나를 부모로 여기는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인연이 맺어졌으니, 싫든 좋든 그 끈을 감수하면서 살아가야겠지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든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에 일렁이는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거란 생각입니다. 그러니 내가 늦바람이 난 꼴이지요.
아침 여섯 시경 먼동이 트고, 그 희붐한 햇살에 저 멀리 한라산도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떠났던 고향, 떠나고 싶어 했던 고향에 돌아온 것입니다. 금의환향은 아니지만, 타향에서 낙오자 신세로 갈 곳이 없어 낙향한 것은 아니니,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다행한 일이지요. 그런데 나는 왜 돌아온 것일까?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 얼마간의 세월을 더불어 부대끼며 살다가 죽으면, 그 유골 한 줌 묻히기 위해 이렇게 돌아온 것입니다. 이런 심사 속에는, 그렇게 달아나고 싶어 안달했던 젊은 날의 기억에 대한 뒤늦은 회한도 얼마간 스며 있을 테지요. 나는 고향과 화해를 하고 싶은데, 글쎄요, 고향이 나를 받아줄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주에 와서 뜻밖의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봄철에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2월 말부터 3월까지 거의 줄곧 비가 내렸고, 4월에 들어서도 하루나 이틀 걸러 비가 내리곤 하더니, 하순에 들어서자 이젠 아예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5월 중순까지 간간이 이어진다고 하는데, 제주에서는 이걸 ‘고사리장마’라고 부릅니다. 이 비가 내리면 하룻밤 사이에도 새순이 쑥쑥 돋아나 통통한 고사리들이 들판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하여 붙은 이름이지요. 제주도 고사리는 맛과 향이 좋기로 유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