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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91247565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5-08-27
책 소개
목차
유럽이 시작하는 곳
― 유럽이 시작하는 곳
부적
― 엄마말에서 말엄마로
― 영혼 없는 작가
―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 독일 수수께끼
― 통조림 속의 낯선 것
― “사실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되지만 유럽은 존재하지 않는다”
― 부적
― 전철에서 책 읽기
― 책 속의 책: 사전 마을
― 사랑의 광물학
― 로포텐에서 쓴 메모들
― 고트하르트의 배 속에서
― 일곱 어머니의 일곱 이야기
― 일요일―쉬는 날, 소의 날
― 귀신들의 소리
― 번역가의 문 또는 첼란이 일본어를 읽는다
― 나무에 대해서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
― 글자들의 음악
― 가지
― 심부름꾼
― 빈 병
― 이격자
― 판 이야기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모스크바는 나에게는 결코 도착할 수 없는 도시였다. 내가 세 살이었을 때 모스크바 예술 극단이 처음으로 도쿄에 와 공연을 했다. 우리 부모님은 체호프의 〈세 자매〉 입장권을 사기 위해서 한 달 치 월급의 절반을 썼다.
세 자매 중 하나인 이리나가 그 유명한 대사 “모스크바로, 모스크바로, 모스크바로……”를 말했을 때, 이 목소리는 우리 부모님 귀에 깊숙이 박혀서 그 이후로 부모님의 입에서도 가끔 튀어나왔다. 세 자매도 모스크바에는 끝내 다다르지 못했다. 이 도시는 무대 뒤편에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과 그 꿈의 도시 사이에 놓여 있었던 것은 시베리아가 아니라 극장의 무대였던 것이다.
어쨌든, 그 당시 종종 일거리가 없는 실업자 신세였던 우리 부모님은 이 말을 가끔 인용했다. 아버지가 출판사를 설립하겠다는 비현실적인 계획을 말하면 어머니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모스크바로, 모스크바로, 모스크바로……” 어머니가 마치 다시 한 번 어린아이가 될 수 있기나 한 듯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 이번에는 아버지가 똑같은 말을 했다. 나는 물론 부모님이 무슨 뜻으로 이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이 뭔가 불가능하다는 것과 상관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모스크바라는 말은 항상 세 번 반복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이 마법의 말이 아니라 도시 이름이라는 것을 몰랐다.
-- 「유럽이 시작하는 곳」
나는 나에게 언어를 선물해준, 독일어로 여성 명사인 타자기를 말엄마라고 부른다. 사실 이 타자기로는 타자기 안과 그 몸 위에 지니고 있는 부호들만 쓸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이 부호들을 반복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쳐 나는 새로운 언어에 입양될 수 있었다. 물론 사무실에서 쓴 것은 모두 업무상의 편지들뿐이고 시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타자기를 칠 때 종종 큰 기쁨을 느꼈다. 글자를 하나 누르면 바로 그 글자가 종이 위에 나타난다. 하얀 바탕 위에 검정 글씨로, 비밀스럽게. 새 말엄마를 갖게 되면 유년 시절을 다시 한 번 겪을 수 있다. 유년 시절에는 단어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럼으로써 모든 단어가 각자의 삶을 살게 된다. 이 삶은 단어를 문장 내의 의미에서 해방시켜준다. 심지어 어떤 단어들은 너무나 생명력이 넘쳐 마치 신화 속의 인물처럼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펼쳐 나갈 수 있다.
-- 「엄마말에서 말엄마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