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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20056215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6-06-05
책 소개
목차
1부. 기원
축구는 어떻게 인간을 사로잡았는가
1 축구는 왜 전쟁보다 강렬한가
거친 동네 몸싸움에서 유래한 축구
귀족의 취미에서 노동자의 분노로
영국은 어떻게 공으로 세계를 장악했는가
2 월드컵은 스포츠가 아니다
22번의 대회, 22번의 드라마
스타, 영웅과 상품 사이
남미의 신앙, 미국의 계산
3 한국은 왜 축구에 중독되었나
축국에서 프로축구로
변방 콤플렉스와 승리의 욕망
월드컵이 만든 집단적 열광
2부. 권력
축구는 어떻게 국가를 움직이는가
4 축구는 국민의 종교인가
왜 축구는 남성성을 강화했는가
국가는 왜 축구를 필요로 하는가
애국심은 경기장에서 제조되는가
5 승강제는 공정한가
단 한 경기로 인생이 갈린다
한국 프로축구는 왜 위험한 선택을 했는가
한국 프로축구의 승강제는 흥행 장치인가
6 축구는 거대한 비즈니스다
주요국의 핵심 스포츠 산업
월드컵,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열정은 어떻게 자본이 되는가
3부. 미래
축구는 어디로 우리를 이끄는가
7 변화하는 축구의 모습
진화하는 팬덤 문화
전 세계인의 축제, 변화하는 월드컵
생활체육으로서의 플레이
8 함께 만들어 나가는 플레이
우리 삶에서의 세트피스
축구라는 이름의 거대한 팀워크
킥오프, 왜 다시 운동장에 모이는가
에필로그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책속에서

I부. 기원
축구는 어떻게 인간을 사로잡았는가
1 축구는 왜 전쟁보다 강렬한가
다른 지역에도 축구와 유사한 놀이가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공을 차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기원전 6~7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는 오늘날의 럭비나 미식축구와 유사한 하파르스톤(Harpaston)이라는 경기를 즐겼다고 한다. 실제로 그리스 무덤에서 발견된 기원전 5세기경 대리석상에는 무릎으로 공을 다루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또 고대 로마에도 하르파스툼(Harpastum)이라는 공놀이 경기가 있었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네로황제 등도 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마찬가지로 남미와 우리나라, 일본 등에서도 축구와 유사한 놀이의 흔적이 발견된다. 따라서 축구와 유사한 놀이는 고대부터 거의 전 세계에 걸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축구 금지령
기록으로 보아 축구의 인기가 특히 높았던 곳은 중세 시대의 유럽이었다. 축구는 주로 마을 간의 대결로 진행되었다. 축구의 인기가 너무 높아 1349년에는 에드워드 3세가, 1410년에는 헨리 4세가, 1547년에는 헨리 5세가 그랬듯이 국왕들이 수시로 축구 금지령을 내려야 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국왕들은 왜 축구를 싫어했을까?
명목상의 이유는 축구를 하는 중에 폭력이 난무하면서 혼란이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놀이를 즐기다가 무질서가 발생한다든지, 축구를 하느라 군사 훈련이나 업무를 소홀히 한다는 것 등이었다. 하지만 그 밑에 깔려 있는 실제적인 이유는 축구를 하기 위해 모인 민중이 민란의 주체가 되는 것을 우려해서였다. 민중을 억압하는 전제군주 체제에서 허락받지 않고 그래서 통제되지 않는 민중의 모임은 항상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구 금지령이 수시로 내려졌다는 것은 역으로 생각해 보면 금지령의 실효성이 그리 높지 않았음을 말한다. 축구는 처벌을 무릅쓰고라도 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놀이였던 것이다.
축구 금지령이 영국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19세기까지 프랑스의 브르타뉴와 피카르디 지방에서 성행하던 술(soule)은 참가자 수, 경기 시간, 경기장 규격 등도 없이 그저 신체적인 수단을 모두 사용하여 술이라 불리는 공을 적진에 옮겨 놓는 경기였는데, 경기가 워낙 격렬하다 보니 역시 당국이 금지령을 내리곤 했다.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지방에서는 축구를 칼슘이라고 불렀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에 따르면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열렬한 축구팬이었고,《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도 축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심지어 클레멘스 7세, 레오 9세, 우르바노 8세 등 근엄함을 상징하는 교황들도 축구를 즐겼다고 한다.
술은 나무로 된 공, 혹은 건초·머리카락·동물의 방광을 채워 넣은 가죽 공을 사용했으며, 발뿐만 아니라 손, 막대기(crosse)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세까지 즐겼던 축구가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축구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중세 시대의 축구는 공을 차거나 밀거나 들고 뛰어서 상대 마을의 목표 지점으로 옮긴다는 정도의 규칙만 따를 뿐 정해진 경기장도 없었고, 참가 인원의 제한도 없었으며, 심판도 없이 몸싸움이나 주먹질, 발로 차기 등을 모두 허용하는 경기였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종의 패싸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