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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25514604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08-01-14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엄마의 삶이 싫었다. 비위나 맞추는 웃음, 아양,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간살이 그녀의 무기였다. 엄마는 항상 담배와 술, 정체도 모르는 곳에서 흘러들어온 약에 절어 있다. 손질 한 번 하지 않은 피부는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졌으면서, 온종일 '남자가 필요해. 남자가 필요해' 하며 신음하고 있다. 저녁 불빛은 물론, 밝은 대낮의 햇빛 아래 엄마의 모습은 역겨울 정도로 추했다. 내가 남자라도 도망치겠다는 말을 엄마에게 얼마나 많이 퍼부어댔는지. ... 그런 엄마를 곁에서 보며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팔아 돈을 받는 여자는 내게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청결한 존재였다. 아무것도 팔지 못하고, 판 것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아니 받으려고도 하지 않은 채 남자들만 쫓아다니는 외로움에 비하면 남자에게 성을 파는 것의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니리라. - 25~26쪽에서
언제나 어떤 남녀든 서로 얼마나 상대를 사랑하는지 제대로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개중에는 전혀 표현하지 못한채 오해만 깊어져 끝나는 관계도 있다. 표현하여 노력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열심히 표현한 말이나 행동이 때로는 허무하게 우주 속으로 사라지고, 제대로 전하지 못한 말만 끊임없이 가을 낙엽처럼 굴러떨어져 수북이 쌓인다. 어쩌면 남자와 여자는 깊고 어두운 늪 속에서 더듬거리며 서로를 찾아내어 아무 말 없이 깊은 포옹을 하는 것이 최상일지 모른다. - 본문 100쪽에서
쏴아, 하고 마른 바람 소리가 나는 듯하더니 바로 창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정원의 나뭇잎을 때리고, 풀을 적시고, 축축한 대지 내음을 피워 올렸다. 우리는 비가 만드는 물 우리 안에 갇힌 채 깊이 맺어지고 있었다.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살아 있다'고. '살고 싶다'고. 살아 있다, 살고 싶다, 살아 있다, 살고 싶다... 호흡이 격렬해지며 목 안쪽에서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팔걸이 의자의 다리가 삐걱삐걱 울렸다. 물소리를 뚫고 저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 본문 302~303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