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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25515595
· 쪽수 : 167쪽
· 출판일 : 2008-01-24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조금 다르지만 말야. 싸구려 여관이라는 곳. 프런트 같은 것도 없을 법한 곳으로 아무라도 들어가자고 생각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거나 방 열쇠 같은 것도 몸 어딘가에 갖고 다니면 금방 고장 나는 물건에, 그런 상황에서 나 혼자 자고 있으면 살아 있는 건지 이상하게 생각되는 거야. 글쎄... 누군가가 나를 노리고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을 몽땅 털리고 죽일 정도로,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실제로 간단한 것으로, 그렇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목표물이 되지 않고 그곳에서 자고 있다. 그런 일이 불가사의 하게 생각되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째서 아무도 죽이러 오지 않는 것일까, 하고 자꾸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럴 때 그런 단체 손님이 와아와아 들이닥쳐 엄청나게 큰 기침을 하면 안심하고 잠이 들 수 있는 거야." - 본문 87~88쪽에서
혼자 일어나 혼자서 아르바이트를 나가고 정식을 먹고 혼자서 귀가해 맥주를 마시고 잠이 든다. 그런 독거노인 같은 생활을 상상하니 부동산의 문을 여는 일은 아무래도 할 수 없었다. 으시으시한 코뮌놀이라고 마리코는 말했지만 나는 역시 여행의 여운이 남은 그 집에서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여자들이나, 매일 밤 개에게 먹이를 주는 무뚝뚝한 남자나, 성인 비디오의 광고 카피를 쓰는 여자와 같이 있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 본문 127쪽에서
왠지 따분하다고 느꼈던 것이 여행을 떠나자고 마음먹었던 계기였다. 내일도 모레도 똑같은 생활은 일주일 후에도 한 달 후에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자신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미 알아버린 것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리를 깨달았다는 그런 고상한 것은 아니다. 좀 더 시시한 것이다. 가령 어느 날 밤, 보고 싶지 않지만 보고 있으면 웃어버리는 버라이어티방송을 보면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나는 그 컵라면을 그냥저냥 맛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냥저냥 맛있는 컵라면을 찾았다는 것이 이미 보잘것없는 행복이 되고 있다. 그러면 아마 일주일 후에도 그 방송을 보면서 시시하다고 중얼거리거나 그러면서도 웃음을 터뜨리거나 하면서 역시 이 컵라면을 먹고 있을, 그런 일을 거의 확신하듯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 본문 29~30쪽에서
다섯 나라이다. 문득 생각이나 비행기를 타고 반 년 동안 다섯 개의 나라를 걸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다른 나라에 갈 때마다 먹는 음식의 이름을 외우고 가격 깎는 법을 외우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당황스러움을 외우고 온통 내 자신만의 것인 하루를 내 방식대로 보내게 되었다. 극적인 일이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내 자신이 변했다든가 하는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6개월은 이를테면 대단한 여름휴가 같은 것으로 그 여름휴가조차 영원히 계속되면 지겨워질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여름휴가 다음에 휘황찬란한 나날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저 시끄러운 커플이 가져온 냄새와 색채는 내게 강한 위화감을 준다. 목적지가 다른 비행기에 몸을 싣고 도착해서 장소를 착각한 것도 모른채 그대로 생활을 시작해버린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을 받는다. 본문 - 56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