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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97170586
· 쪽수 : 279쪽
· 출판일 : 2020-01-30
책 소개
목차
허공을 차다
빗속을 걷다
새를 운반하다
파슬리와 온천
마마보이
둘이 살기
울어, 아가야, 울어
첫사랑 찾아서 떠난 여행
역자 후기
리뷰
책속에서
이 도시에 내리는 비는 기름 같다. 끈적한 액체가 선을 그리듯 떨어져 몸에 달라붙는다. 여기 사람들은 비에 젖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맑게 갠 하늘 아래를 걸어 다니듯 다닌다. 옆에 서 있는 엄마는 젖어서 군데군데 색이 변한 종이봉투를 소중하게 껴안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검은 머리카락이 뺨과 목덜미에 달라붙어 있다. 혈관이 비칠 정도로 하얀 피부 위로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다. 비인지 땀인지 모르겠다.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는 소녀 시절의 엄마와 옆에 서 있는 나이든 엄마가 겹친다. 당황스러울 만큼 생생하게. 엄마는 예쁜 소녀였을지도 모른다.
「빗속을 걷다」 중에서
엄마는 젊은 여성처럼 고개를 약간 숙이고 링거가 꽂히지 않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운을 입은 엄마의 무릎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 뭔가 열심히 이야기하며 웃고 있었다. 창밖에서 강렬하게 들어오는 햇살 탓에 그들의 윤곽은 빛을 발하면서 부옇게 보였다. 환자와 문병객이 아닌 늙음이나 병과는 무관한, 더 과장되게 말하면 혐오나 증오와도 무관한, 싱그럽고 청초한 무언가로 보였다.
「파슬리와 온천」 중에서
나는 엄마를 몰랐다. 엄마는 나를 알고 있었을까. 내 입으로 나쁜 짓을 한 이유를 말하게 하고, 거짓말과 사실을 섞어 꾸며서 말하게 하고서도 나란 인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지금은 알고 있는 걸까. 나는 어린아이처럼 무엇이든 엄마에게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전화를 걸어 사유리와 어디에서 만났고 왜 결혼하기로 했는지, 노자키 문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지금 내가 파견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오야마다 아이코에게 날마다 어떤 말을 듣고 있는지, 어떤 이유에서 이 결혼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지, 왜 데즈카 씨와 잠자리를 갖게 되었는지. 나의 일상을 이루고 있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리놀륨 바닥에 슬리퍼를 신은 어머니의 발을 보며 홀랑 털어놓고 싶었다.
「마마보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