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27802518
· 쪽수 : 406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부 이월의 방
2부 낯선 삶
3부 게임
4부 집과 집
에필로그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 남자, 쓸쓸하구나. 연숙은 택시에 오르는 그의 지친 등을 보며 생각했다. 그의 얼굴에 짙은 슬픔이 드리워 있었다. 그 얼굴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화가 난 사람의 얼굴도, 슬픈 얼굴도 아니었다. 종종 그녀를 유혹하는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남자들의 얼굴도 아니었다. 그런 얼굴을 연숙은 무수히 보았다. 백화점에 오는 손님들의 얼굴은 우월감과 욕망으로 정액처럼 끈적거렸고, 그들과 오래 마주서 있다 보면 비린내 때문에 배 속이 울렁거려 혼자 화장실 같은 곳에 들어가 큰소리로 욕설이라도 내뱉어야 다소간 속이 풀렸다. 그러나 지금 대일의 얼굴은 마치 뭔가 중요한 것을 분실했는데 그것을 찾아나서야 할지 포기하고 말아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 같은, 그런 얼굴이었다.
그는 가서 아내를 안아주고 싶었다. 비틀어진 목과 무력하게 방치한 다리, 거기에서 슬픔을 보는 것은 그녀가 슬퍼서인지 그가 슬퍼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창 너머에서는 반쯤 투명해진 그녀의 몸을 통과하여 강과 차들이 흘러가고 가로등이 빛났다. 장우의 몸을 통과하여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구름이 흘러갔다. 문득 그는 깨달았다. 이제 그들 부부 사이에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 슬픔, 그리고 외로움을, 기껏해야 위로를, 때로는 의구심을, 경우에 따라서는 쓰디쓴 배신감과 원한과 분노를, 원망을, 벽돌처럼 참혹한 이런 침묵을 주고받을 수 있을 뿐일 것이다.
기분이 더러웠다. 배우자를 강간하는 것이 범죄냐 아니냐, 하는 논쟁을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런 논쟁 자체가 상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는데, 범죄가 분명하다는 쪽으로 토론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 토론에 따르면 상곤은 범죄를 저지른 셈이었다. 월요일 아침, 그는 성범죄로 하루를 시작했다. 도대체 이런 억울한 노릇이 어디 있단 말이냐. 어째서 아내는 그를 성범죄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