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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유고 4

고산유고 4

윤선도 (지은이), 이상현, 이승현 (옮긴이)
  |  
한국고전번역원
2015-06-30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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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유고 4

책 정보

· 제목 : 고산유고 4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88928403141
· 쪽수 : 504쪽

책 소개

우리나라 문학사 정치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윤선도의 문집이 아직까지 완역되지 못한 것은 내용의 난해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평생 한문 번역에 정열을 쏟아 온 이상현 선생이 맡아 필생의 역작으로 꼽으며 1년에 한 권씩 번역하고 있다.

목차

일러두기 ·· 4

고산유고 제6권 상 별집

시 詩
인간의 역사책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각기 다른 왕조의 임금을 섬긴 내용을 접하고서 느낀 소회를 적다 신해년 人間讀史各君臣 辛亥 ·· 11
문인이 〈육아〉 시편을 전폐한 것에 대하여 신해년 門人廢蓼莪 辛亥 ·· 16
시름 임자년 愁 壬子 ·· 19
전당의 호수를 봄날에 바라보며 錢塘春望 ·· 23
맑은 바람 밝은 달은 돈 한 푼 안 들여도 바로 나의 것 신해년 淸風明月不用一錢買 辛亥 ·· 28
눈을 무릅쓰고 고산을 방문하다 冒雪訪孤山 ·· 33
가구가 수레보다도 적은 사람 家具小於車 ·· 40
객의 마음을 흐르는 물에 씻다 무자년 客心洗流水 戊子 ·· 50

부 賦
취선루의 과제(科題)에 답한 부 醉仙樓賦 ·· 57
스승이 천자에게 일러줄 때에는 북면(北面)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부 詔於天子無北面賦 ·· 64
위로 올라가서 옛사람과 벗을 하는 것에 대한 부 신해년 尙友賦 辛亥 ·· 72
사마천(司馬遷)이 자기의 저서를 명산에 보관한 것에 대한 부 著書藏名山賦 ·· 79

논 論
동중서와 가의의 우열에 대해서 논하는 글 董仲舒賈誼優劣論 ·· 86
꽃가지 하나를 꽂은 것에 대해서 논하는 글 簪花一枝論 ·· 95
증점이 요순의 기상을 지닌 것에 대해서 논하는 글 曾點有堯舜氣象論 ·· 100

책 策
봄에 대한 대책문 對春策 ·· 107
병가의 장기에 대한 대책문 對兵家長技策 ·· 120
명절에 대한 대책문 對名節策 ·· 134
비오고 볕 나는 것에 대한 대책문 對雨暘策 ·· 147
법제에 대한 대책문 對法制策 ·· 168
경전의 종지에 대한 대책문 對經傳宗旨策 ·· 179

표전 表箋
당나라 한림학사 백거이가 장수를 통제하고 군대를 통령하는 자리에 중관을 임명하지 말라고 청한 것을 본떠서 지은 표문 擬唐翰林學士白居易請勿以中官爲制將都統表 ·· 187
태산의 오송을 대신하여 대부에 봉해 준 것을 사양하는 표문
代泰山五松辭封大夫表 ·· 193
고려 예부 원외시랑 곽여가 약두산 한 봉우리를 하사해 준 은혜에 대해 사례한 것을 본떠서 지은 전문
擬高麗禮部員外侍郞郭輿謝賜若頭山一峯箋 ·· 200
당나라 한림학사 이강이 역적의 재산을 절서의 백성들에게 하사하여 금년의 조부로 대신하게 해 달라고 청한 것을 본떠서 지은 표문 擬唐翰林學士李絳請以逆人資財賜浙西百姓代今年租賦表 ·· 206

고산유고 제6권 하 별집

가사 歌辭
산중신곡 山中新曲 ·· 217
만흥 漫興 ·· 217
조무요 朝霧謠 ·· 218
하우요 夏雨謠 ·· 219
일모요 日暮謠 ·· 219
야심요 夜深謠 ·· 219
기세탄 饑世歎 ·· 219
오우가 五友歌 ·· 220
산중속신곡 2장 山中續新曲 二章 ·· 221
추야조 秋夜操 ·· 221
춘효음 春曉吟 ·· 221
고금영 古琴詠 ·· 221
반금에게 주다 을유년 贈伴琴 乙酉 ·· 224
초연곡 2장 初筵曲 二章 ·· 225
파연곡 2장 罷宴曲 二章 ·· 226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 ·· 227
봄 ·· 227
여름 ·· 230
가을 ·· 233
겨울 ·· 236
어부사 여음 漁父詞餘音 ·· 241
몽천요 3장 夢天謠 三章 ·· 242
견회요 5편 遣懷謠 五篇 ·· 245
우후요 雨後謠 ·· 247

고산유고 부록

시장 諡狀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의금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성균관사 오위도총부도총관 행 통정대부 예조 참의 윤공의 시장
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春秋館成均館事五衛都摠府都摠管行通政大夫禮曹參議尹公諡狀 ·· 251

저자소개

윤선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시대에 활동했던 문인이자, 시조 작가다. 본관은 해남(海南)이고, 자(字)는 약이(約而)이며, 호(號)는 고산(孤山) 혹은 해옹(海翁)이다. 1612년 26세의 나이로 진사(進仕)에 급제했고, 성균관 유생 신분으로 1616년 당시의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일파를 탄핵하는 상소(<병진소>)를 올렸다가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이 시기 유배지에서 <견회요>와 <우후요> 등의 시조를 창작했다. 1618년 유배지가 경상도 기장으로 옮겨졌다가, 인조반정(1623) 직후 대사면령이 내려 유배에서 풀려 전라도 해남으로 돌아갔다. 남인(南人)에 속했던 윤선도는 본격적으로 관직에 나아가기 전부터 치열한 당쟁의 와중에서 유배를 떠나는 등 시련을 겪었던 것이다. 42세(1628)의 나이로 별시 문과에 장원 급제를 해, 당시 이조판서이던 장유(張維)의 천거로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되었다. 47세 때인 1633년에 다시 증광 별시에 장원으로 급제해, 예조정랑에 임명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나 해남에서 생활하던 무렵, ‘병자호란’(1636)이 발발하자 향족(鄕族)과 집안의 노복(奴僕)들을 이끌고 배에 태워 강화도로 향했다. 강화도 인근에서 강화도와 남한산성이 이미 적군에 의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 태풍을 피해 잠시 머물던 곳이 바로 보길도였다. 이후 윤선도는 자연 풍광이 수려한 보길도에 정착하게 된다. 52세 때인 1638년에는 병자호란 당시 서울을 지척에 두고도 ‘임금을 알현하지 않았다(不奔問)’는 혐의로 탄핵을 받고, 경상도 영덕으로 유배를 갔다가 이듬해에 풀려나게 된다. 이후 해남에 돌아와 집안의 대소사를 차남에게 맡겼으며, 1640년부터 해남의 금쇄동에 거처를 마련해 은거했다. 이후 10여 년간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보길도와 금쇄동을 오가며 자연 속에서 한가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의 나이 56세 때인 1642년에 금쇄동에서 <산중신곡> 연작 18수의 시조 작품을 창작했으며, 2년 후에는 <산중속신곡> 2수와 <증반금> 등의 시조를 짓기도 했다. 윤선도가 63세 되던 1649년 인조(仁祖)가 승하하고, 세자로 있던 봉림대군이 효종(孝宗)으로 즉위했다. 윤선도는 효종의 대군 시절 사부를 지낸 바 있었기에, 이해에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릴 요체를 논한 <기축소(己丑疏)>를 올렸다. 1651년에는 자신이 거처하던 보길도의 부용동에서 <어부사시사> 40수를 창작했다. 66세가 되던 1652년에는 왕의 특명으로 관직에 나아갔다가, 탄핵을 받고 사직했다. 이때 경기도 양주의 고산에 있는 별장에 머물면서 <몽천요> 3수를 창작했다. 하지만 이내 효종에 의해 다시 관직이 제수되어 조정에 나아갔고, 당시 권신인 원두표(元斗杓)의 비리를 논한 상소를 올렸다가 관직을 삭탈당해 해남으로 돌아갔다. 1657년(71세)에는 조정에 불려 갔다가 다시 관직에 제수되었고, 1659년에 효종이 승하해 왕릉을 정하는 산릉의 간심(看審)에 참여하기도 했다. 남인을 대표한 논객으로 예송(禮訟)에 참여했다가 패배해, 당시 권력을 장악한 서인들에 의해 1650년 함경도 삼수에 유배되었다. 1665년(79세)에는 전라도 광양으로 유배지가 옮겨져 백운산 아래의 옥룡동에서 거처하기도 했다. 이후 2년 후인 1667년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인 해남으로 돌아왔다. 85세의 나이로 보길도 부용동에 있는 거처 낙서재(樂書齋)에서 운명해, 해남의 금쇄동에 묻혔다. 사후에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었으며, 충헌(忠憲)이라는 시호(諡號)를 하사받았다. 윤선도의 삶은 한마디로 파란만장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사부로 있었던 봉림대군이 후에 효종으로 등극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중앙 정계의 요직을 두루 거치는 등 비교적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생애의 절반 이상을 관직보다는 유배지 은거지에서 지내야만 했으며, 반대 당파의 비방에 결연하게 맞서며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사(經史)에 해박했으며, 의약과 복서 및 지리 등에도 널리 통했다고 한다. 저서로는 ≪고산유고(孤山遺稿)≫(6권 6책)가 있다. <어부사시사>·<오우가> 등 75수의 시조를 남겼으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빛낸 작품들로 인해 ‘자연미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송강 정철과 더불어 조선 시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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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한문고전번역가. 1949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 초명은 거출(巨出), 호는 저곡(?谷)이다. 친구의 죽음을 접한 뒤 생사의 문제에 빠져들어 종교에 심취했다가 1968년 서울대 종교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이후 자아의식의 기원 문제를 화두로 잡고 골몰하다가 1980년 몽환에서 깨어났다. 1982년부터 동국대 불교대학원과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을 다녔으며, 1984년 삼계교(三界敎)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국역연수원 상임연구원이 되었다. 현재 진정한 광복을 이룬다는 신념으로, 우리 고전의 번역과 교육에 힘쓰고 있다. 신문에 연재한 한국역사인물 유적탐방기행문을 묶어 《역사의 고향(상하)》을 냈으며, <추사의 불교관> 등의 논문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번역 사업에 참여한 뒤에, 한국문집총간 중 《상촌집》, 《계곡집》, 《택당집》, 《간이집》, 《목은집》, 《포저집》, 《가정집》, 《도은집》, 《고운집》, 《계원필경집》, 《죽석관유집》, 《고산유고》 등을 번역하였고, 한국불교전서 중 《원감국사집》, 《대각국사집》, 《기암집》, 《부휴당대사집》, 《침굉집》, 《사명당대사집》, 《송운대사분충서난록》, 《무용당유고》, 《청허당집》 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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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79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교육원 연수과정을 졸업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번역 및 편찬에 참여하였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권역별거점번역연구소협동번역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번역서로 《창계집》, 《명고전집》, 《승정원일기》, 《동천유고》, 《고산유고》, 《역주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 교점서로 《교감표점 승정원일기 인조41》, 《교감표점 창계집1》, 편찬서로 《한국문집총간편람》, 《한국문집총간해제8․9》, 논문으로 〈초의 의순의 시문학 연구〉, 〈기리총화 연구〉, 〈김시습의 장량찬의 이면〉, 〈서형수의 명고전집 시고를 통해 본 원텍스트 훼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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