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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집

청음집

(대쪽처럼 곧게 살다)

김상헌 (지은이), 정선용 (옮긴이), 조경구 (감수)
한국고전번역원
12,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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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집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청음집 (대쪽처럼 곧게 살다)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9788928404117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16-09-19

책 소개

김상헌의 문집 '청음집'에는 김상헌과 그의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 낸 방대한 양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청음집'을 통해 우리는 피상적, 단편적으로 이해했던 그의 인물 면모와 당시 역사 현장을 좀 더 구체적,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목차

한국고전선집을 펴내며 4
김상헌은 누구인가 15

제 1 장 땅끝으로 떠돌다
길가에 있는 무덤 27
홍도와 벽도 28
가을날의 회포 29
객지에서 가을을 맞다 31
이성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을 전송하다 33
제주도로 부임하던 도중 비를 만나 공주에 머물다 34
여산으로 가는 도중에 읊다 36
해남의 객관에서 순풍을 기다리다 38
정의현 객사에서 40
제주에 있는 충암의 사당에 올린 제문 42
도산초당의 밤비 45
길을 가는 도중에 날씨가 갠 것을 기뻐하다 47
아침에 늦게 일어나다 49
정양사에서 비를 만나 묵다 51
홍원의 객사에서 53
마천령을 넘어서 임명역에서 묵다 55
사월이 되어서야 꾀꼬리 우는 소리를 듣다 57
축석령에서 도봉산을 바라보다 58
선죽교에서 느낌이 있어 읊다 59

제 2 장 석실로 돌아가다
호당에서 비가 온 뒤에 짓다 65
유학의 정통을 지키다 67
봄이 다 지나가다 72
월정 선생을 곡하다 74
고향에 돌아가고파 78

제 3 장 다시 조정으로 나아가다
북저 김 판서에게 답하는 편지 85
사간원에 있으면서 여덟 가지 조짐에 대해 올린 차자 89
구원병을 보내 달라고 중국에 요청한 글 93

제 4 장 문명(文名)을 드날리다
신안에서 만난 보졸의 노래 103
선사포에서 106
바다 신에게 제사하는 글 108
장산도에서 사흘 동안 바람에 막혀 머무르다 112
등주에서 국화를 보고 느낌이 있어서 113
등주에서 한밤중에 앉아 있다가 딱따기 치는 소리를 듣다 115
중국 사람 오청천의 시에 차운하다 117
청천 오대빈에게 화답하다 119
안평중이 살았던 옛 마을을 지나며 122
제남을 떠나면서 124
북경에 들어가다 126
옥하관에서 128
섣달 그믐날 밤의 나그네 회포 130
한식 132
청명 133

제 5 장 나랏일에 온 마음을 다하다
강홍립의 관작을 회복시키지 말라고 청한 계사 139
중국의 물화를 오랑캐에게 주지 말기를 청한 차자 141
은계역에서 144
어디에 있을 때 술을 잊지 못할까 145
청평산으로 들어가다 147
청평산 골짜기를 나오다 148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기를 청한 차자 150
청백리의 선발에서 빼 주기를 청한 상소 154
전원으로 돌아가다 157
여강에서 상주로 부임하는 동생 중정과 이별하면서 159

제 6 장 국서(國書)를 찢고 통곡하다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일 - 「연보」의 기록 165
나의 큰형님 우의정 선원 선생의 행장 181
술에 취해 부르는 노래 186
행년 188
자신에 대해 해명하다 190
밤중에 일어나 홀로 걷다 193

제 7 장 대절(大節)을 빛내다
명나라를 치기 위한 군대를 파견하지 말기를 청한 상소 199
수재 김희진에게 주다 206
인조가 서찰과 가죽옷을 보내준 데 대해 사은하는 상소 208
손자 수증 형제에게 부치는 편지 211
압록강을 건너면서 학곡 홍서봉에게 남겨 주다 213
섣달 그믐날 밤을 새우면서 215

제 8 장 감옥에서 고초를 겪다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짓다 221
봄에게 묻다 222
어린아이들이 물을 긷는 것을 슬퍼하다 224
등불 앞에서 225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읊다 226
의주로 돌아오다 227
의주에 도착하여 연명으로 올린 상소 229
의주에서 생일을 맞아 읊다 232
압록강에서 작별하면서 읊다 233
감회를 읊다 235
명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다 237
맹영광에게 남겨 주다 239
표정준에게 지어 주다 241

제 9 장 정적(政敵)과 화해하다
시를 통해 대화하다 247
즐거웠던 때를 회상하다 252
상대방을 이해하다 254
서로 자신의 뜻을 말하다 258
경도와 권도를 논하다 263

제 10 장 대로(大老)로 존숭받다
고국으로 돌아와 성문 밖에 머물러 있으면서 올린 상소 271
사정을 진술하는 상소 273
한밤중에 일어나 읊다 277
송시열에게 보낸 편지 278
임금이 의원과 약물을 내려 준 것에 대해 사례하다 280
죽은 뒤에 올린 상소 281
자손에게 남긴 유언 284
청음 자신이 지은 묘지명 286

제 11 장 별이 되어 빛나다
청음에 대한 사신(史臣)의 논평 293
우암 송시열이 지은 만사 295
잠곡(潛谷) 김육(金堉)이 올린 제문 297
우암 송시열이 지은 청음의 묘지명 301
북관행 305
효종 대왕의 묘정에 배향하면서 내린 교서 307
영조가 현절사(顯節祠)에 치제하면서 내린 제문 309
정조(正祖)가 지은 청음에 대한 제문 311

연보 315

저자소개

김상헌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서간노인(西磵老人)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척화파의 영수로서 병자호란 때 항복을 반대하고 항전을 주장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을 요구하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중국 심양으로 압송되었다. 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갖은 위협을 받으면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다가 6년 뒤에 풀려나 귀국하였다. 명나라를 숭상하고 청나라를 배척하는 숭명배청 (崇明排淸)의 상징적 인물로서 조선 후기 북벌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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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의 다른 책 >
정선용 (엮은이)    정보 더보기
1957년 충북 괴산 연풍에서 태어났다. 충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을 졸업하였다. 2018년에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정년퇴직하고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자문위원으로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번역에 참여하였다. 번역서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고종) 외에 《해동역사》, 《백제사자료집》, 《잠곡유고》, 《학봉전집》, 《지산집》, 《사계전서》, 《우복집》, 《청음집》, 《삼탄집》, 《동명집》 등 19종 70여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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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한문으로 된 우리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한국고전번역원이란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지은 책으로는 《한문에게 말 걸 기》, 《선비들과 보내는 하루》, 《생각, 세 번》, 《1등 했는데 왜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아하! 자연에서 찾은 비 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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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김상헌은 누구인가

조선 후기 학자 이덕무(李德懋)는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인물을 들면서 덕(德)으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전략(戰略)으로는 충무공 이순신, 절의로는 청음 김상헌을 꼽았다. 청음은 어떠한 삶을 살고 어떻게 절의를 지켰기에 후인들에게 이처럼 존경과 흠모를 받았던 것일까?
- 「김상헌은 누구인가」중에서

제 1 장 땅끝으로 떠돌다

길가에 홀로 있는 외로운 무덤 路傍一孤塚
그 자손들 지금 모두 어디 있는가 子孫今何處
오직 한 쌍 돌사람만 그 앞에 서서 唯有雙石人
오랜 세월 안 떠나고 지키고 있네 長年守不去

☞ 청음이 언제 이 시를 지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저작 연대순으로 편찬된 『청음집』의 맨 앞에 수록되어 있고 시의 구성이 아주 단순한 것으로 볼 때, 어린 시절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길을 가던 중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무덤을 보고서 느낀 심정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이 시를 본 사람들은, 청음이 장차 뛰어난 문장가가 될 것을 예견했다고 한다.
- 「길가에 있는 무덤」 중에서

옛적에는 영주라고 불리던 이곳 舊號瀛洲地
오늘날엔 작은 해동이라 칭하네 今稱小海東
신령님은 어느 대에 내려왔는가 神從何代降
교화 펴져 성인 시대 풍습과 같네 風入聖朝同
오랜 세월 겪은 성은 황폐해졌고 閱世荒城古
하늘 닿은 바닷물은 텅 비었구나 浮天積水空
객이 오고 차가운 해 저물 무렵에 客來寒日暮
외론 피리 바다 안개 속에 울리네 孤角瘴煙中

☞ 해남에서 열흘 남짓 머문 청음은 1601년 9월 21일에야 배에 오를 수 있었다. 서울을 떠나온 지 30여 일 만에 비로소 배에 오른 것이다. 거센 파도 속에서 여러 차례 조각배가 뒤집혀 물고기 밥이 될 뻔한 위험을 겪으며 여러 섬을 거쳐 마침내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 「정의현 객사에서」 중에서

제 2 장 석실로 돌아가다

봄이 가는 시골 마을 찾아오는 사람 없어 經春門巷斷來尋
버들개지 다 떨어진 정원 안은 깊숙하네 落盡楊花一院深
주렴 밖에 해 높을 때 잠에서 막 깨어나니 簾外日高初睡起
건너편 숲 꾀꼬리가 맑은 소리 보내오네 隔林黃鳥送淸音

☞ 석실로 들어온 청음은 조정에 있을 때와는 달리 하루하루 한가롭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봄날 아침 해가 높이 뜰 때까지 늦잠을 자다가 일어났다. 그때 건너편 숲에서 꾀꼬리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음은 한가로운 늦봄의 나른한 정취를 시로 읊었다.
-「봄이 다 지나가다」 중에서

이황은 이보다 더 뛰어난 점이 있었습니다. 선유(先儒)들이 쌓아 둔 깊은 의리를 연구하여 밝히고 어리석고 몽매한 후학들을 계도(啓導)하였습니다. 궁격(窮格)의 공부를 늙어서도 더욱 독실하게 하면서 참되게 쌓아 가며 오래도록 힘을 쏟았습니다. 그의 학문적 조예는 실로 후학이 쉽게 언급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온 세상의 선비가 모두 올바른 길로 나아가 성리학을 높이고 이단을 물리칠 줄 알게 한 것이 과연 누구의 공이겠습니까? 그를 우리 동방의 주자라고 하더라도 참으로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 청음은 이 상소를 올린 것 때문에 정인홍 일파와 정인홍을 총애하던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다시 외직인 광주 목사(廣州牧使)로 나가게 되었다. 청음의 청렴하고 곧은 성품을 잘 알고 있던 유근(柳根)은 이 소식을 듣고 농담 삼아 다른 사람들에게 “광주의 샘물이 청음의 청렴한 기운 때문에 더욱더 차가워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유학의 정통을 지키다」 중에서

제 3 장 다시 조정으로 나아가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있습니다. 명철하신 성상께서 왕위에 오르고 깨끗한 사류(士流)들이 모두 조정에 나와서 아침저녁으로 정사를 논의한 지가 이미 반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기강의 문란함과 민생의 근심 및 변방 방비의 허술함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태평성대의 다스림을 끝내 볼 수가 없는 것입니까?

☞ 반정을 주도한 공신들은 정국을 이끌어 본 경험이 없어서 반정 초기의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김류 역시 어지러운 정국을 수습하기 위하여 골몰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청음과 깊은 친분이 있고 반정 모의에 참여하였던 계곡 장유를 통해 청음에게 편지를 보내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북저 김 판서에게 답하는 편지」 중에서

신들이 삼가 살펴보건대, 전하께서는 반정(反正)하신 초기에는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모든 일을 공경하고 엄숙하게 처리하였으며, 모든 생각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백성에게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고, 신하들에게 비판받을까 염려하셨습니다. 탕왕(湯王)이 깊은 연못에 떨어질 것처럼 조심하던 것이나, 문왕(文王)이 조마조마해하며 공경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1년이 지났는데도 정치가 더 나아지지 않고, 중간에 변란을 겪어 나라가 거의 나라 꼴이 아니게 되었단 말입니까?

☞ 대사간에 제수된 청음은 동료들과 상의한 다음, 임금의 학문이 퇴보하고, 공정한 도가 폐해지고, 직언을 하는 언로가 막히고, 요행을 노리는 길이 열리고, 탐욕스러운 자가 기승을 부리고, 잡스러운 사람들이 궁궐 사람들과 내통하고, 궁궐 안의 금법이 해이해지고, 여자가 청탁하는 것이 시행되는 등의 여덟 가지 나쁜 조짐이 있다고 하면서, 이를 조심하라는 내용으로 차자를 올렸다.……
-「사간원에 있으면서 여덟 가지 조짐에 대해 올린 차자」 중에서

제 4 장 문명(文名)을 드날리다

팔월이라 서리 내려 국화 향기 풍기거니 八月微霜菊有芳
타향 땅의 나그네는 몇 배는 더 맘 상하네 異鄕爲客倍情傷
멀리서도 알겠구나 고향 집의 울 아래에 遙知故國東籬下
무수하게 국화 피어 땅이 온통 누럴 것을 無數金錢滿地黃

☞ 선사포를 출발한 지 한 달 정도 지나서 청음은 드디어 산동반도의 등주(登州)에 도착하였다. 등주에 도착하여 처음 본 것은 고향 땅에서도 9월이면 피어나는 누런 국화였다. 국화를 본 청음은 도성을 출발하기 전에 자신이 직접 뜰 앞에 심어 놓은 국화가 생각났다.……
-「등주에서 국화를 보고 느낌이 있어서」 중에서

누각 소리 낮게 깔려 밤은 끝을 향하는데 玉漏聲沈夜向闌
꿈을 깨자 외론 촛불 아직까지 남아 있네 夢回孤燭尙留殘
객지 회포 쓸쓸하여 돌아갈 맘 절실하고 病懷寥落思歸切
시상은 다 엉클어져 시를 짓기 어렵구나 詩意徘徊着語難
그림자를 마주하여 술잔 들어 자작하다 對影酒杯聊自勸
주렴 걷자 눈 속의 달 홀로 와서 보는구나 開簾雪月獨來看
도산 있는 석실에선 저녁 햇볕 넉넉했기에 陶山石室桑楡足
지난해의 이날 추위 기억하지 못하겠네 不記前年此日寒

☞ 북경에 도착한 청음은 조선 사신이 묵는 옥하관에 여장을 풀었다. 명나라는 조선 사신을 특별히 우대하여 다른 나라의 사신과는 달리 이곳에 묵게 하였다. 어느 눈 내리는 밤, 서장관 김지수가 감회가 일어 청음에게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 김지수의 시를 받은 청음 역시 몹시 추운 날 타국의 객관에서 묵는 쓸쓸한 심회를 담아 화답하는 시를 지어 읊었다.……
- 「옥하관에서」 중에서

제 5 장 나랏일에 온 마음을 다하다

오랑캐들이 만약 해서(海西) 지방을 넘어 들어오게 된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관서(關西) 지방에 세 개의 큰 진(鎭)을 설치하고서 도원수는 자모성(慈母城)을 지키게 하고, 부원수는 철옹성(鐵甕城)을 지키게 하고, 평안도의 병사(兵使)는 안주성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관서를 셋으로 나누어 세 진에 소속시키고, 속읍(屬邑)에서 정예로운 군민(軍民)과 용감한 무사를 선발하여 격려하고 훈련시켜, 때맞추어 교대하면서 자기 지역을 지키게 한다면 반드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이후 청나라와의 관계가 점점 더 틀어지면서 험악한 상황으로 변해 장차 그들이 침입해 올 우려가 있었다. 이에 청음은 위의 차자를 올려,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한 계책을 세울 것을 촉구하였다. 청음의 차자를 본 인조는 알았다고만 답하고 후속 조치는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
-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기를 청한 차자」 중에서

평생토록 꿈은 오직 한 언덕에 있었는데 夢想平生在一丘
머리가 센 오늘에야 돌아와서 쉬게 됐네 白頭今日始歸休
향 피우고 말 잊은 채 조용히 앉아 있자 焚香宴坐忘言處
구름 절로 무심하고 물은 절로 흐르누나 雲自無心水自流

☞ 청음은 유백증이 시세에 편승하여 제멋대로 논의하는 것을 미워해 차자를 올려 논핵하였다. 이에 대해 임금이 유백증을 편들면서 엄한 내용의 전지를 내려 청음을 특별히 체직시켰다. 그러자 청음은 조정에서 물러나 석실로 돌아갔다.……
- 「전원으로 돌아가다」 중에서

제 6 장 국서(國書)를 찢고 통곡하다

답서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은 신하들은 대부분 한사코 거부하였으므로, 화친론의 선봉에 섰던 최명길이 답서를 짓게 되었다. 그런데 최명길이 지은 답서 가운데에는 청 태종에게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내용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 답서를 본 청음은 반도 채 읽기 전에 격분을 이기지 못하여 통곡하면서 국서를 찢어 버렸다. 그리고는 최명길에게 말하였다. “공은 여러 대에 걸친 명문가의 자손으로서 어찌 차마 이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뒷날에 지하에 가서 선친을 무슨 면목으로 뵙겠습니까” “대감의 말씀이 옳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는 부득이한 상황에서 나온 것입니다. 대감이 찢었으니 저는 줍겠습니다. 나라에는 마땅히 항복하는 국서를 찢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이를 주워 수습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일 -「연보」의 기록」 중에서

남쪽 밭길 북쪽 논길 밤은 깊어 삼경인데 南阡北陌夜三更
달을 보고 바람 좇아 나 홀로 길을 가네 望月追風獨自行
하늘과 땅 무정하고 사람들 다 잠자거니 天地無情人盡睡
백 년간의 이 회포를 누구에게 쏟아 낼꼬 百年懷抱向誰傾

☞ 어느 날 청음은 한밤중에 일어나 서성거리다가 지난날 오랑캐에게 수치를 당할 경우 죽겠다고 한 맹세를 저버린 것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일어났다. 또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속마음도 모르고 오히려 혼자만 명예를 독차지하기 위해 임금을 따라가 항복하지 않고 시골로 낙향하였다고 비난하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밤중에 일어나 홀로 걷다」 중에서

제 7 장 대절(大節)을 빛내다

산해관 아래의 여러 곳에 주둔해 있는 군병들과 해상에 떠 있는 함선의 병졸들이 비록 오랑캐를 쓸어 내고 요동의 강토를 회복하기에는 부족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잘못된 행동을 금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만약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랑이 앞에서 길을 이끌어 주는 짐승이 되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죄를 문책하는 군대가 벼락같이 달려와 배를 띄운 지 하루 만에 곧바로 황해도와 경기도의 섬에 당도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 우리나라가 두려워할 상대는 오랑캐들만이 아닐 것입니다.

☞ 청음은 파병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릴 경우 그러잖아도 자신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는 청나라에 의해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청음은 이에 굴하지 않고 파병 반대 상소를 지었다. 그리고 상소를 받들고 사당에 가 자신이 이제 죽을지도 모른다고 고한 다음, 상소를 올렸다.……
- 「명나라를 치기 위한 군대를 파견하지 말기를 청한 상소」 중에서

황주(黃州)에 도착하여 너희들이 일에 보낸 편지를 받아 보았다. 서둘러 답장을 보냈는데, 제대로 잘 전해졌는지 모르겠구나. 나는 평산(平山)을 지난 이후로 광포한 오랑캐들이 빨리 오라고 잇달아 아홉 놈이나 보내어 재촉하는 탓에, 밤낮없이 일정을 서둘러 오늘 저녁 마침내 의주에 도착하였다.

☞ 황주에 당도하여 손자 김수증(金壽增)이 보낸 편지를 받은 청음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그런 뒤 늙은 몸을 이끌고 강행군을 하여 길을 떠난 지 열흘 만인 12월 18일에 의주에 도착하였다. 의주에 도착한 청음은 청나라군이 감시하는 중에 황주에서 보낸 편지가 제대로 잘 전해졌는지 의심스러웠다. 이에 다시 위와 같은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다.……
- 「손자 수증 형제에게 부치는 편지」 중에서

제 8 장 감옥에서 고초를 겪다

조선 소년 중국 소녀 모두 고아 되어서는 鮮兒漢女共零丁
되놈 집에 붙어 살며 목숨 겨우 연명하네 來入胡家託死生
온갖 고생 다 겪어도 하소연할 곳 없으니 辛苦萬端無處訴
하늘과 땅 뭔 맘 품고 있는가를 모르겠네 不知天地亦何情

☞ 감옥에 갇혀 있던 청음은 아주 어린아이들이 물을 긷느라 자기 몸보다 더 큰 물통을 들고 낑낑대는 것을 보았다. 말소리를 들어 보니 조선 아이들이었다. 청나라 군사들이 병자호란 이후에 볼모로 잡아 오거나 부모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잡아 온 것이었다.……
- 「어린아이들이 물을 긷는 것을 슬퍼하다」 중에서

위태로운 기미 아주 급박해진 뒤에 보니 火色蒼黃到十分
평소 의리 맺었던 것 그 모두가 가짜였네 平生結義摠非眞
위험한 길에서 날 잘 보살펴 주었거니 危途賴爾扶持力
세상에서 이런 사람 있는 줄을 누가 알리 世上誰知有此人

☞ 청음을 존경하여 자진해서 심양까지 따라온 표정준(表廷俊)이라는 하급 무관이 있었다. 그는 힘든 상황 속에서 한순간도 청음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 주었다. 그런 표정준이 먼저 귀국하게 되었다. 청음은 표정준이 자신을 지켜 준 데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에서 긴 서문과 함께 시를 지어 주어 그의 행실을 기렸다. 그때 지어준 이 시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 「표정준에게 지어주다」 중에서

제 9 장 정적(政敵)과 화해하다

내 일찍이 청평 땅에 잠시 갔다 돌아올 때 曾訪淸平暫往還
샛길 따라 그대의 집 가서 문을 두드렸네 偶從樵逕叩荊關
언덕 곁의 숲 가에는 두세 채의 집 있었고 依林傍塢兩三屋
물 건너편 이어진 봉 천 겹 산이 서 있었네 隔水連峯千疊山
산골짜기 서로 나눠 곁에 살고 싶었기에 便欲卜隣分洞壑
그윽한 꿈 꿀 때마다 아직 거길 오른다네 尙牽幽夢費登攀
봄 깊으니 복사꽃 뜬 물이 불어났을 텐데 春深正漲桃花水
한 굽이의 운계 시내 몇 곳 돌아 흐르려나 一曲雲溪幾處彎

☞ 최명길의 시를 받은 청음 역시 옛날에 청평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최명길의 집을 방문하였던 때를 생각하며 다시금 그곳을 찾아가고픈 마음을 담아 앞의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 「즐거웠던 때를 회상하다」 중에서

구불구불 연이어진 의주 가는 길 袞袞龍灣路
뭇사람들 차례차례 다 돌아갔네 群公次第歸
머리 허연 우리 둘만 가지 못하고 只留雙白髮
다 떨어진 봄옷 함께 입고 있구나 共弊一春衣
하늘 뜻은 아득 높아 묻기 어렵고 天意高難問
사람 정은 가까워도 쉬 어긋나네 人情近亦違
부디 그대 의아하게 여기지 마소 憑君莫輕訝
만사에는 모두 묘한 이치 있다오 萬事有神機

☞ 청음은 최명길이 청나라 사람들을 대할 때 말은 비록 부드럽게 하지만 죽음도 불사하고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모습을 보았다. 이에 최명길이 본래 지조가 없어서 오랑캐에게 굽힌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 「서로 자신의 뜻을 말하다」 중에서

제 10 장 대로(大老)로 존숭받다

보잘것없는 신의 나이가 이미 팔순이 다 되어 가는바,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것을 생각하면 아침저녁으로 떨리기만 할 뿐입니다. 이제 시골로 돌아가면 영원히 성상을 뵈올 수 없을 것입니다. 짤막한 상소를 올리노라니 눈물만 흐릅니다. 신은 송구스럽고 황공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에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 청음은 처음 의주에 심문을 받으러 갈 적에 이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여 인조에게 영결을 고하고 떠났다. 그 뒤 자신은 이미 죽은 몸으로 자처하고 있었으므로 돌아온 뒤에도 곧바로 대궐로 들어가 인조를 배알할 수가 없었다. 이에 도성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쪽 교외에 머물러 있으면서 위와 같은 내용으로 상소를 올렸다.
- 「고국으로 돌아와 성문 밖에 머물러 있으면서 올린 상소」 중에서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처음 왕위를 물려받으실 때에 품었던 뜻을 더욱더 가다듬으시고, 어진 이를 좋아하는 정성을 버리지 마소서. 또한 착한 사람을 등용하여 훌륭한 정치를 이루고, 실제적인 덕을 잘 닦아 왕업을 넓히소서. 그리하여 우리 동방이 억만년 동안 무궁하게 융성할 수 있는 큰 기반을 닦으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신은 비록 죽어서 구천에 가 있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 효종 3년(1652) 6월 25일 청음은 세상을 떠났다. 임종 직전 이제 붓을 잡을 힘조차 없어진 청음은 아들과 손자들을 불렀다. 지필묵을 준비하고 자신이 부르는 대로 받아 적게 하고는 자신이 죽은 뒤에 임금에게 올리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충정을 바칠 유소(遺疏)를 지은 것이다. 청음이 죽은 뒤 자손들이 올린 이 상소를 읽고 효종은 이렇게 전교하였다.……
- 「죽은 뒤에 올린 상소」 중에서

제 11 장 별이 되어 빛나다

사신은 논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문천상(文天祥)이 송나라 왕조 삼백 년의 정기(正氣)를 모두 거두어들였다.”라고 했는데, 세상의 논자들은 “문천상 이후로 그런 사람은 오직 동방의 김상헌 한 사람뿐이다.”라고 하였다.

☞ 청음의 졸기를 보면 청음의 일생을 지나치다 할 정도로 아주 상세하게 적어 놓았다. 아마도 실록에 실린 졸기 중에 청음의 졸기가 가장 길 것이다. 청음이 당대에 얼마만큼 존경을 받았는지 잘 알 수 있다. 청음에 대한 사평(史評)은 졸기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짧다. 그러나 이 짧은 사평은 사관이 청음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 「청음에 대한 사신 史臣 의 논평」 중에서

김상헌은 세 조정을 섬긴 원로이며, 한결같은 덕을 굳게 지킨 종신(宗臣)이다. 정직함과 충성스러움은 모든 신료의 모범이 되었고, 문장과 학업은 한 시대의 사람들이 우러러보았다. 그 기상은 거센 물결 속에 버티고 선 돌기둥이었고, 그 마음은 푸른 하늘에 뜬 밝은 태양이었다.

☞ 청음은 효종 3년에 죽었으며, 실제로 벼슬에 나와 있었던 기간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청음이 효종의 묘정에 배향된 것은 효종이 볼모로 심양에 끌려갔을 때 청음이 심양에서 모신 적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청음의 숭명배청 정신이 효종이 추진하는 북벌 정책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 「효종 대왕의 묘정에 배향하면서 내린 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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