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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이탈리아소설
· ISBN : 9788932021768
· 쪽수 : 356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도서들이 인쇄본이건 필사본 (우리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몇몇 낡은 고서들)이건 간에 지극히 비참한 대접을 받고 있음을 첫날부터 감지했다. 나의 상황이 진정 기구하고 그런 것이 일부 호기심 많은 독자들에게 교훈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만 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글을 쓸 염도 내지 않았을 테고 또 앞으로도 쓸 일 따위는 없었을 테다. [……] 나의 세번째이자,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죽음으로부터 50년의 세월이 더 지난 후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이 글을 열어볼 수 없다는 조건하에서 말이다.
그러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신께서는 나의 이 비애를 아시리라) 나는 죽었으며, 그래 벌써 두 번씩이나, 그러나 처음은 실수로, 두 번째는…… 이야기하리다.
딸의 죽음과 동시에, 한날한시에 어머니도 세상을 하직했다. 나는 여러 가지 배려와 고통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도무지 난감했다. 잠든 아기를 내버려둔 채, 그리고 본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손녀의 병세를 묻고, 다시는 손녀딸을 볼 수 없음을, 마지막 키스도 하지 못했음을 애통해하던 어머니 곁을 도망쳐 나왔다. 이런 고문 같은 날이 9일간 지속되었다. 게다가 9일간 밤낮으로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으니…… 이런 말을 해야 하나?(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걸 고백하려 하지 않을 거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지극히 인간적인 고백이다), 나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그 순간은 느끼지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구할 수 없었으니, 나는 또다시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 자신에게 충고를 구했다. 죽은 마티아 파스칼의 영상이, 마치 저수지 바닥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듯, 내게 남은 유일한 그의 흔적인 저 눈과 함께 거울 표면에 나타나, 이렇게 내게 말했다.
“궁지에 몰렸군, 아드리아노 메이스! 넌 파피아노를 두려워하고 있어, 사실대로 말해! 그리고 그걸 내 탓이라고, 그래 아직도 내 탓으로 돌리고 싶겠지. 단지 니스에서 스페인놈과 다퉜다는 이유로 말이야. 하지만 내가 옳았다구. 너도 그걸 알고 있잖아. 이제 네 놈 얼굴에서 나의 마지막 흔적을 지울 수 있는 적기인 것 같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