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2022185
· 쪽수 : 149쪽
책 소개
목차
제1부
가을밤/소리의 거처/물소리에 관한 소고/층층나무의 계단/오후의 세계/초록을 말하다/여름숲/얼룩/기억의 행성/나의 매화초옥도/어두워지는 숲/적벽에 다시/천장을 바라보는 자는/어딘가 다른 곳에서
제2부
헛되이 나는/사이프러스/미학적 인간에 대한 이해/작열하다/봄비/북/나비 떼의 추락으로 폭우가 멈추었다/탐매행/무릎을 예찬함/능소화/불안의 운필법/곡옥/일주문
제3부
풍경의 해부/연둣빛 덩어리/분홍을 기리다/송과선, 잠/야위다/정강이論/양귀비를 기르다/맹목의 감각/십일월, 배밭을 지나다/강정 간다/물에 비친 버드나무 가지의 그림자/악기들/흰 꽃의 극락
제4부
터널/일식의 주기/당신의 손/하늘의 무늬/무계동/계단/허공의 악기/생에 처음인 듯 봄이/소리의 사다리/메밀꽃이 인다는 말/冬至/ 墨白/물속의 빛
해설 미학적 인간_신형철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앞날개 글
조용미의 시가 풍경을 노래한다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 무언가를 얻었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이다. 조용미는 풍경(색깔과 소리)의 탁월한 해석자이지만 그의 예술적 성취는 ‘나’를 버리고 ‘너’를 잃어서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미학적 인간의 보람이고 아픔이다. 그런데 보람과 아픔의 길 너머엔 긍정의 길이 있다. ‘너’를 잃어서 아름다움을 얻었다고 말하는 길이 아니라 ‘너’를 잃은 이 삶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길이다. ‘기억’과 ‘반복’이라는 주제를 천착하고 있는, 이 시집에서 가장 무게 있는 시들이 우리를 그 아프고 숭고한 길로 데려간다.
소리의 거처
비 오는 숲의 모든 소리는 물소리다
숲의 벚나무 가지들이 검게 변한다 숲 속의 모든 빛은 벚나무 껍질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흑탄처럼 검어진 우람한 벚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숲에서 사라진 모든 소리의 중심에는 그 검은빛이 은밀히 관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른 연못에 물이 들어차고 연못에 벚나무와 느티나무의 검은 가지와 잎과 흐린 하늘 몇 쪽과 빗방울들이 만드는 둥근 징소리의 무늬들 가득하다
계류의 물소리는 숲을 내려가는 돌다리 위에서 어느 순간 가장 밝아지다가 뚝 떨어지며 이내 캄캄해진다
현통사 霽堂의 月자가 옆으로, 누워 있다 계곡 물소리에 쓸린 것인지 물 흐르는 방향으로 올려 붙은 달, 물에 비친 달도 현통사 옆에선 떠내려갈 듯하다
비 오는 날 숲의 모든 소리는 물소리 뒤에 숨는다
나의 매화초옥도
눈 덮인 산, 무거운 회색빛 하늘, 초옥에서 창을 열어두고 피리를 불며 앉아 있는 선비의 시선은 먼 데 창밖을 향하고 있다.
어둑한 개울에 놓인 다리를 밟고 건너오는 사내는 어깨에 거문고를 메고 있다
멀리서 산속에 있는 벗을 찾아오고 있다 방 안의 선비는 녹의를 그는 홍의를 입고 있다
초옥을 에워싸고 매화는 눈송이가 내려앉듯 환하고 아늑하다
매화를 찾아, 마음으로 친히 지내는 벗을 찾아 봄이 오기 전의 산중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생겨나고, 부유하고, 바람의 기운 따라 천지간을 운행하는 별처럼 저 점점이 떠 있는 흰 매화에서
우주의 어느 한순간이 멈추어버린 것을, 거문고를 메고 가는 한 사내를 통해 내가 보았다면
눈 덮인 산은 광막하고 골짜기는 유현하여 그 속에 든 사람의 일은 참으로 아득하구나
천 리 밖 은은하게 번지는 서늘한 향을 듣는 이는 오직 그대뿐
밤하늘의 성성한 별들이 지듯 매화가 한 잎 한 잎 흩어지는 봄밤, 천지간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나는 그림 속 사람이 된다 별빛이 멀리서 오듯 암향도 가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