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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2040615
· 쪽수 : 180쪽
· 출판일 : 2023-09-22
책 소개
목차
산문집으로 인사합니다
1부 인생유행人生遊行
12월의 열매
가을의 라일락
아름다운 즐거움
이면의 서사
하다, 가르치다, 살다
정직의 체험
소설 쓰십니까
인생의 책
나는 어떻게 쓰는가
공감의 신비
벼랑 아래의 외침
마중물 통장
되찾은 사과 편지
나를 버리고 돌아간 곳에서
2부 사막아, 사슴아
속도와 잡음
사막의 포도, 투루판
돌밭의 향기
지금 생각나는 몇 가지 비유
사계절의 만란한 풍경처럼
사라지는 날
들려오는 속삭임
어떤 눈빛
빈방의 주인은 누구인가
돌아가야 할 때
3부 빛이 머무는 동안에
파란 손의 마음
속닥속닥 식사 모임
어떤 여행
악마를 다루기
시작하는 평화
진정한 해방에 관하여
카빌리의 사람들
빛의 통로
망각의 갈피에서 찾은 것
힘겨운 화해들
현대를 극복하는 공감과 환대
젖은 숲의 빈터까지
문학과 함께 달라질 세상에서
저자소개
책속에서
서유기에 나오는 화염산이 인근에 있어서 관광지로도 알려진 곳임에도 광야를 가로질러 투루판에 이르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열기를 동반한 바람과 시간이 만들어낸 화염산의 모양도 기묘하기 그지없고, 타림분지와 타클라마칸사막을 따라 돌밭과 모랫길만을 거쳐 마침내 그 끝에서 만나는 투루판의 면모는 신비하기까지 하다. 훅 하고 몇 도 높은 바람만 불어도 온통 타버릴 것같이 달구어진 길 한가운데서 갑작스럽게 이름 모를 나무들이 가로수 그늘을 만들고, 도시 곳곳에 포도나무 덩굴이 아치를 이루는 이 도시가 눈앞에 솟아나는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안타깝지만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고난의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이겨내야만 더 강인해지는 향수병 같은 간헐적인 병이 있듯이. 그런가 하면 돌밭에서 어렵사리 뿌리를 내리며 농밀해지는 향기가 있다. 라방드 향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많은 사막을 여행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사막에서 가끔 라방드 꽃밭을 환영으로 떠올린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돌밭이다. 그곳을 지나야 삶에서는 더 짙은 향기가 난다. 가끔 사막의 돌 틈에서 발견하는 말라버린 잡초 잎에서 더 깊고 짙은 향기가 배어 나오듯이.
그쪽으로 내 차가 천천히 다가가자 강아지는 피하기는커녕, 만감이 교차하는 간절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들이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 눈을 들여다보며 혼자 묻고 답하던 것이 생각났다. “엄마, 강아지 눈은 왜 이렇게 착해? 나쁜 일을 하지 않아 그런가 봐.” 그러나 사슴 같은 격이 몸매에서 풍기는 그 강아지는 이내 내게서 시선을 돌리더니 고개를 떨구고는 반대 방향의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때서야 나는 그가 외딴 산길에 버려진 유기견일지도 모르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