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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42534
· 쪽수 : 292쪽
책 소개
목차
미애
20세기 아이
목화맨션
이남터미널
산무동 320-1번지
자전거와 세계
사랑하는 미래
축복을 비는 마음
해설 마음과 구조·이소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모든 게 지나치게 정답 같은 질문들과 대답들. 옳은 것이 분명한 이야기들. 좋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가치들. 당연히 해야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 어쩌면 자신도, 해민도 살면서 그런 것들을 한 번쯤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그건 희망의 모습과 비슷했다.
삶에 기대를 품는 것이 번번이 자신을 망친다는 결론에 이른 뒤로 미애는 가능한 한 희망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노력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삶은 언제나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만 했고, 그래서 희망을 부풀리는 능력이 불필요하게 발달한 거라고, 자칫하다간 눈덩이처럼 커진 희망 아래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수시로 경고하는 것만은 잊지 않으려고 했다. 「미애」
엄마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 끝나가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다. 더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겠다고 작정한 사람처럼 침묵을 지킨다. 할아버지도, 언니도.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어른들도 하나같이 말하는 법을 잃은 사람들 같다.
세미는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곳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고, 그래서 결국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린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곳에 남은 건 하나 마나 한 말이거나, 하지 않거나 듣지 않으면 더 좋은 말뿐이다. 이곳엔 진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진짜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20세기 아이」
만옥이 거듭 사양하는데도 순미는 기어이 그것을 만옥의 손에 쥐여주었다. 인절미가 담긴 비닐봉지가 따뜻했다. 만옥은 봉지를 받아 들고 이렇다 할 인사도 없이 그곳을 나왔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는 동안 어쩌자고 서로의 사정을 이렇게 속속들이 알아버렸을까 생각했고, 그게 뭐든 차라리 몰랐으면 나았을 거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지난 시간 동안 저 낡은 집이 자신에게 선사한 좋은 일이란 고작 이런 것이고, 이제 이것마저 지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이 집을 팔면서 자신이 각오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 셈이었다. 「목화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