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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음악 > 음악이야기
· ISBN : 9788932322438
· 쪽수 : 520쪽
책 소개
목차
여는 말
토론장
무대 위로 한 번 더
스튜디오의 콘서트 피아니스트
음악과 음악가들에게
그리고 더
종교에 관한 짧은 생각들
생각의 끝에서
감사의 말
스티븐 허프: 디스코그래피 198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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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클래식 음악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세대 간에서도 그렇다. 그날 내가 캐나다에서 연주한 베토벤 협주곡은 200년 전에 작곡되었다. 아마 그날의 관객 중에는 100세가 다 되어가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공연이 끝난 뒤의 저녁 식사에서는 지휘자와 악장이 내게 자기 아기 사진을 보여주었다. 클래식 음악은 세대를 넘나든다. 시대를 초월하고, 만인 공통이며, 영원히 늙지 않는다.
사제가 될까 고민하던 시기에 나는 논쟁에서 이기기보다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매료되었다. 실제로 겸손과 인내, 사려 깊은 망설임으로 논쟁에서 패배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방법일지 모른다. 나는 연주회에서 이러한 종교적 의미를 강렬하게 느낀다. 무대로 걸어 들어가면 관객을 대면한 뒤 몸을 옆으로 돌려 자리에 앉는다. 이때 관객 대부분은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의견은 의자에 앉은 엉덩이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나는 나의 관객과 친구가 되고 싶다. 설교를 하거나 그들을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작곡가의 탁월한 목소리를 통해 모두가 논란과 갈등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직접 말을 건다면(어쩔 수 없이 내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관객에게 정치나 종교에 관해 연설하는 것은 언제나 설교일 수밖에 없다)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거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제거할 수 없는 분열이 생겨날 것이다.
운동선수와 비교해보자. 사람들은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에게 ‘뭐라고요? 또 훈련 중이라고요…? 하지만 이미 라켓 쥐는 법도 알고, 경기도 엄청 많이 치렀고, 지금 몸 상태도 좋잖아요.’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복잡한 작품을 다시 연주하는 것은 처음 그 작품을 배우는 것만큼 시간과 노력이 들지 않는다. 뛰어난 테니스 선수가 공을 쳐서 네트 위로 넘기는 방법을 잊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처음 배우는 작품을 외워서 연주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노력이, 이미 아는 작품을 정말 ‘준비된’ 상태로 만들기까지의 노력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3악장 중간의 쏟아지는 32분음표를 익히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그 음 하나하나에서 내가 원하는 음색과 형태, 균형감, 페달링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한 작업이다. 이것은 공개 수업에서 한 작품을 정확하고 탁월하게 연주한 학생에게 내가 가끔 하는 말이기도 하다. ‘훌륭해요. 하지만 이건 진짜 연주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토대에 불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