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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2322728
· 쪽수 : 444쪽
책 소개
목차
신부의 딸
해설
신 없이 성스러운, 무신론자 성녀
도러시의 모험 - 김성중
조지 오웰 연보
책속에서
빚더미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도 아버지는 절대 동요하는 법이 없었다. 상인들에게 물건값을 지불해야 하며, 적절한 액수의 돈 없이는 집이 굴러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그는 도러시에게 엘런의 임금을 포함한 가계비로 한 달에 18파운드씩 주면서 입맛은 또 ‘고급’인지라 식사의 질이 조금만 떨어져도 바로 알아챘다. 사정이 이러하니 항상 빚에 쪼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일까? 머릿속으로 이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본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과 말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말이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러자 질문은 또 다시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나는 남자일까, 여자일까?’
이번에도 역시 감정이나 기억은 답의 실마리를 주지 못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어쩌면 우연히도, 손가락 끝이 몸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존재한다는 걸, 이 몸이 그녀의 것이며 바로 그녀 자신이라는 걸 아까보다 더 확실히 실감했다.
강한 햇빛 속에서 마흔 명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나무를 땐 연기와 홉 냄새를 맡으며 힘들게 일했던 그 기나긴 시간에는 묘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오후가 지날수록 너무 피곤해져서 서 있기도 힘들었고, 작은 녹색 진디가 머리카락과 귓속으로 들어와 괴롭혔으며, 독한 즙에 물든 손은 피를 흘릴 때가 아니면 흑인의 손처럼 시꺼멨다. 그래도 행복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복이었다. 그 일은 사람을 휘어잡고 집어삼켰다. 미련하고 기계적이고 고단한 일인 데다 날이 갈수록 손이 더 아팠지만, 일이 싫어지지는 않았다. 날씨가 화창하고 홉이 잘 열려 있으면, 평생 홉을 따며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