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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나폴레옹의 시대

앨리스테어 혼 (지은이), 한은경 (옮긴이)
을유문화사
13,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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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나폴레옹의 시대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 프랑스사
· ISBN : 9788932472782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14-11-25

책 소개

그동안 나폴레옹 관련 서적이 대부분 그의 뛰어난 군사적 능력이나 정복과 패배의 역사에 초점을 맞춰 왔다면, 이 책은 전쟁에 대해서는 주제와 관련 있을 경우에만 지나가듯 언급하고 문화 지도자로서의 공과 열정, 그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세련되고 화려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목차

옮긴이의 말
연보
지도

서론

Chapter 1 권력에의 의지
Chapter 2 모든 세대는 다음을 꿈꾼다
Chapter 3 운명은 여자다
Chapter 4 영광을 좇아서
Chapter 5 최고의 설계사
Chapter 6 칙령으로 지정된 양식(樣式)
Chapter 7 제국의 오락
Chapter 8 낭만주의 이미지
Chapter 9 쇠퇴
Chapter 10 라신 가의 카자흐 기병

에필로그: 한 시대의 종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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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앨리스터 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였으며 유럽사, 특히 19~20세기 프랑스의 정치와 군사사에 정통한 역사학자였다. 케임브리지대학 지저스칼리지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1949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52년부터 1955년까지 서독에서 <데일리 텔레그래프> 통신원으로 일하면서 영국 정보기관인 MI6 요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55년 이후 전업 작가가 되어 스무 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1992년에 대영제국 커맨더 훈장(CBE)을 받았고 1993년에는 프랑스사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에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같은 해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에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베르됭 전투》(1962)는 혼에게 처음으로 역사가로서 명성을 가져다준 책이었는데 베스트셀러였을 뿐 아니라 이듬해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호손든 상을 안겨주었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결정적 전투인 베르됭 전투를 다룬 수많은 저술 중에서도 고전으로 꼽히며, 출간 후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대체할 만한 책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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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경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전임강사이다. 옮긴 책으로는 《나폴레옹의 시대》, 《민족과 제국》, 《르네상스》, 《르네상스 시대의 쇼핑》, 《메디치가 이야기》, 《에레혼》, 《아틀란티스로 가는 길》, 《오두막》, 《피츠제럴드 단편선 2》, 《사랑의 역사》, 《기호의 제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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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대육군의 병사들이 배낭에 육군 원수의 지휘봉을 넣고 행군했다는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나폴레옹 육군 원수 26명 중에서 오직 두 명만이 귀족 출신이었으며(혁명의 영향이기도 했다),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 참전한 장교 가운데 절반이 병사 출신이었다. 기백이 넘치는 기병 천재 뮈라는 카오르의 보잘것없는 여관 주인의 열두 번째 아들이었고, ‘누구보다 용감한’ 네는 술장수의 아들이었다. 한편 나폴레옹의 최고의 사령관 마세나는 식품 가게의 고아 아들로 열세 살에 잡역부로 바다에 나갔다. 병사 출신의 베르나도트는 후에 스웨덴의 왕이 되었으며, 르페브르의 아내는 세탁부였다. 또한 장군들은 젊었다. 어떤 장군이라도 45세에 이르면 더 이상 진취적인 기상이 없다는 것이 나폴레옹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행정부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나폴레옹이 파리를 예술과 문화의 최고 중심지로 변형시켰다. 이에 반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건축물 중에서 블렘의 보나파르트 가라는 좁고 짧은 거리만 남았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부당해 보인다.


나폴레옹은 그가 침략했던 독일의 문인들에게 가장 강한 영향을 미쳤다. 헤겔은 프랑스 병사들이 그의 소유물을 훔쳤을 때조차 거리에서 맨발로 섰다고 한다. 그에게 나폴레옹은 ‘절대적 이상의 구현’이나 다름없었다. 괴테는 유명한 “발미의 포격”(1792년 이 사건으로 혁명 프랑스를 침입하던 동맹군은 등을 돌린다) 이후 국민 공회가 ‘억압받는’ 나라들에게 혁명을 실행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세계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였다고 보았다. 그는 후에 트로츠키처럼 모든 것을 보았다. 여러 측면에서 독일의 낭만주의 운동은 ‘질풍노도’와 더불어 프랑스 혁명의 폭력성을 내다보았다. 결국 그 대부분은 비이성적인 죽음의 충동이 결합한 성애에 대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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