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2925677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6-03-30
책 소개
야구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동대문야구장의 흙먼지부터 불펜 야구의 오늘까지…
철학자 탁석산이 되살려 낸 <잃어버린 야구>의 시간과 의미
우리가 사랑했던 야구는 어디로 갔을까
철학자이자 오랜 야구팬인 탁석산의 에세이, 『낭만의 그라운드, 완투에서 불펜까지』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스포츠 애호가로서의 관전기를 넘어, 한국 야구의 변화 과정을 한 개인의 기억과 사유를 통해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독특한 기록이다. 저자는 중학생 시절 처음 찾은 동대문야구장에서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 1960~70년대 고교야구와 실업야구의 열기, 1980년대 프로야구의 탄생, 그리고 오늘날의 정교하게 분업화된 야구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넘는 시간을 가로지른다.
이 책은 한국 야구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야구와 함께해 온 시대를 다채로운 감각과 기억으로써 생생하게 복원해 낸다. 여름날 야구장의 뜨거운 햇빛, 뭉게구름이 흘러가는 하늘, 경기 시작 전의 긴장감과 설렘, 관중석의 공기까지……. 아울러 특정 팀이나 승패 중심의 서사가 아니라, 야구를 둘러싼 문화와 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된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야구를 단순한 경기 이상의 <경험의 총체로> 그려 낸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동시에, <우리가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가>를 되짚는 기록이기도 하다.
완투패의 아름다움, 그리고 사라지는 드라마
『낭만의 그라운드, 완투에서 불펜까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오늘의 야구는 과거보다 더 나아진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인가. 과거의 야구는 선발 투수가 끝까지 경기를 책임지는 <완투>의 시대였다. 한 투수가 경기 전체를 끌고 가며 겪는 위기와 반전, 그리고 끝까지 버텨 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서사이자 드라마였다.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하고도 패하는 완투패마저 하나의 의미 있는 장면으로 남았다. 최동원과 선동열이 장장 15회에 이르기까지 200구가 넘는 공을 던지며 맞붙었던 경기, 그리고 한 투수가 끝까지 마운드를 지키며 경기의 흐름을 끌고 가던 순간들. 과거 야구의 이러한 장면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버티는 인간>에 대한 드라마였다.
반면 오늘날의 야구는 철저한 분업 시스템 속에서 운영된다. 선발, 중간 계투, 마무리로 이어지는 역할 분담은 효율성과 안정성을 극대화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기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드라마는 점차 희미해진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변화를 <퇴보>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를 시대의 변화에 따른 <진화>로 인정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감각과 의미를 동시에 짚어 낸다. 실업야구에서 프로야구로의 전환, 선수들의 환경 변화, 그리고 기록과 통계 중심으로 재편된 현대 야구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변화의 양면을 균형 있게 바라본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선발 투수라는 존재를 통해 삶의 태도를 읽어 내는 부분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도, 경기 흐름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순간에도, 선발 투수는 어떻게든 경기를 <끌고 간다>. 저자는 인생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언제나 최상의 조건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몫을 끝까지 감당해 내는 것,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인생에 구원 투수는 없다>는 통찰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어려운 상황에서 누군가가 대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며, 결국 자기 삶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 완투하는 투수의 모습은 그렇게 인간의 삶을 비추는 하나의 은유가 된다.
이와 함께 저자는 현대 야구에서 점점 강조되는 통계와 데이터의 세계도 아울러 다룬다. 타율 중심의 평가에서 wRC+와 같은 정교한 지표로 이동한 변화, 포지션별 역할에 대한 재해석 등은 야구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진화해 왔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수치로는 설명되지 않는 <느낌>과 <기억>의 영역이 여전히 존재함을 강조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것은 단순한 야구의 변천사가 아니다. 효율과 분업, 데이터와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오늘의 세계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낭만의 그라운드, 완투에서 불펜까지』는 스포츠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의 태도와 인간의 선택, 그리고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의미로 남는다
탁석산의 야구 이야기는 결국 <기억>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된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인용하며, 과거를 단순한 회상이 아닌 재해석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 살아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과거를 떠올리는 방식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특히 인상적이다. 과거는 소리가 없는 기억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또렷하게, 더 깊이 감각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창조적 행위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기억을 생성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야구장에서의 경험은 시간이 지나며 다른 의미로 변주되고, 그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을 다시 이해하게 된다. 한때는 단순한 경기였던 장면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한 시대의 공기와 감정, 그리고 자기 삶의 일부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개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야구의 장면들을 통해,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를 보여 준다. 어린 시절 무심코 지나쳤던 경기의 순간, 특정 선수의 플레이, 관중석의 풍경과 소음까지……. 그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난 뒤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되돌아온다. 기억은 단순히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선에 의해 다시 쓰이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인 셈이다.
저자 탁석산은 50년 구력의 야구광이다. 고교야구, 실업야구,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세대로서, 한국 야구의 변화 과정을 몸소 겪어 왔다. 이 책에는 그가 지켜봐 온 야구장의 풍경, 고교야구 대회의 열기, 실업야구 팀들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프로야구의 탄생과 성장 과정까지, 한국 야구사의 주요 장면들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또 전설적인 선수들과 인상적인 경기들을 생생하게 회상하며, 독자에게 강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더 나아가 야구 규칙과 전략, 통계의 변화, 그리고 팬 문화의 진화까지 폭넓게 조망한다. 단순한 추억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야구라는 스포츠가 어떻게 시대와 함께 변해 왔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스포츠를 넘어, 한국 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비추는 거울로써 야구를 재정립시키는 셈이다.
『낭만의 그라운드, 완투에서 불펜까지』는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하여 한 시대의 문화사적 기록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잃어버린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야구를 사랑했던 이들에게는 가장 생생한 기억을,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한 시대를 이해하는 새로운 창을 제공하며, 모든 독자에게 시간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을 제안한다.
목차
들어가며_셰익스피어 「소네트 30」
네 타자 연속 홈런 | 오늘을 잡아라! | 사바나 가설 | 선발투수는 끌고 가는 힘이다 | 센터라인이 강해야 한다 | 왜 <고로>인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 다이아몬드 | 역도루는 아웃이다 | 왜 1000만인가? | 점수판 | 『주간야구』 | ERA | 해설자들 | 야구는 확률 게임? | DTD | 찬스에 강한 타자? | 수비 평가 | 빗맞은 안타? | 사와무라상 | 고시엔 | 유니폼 | 리틀 야구 | 일본에서 온 한국 선수 | 먹튀 | 은퇴식 | 체크 스윙 | 군더더기 | 바깥쪽 약점 | 직구와 변화구 | 돌버츠 | 트레이드 | 시시콜콜 |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타격 3관왕 | 팬 | 인생극장 | 동네 형 | 하이라이트 | 오타니와 저지 | 장훈 | 김병현 | 보살팬 | 불문율
나가며_다시 보기 | 참고 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뜨거운 햇빛, 뭉게구름, 가끔 부는 시원한 바람, 갑작스러운 소나기, 그리고 몰려오는 시커먼 구름, 흘러가는 구름이 빚어내는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모습들, 그리고 야간경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여름밤의 열기 등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이런 체험이 저를 야구장으로 불러들이지 않았나 합니다. 경기 결과야 다음 날 신문에 납니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요. 저는 특정 팀의 우승을 바란 적이 없습니다. 여름 야구장이 좋았고,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시합이 좋았습니다.
인생에 구원 투수가 어디 있습니까. 어느 정도만 버티면 다음 사람이 기다렸다 도와주려 나타나고, 그 사람이 자기 역할을 다하면 마무리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나요. 그런 일은 없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혼자 끌고 가야 합니다. 대타나 구원투수나 마무리 투수는 없습니다. 비바람과 폭설을 혼자 견뎌 내야 합니다. 저는 완투하는 투수를 보고 배웁니다.
동대문야구장에서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국민의례 때 애국가나 들었을까요. 응원가라는 것은 없다시피 했고, 고교야구 시합에서는 교가가 흘러나오곤 했지요. 대학야구에는 응원가가 있긴 했지만, 물론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지금은 선수마다 응원가가 있습니다. 선수가 등장하면 노래가 나옵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영화의 주인공도 아닌데 등장 음악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지요. 그리고 관객들이 응원가를 다 따라 부릅니다. 선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부릅니다. 거의 시합 내내 부른다고 봐야죠. 야외 노래방입니다. 정확히는 야외 떼창 노래방입니다. 장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