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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말여초 남종선 연구

나말여초 남종선 연구

조범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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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말여초 남종선 연구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나말여초 남종선 연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신라/통일신라
· ISBN : 9788933706657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13-10-10

책 소개

신라 하대 남종선을 수용한 승려들이 신라 사회에 끼친 영향과 그 의미를 검토한 연구서이다. 나말여초의 전환기를 주도한 인물이 호족이고 그들의 사상적 기반이 선종이라는 기존의 연구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그 시대를 보고 있다.

목차

머리말

제1편 남종선 수용과 초전승들의 활동
제1장 도의선사의 ‘설악산문’ 개창과 그 향배
1. 머리말
2. 도의선사의 귀국과 설악산 은거
3. 도의선사의 진전사 주석과 설악산문 개창
4. 가지산문에서 도의선사의 재탄생
5. 맺음말
제2장 원감선사 현욱의 남종선 수용과 활동
1. 머리말
2. 현욱선사의 신분과 출가
3. 현욱선사의 입당 유학과 선종 체득
4. 현욱선사의 귀국과 신라 왕실과의 관계
5. 현욱선사의 혜목산 이석과 고달사 주석
6. 맺음말

제2편 선종산문의 개창과 확대
제1장 무진주 지역 불교계의 동향과 쌍봉사
1. 머리말
2. 무진주 지역에서 쌍봉사의 위상
3. 정치 세력의 변화와 쌍봉사의 향배
4. 맺음말
제2장 서남 지역 선종산문의 형성과 발전
1. 머리말
2. 지리산과 초기 선종산문
3. 서남 지역의 선종 사찰과 산문의 형성
4. 서남 지역의 선종산문과 장보고 집단
5. 서남 지역 선종산문의 경제적 기반과 왕실과의 관계
6. 맺음말
제3장 굴산문의 성장과 분화
1. 머리말
2. 굴산문의 발전과 명주에서의 영향력 확대
3. 굴산문의 분화와 새로운 변화
1) 행적선사의 활동과 굴산문의 새로운 모색
2) 개청선사의 활동과 굴산문의 정체성 유지
3) 굴산문의 분화 배경과 그 의미
4. 맺음말

제3편 선승과 정치권력
제1장 왕실과 선승
1. 머리말
2. 기왕의 연구 성과 검토와 문제점 고찰
3. 선승들과 왕실의 결연 의도
1) 선승 초빙과 왕실 방문
2) 봉사 요청과 제출
3) 왕실의 주석처 선정과 선사의 주석
4) 국사 임명과 활동
5) 시호와 탑명 요청과 허락
4. 맺음말
제2장 장보고와 선종
1. 머리말
2. 장보고 무역 선단과 선승들
3. 장보고와 무진주 지역의 선종산문
4. 맺음말: 장보고가 신라 하대 선종 발달에 미친 영향
제3장 후백제 견훤 정권과 선종
1. 머리말
2. 상주의 선종 불교 동향과 견훤
3. 무진주 자립 전후의 견훤과 선종산문
4. 전주 천도 이후 견훤과 선승
5. 맺음말

제4편 남종선의 확산과 사회의 변화
제1장 선종산문과 사원 경제의 발전
1. 머리말
2. 해상 무역상과 사원
3. 선종 사원의 경제력 확대와 해상 무역상과의 관계
4. 맺음말
제2장 선승과 차 문화
1. 머리말
2. 당나라 유학승들의 차 문화 수입
3. 지리산 자락의 선종산문과 차 문화의 발달
4. 선승들의 차 문화 향유와 그것이 가지는 의미
5. 맺음말
제3장 선종불교 문화의 확산과 그 영향
1. 머리말
2. 입당 유학 배경에 대한 검토
3. 사상적 전회와 새로운 생활의 체득
4. 새로운 모색과 탄력적 대응
5. 불교문화의 수용과 그 영향
6.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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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조범환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강대학교 재학 중 부전공으로 선택한 역사학에 매료되어 1986년 같은 대학 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한국고대사를 전공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말여초 선종 불교 사상에 관심을 두어 ��新羅禪宗硏究��(一潮閣, 2001), ��羅末麗初 禪宗山門 開創 硏究��(景仁文化社, 2008), ��羅末麗初 南宗禪 硏究��(一潮閣, 2013) 등의 저서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나말여초 정치사와 관련한��중세로 가는 길목 신라하대사��(새문사, 2018)도 세상에 보탰다. 최근에는 고대 삼국의 정치 및 사회사 등의 연구에 치중하고 있으며, 특히 재당 유이민 묘지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학술지에 처음으로 「新羅末 朴氏 王의 登場과 그 政治的 性格」을 발표한 이후 다수의 논문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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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도의선사는 821년 무렵에 당나라에서 귀국하였지만, 김헌창의 난으로 말미암아 경주에 들어가지 못했다. 또한 왕실이나 진골 귀족을 단월로 삼지 못하였는데, 그것 역시 김헌창의 난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에 그는 설악산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 설악산에 들어간 그는 왕실의 배려로 진전사에 주석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진전사와 억성사를 중심으로 설악산문을 형성하였으며 많은 선승이 그곳을 방문했다. 그가 살아 활동하였던 시기 동안에는 물론 열반에 든 이후에도 설악산문은 왕실의 지원 아래 성장했다. 그런데 설악산문에 변화가 생겨났는데, 그것은 억성사 출신의 체징선사가 장흥 보림사에 가지산문을 개창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설악산문은 가지산문에 비하여 그 영향력이 전보다는 낮아졌다. 게다가 명주에서 새로운 굴산문이 탄생, 발전하면서 설악산문은 그 그늘에 가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설악산문의 위상이 약해졌다고 해서 도의선사의 위상까지 함께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도의선사는 가지산문의 개산조가 됨으로써 장흥 보림사를 중심으로 한 가지산문에서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현욱선사는 태어났을 때 진골 신분이었다. 그러나 신라 하대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아버지인 김염균이 실세失勢하여 정치적인 출세의 길이 어려워지자 출가의 길을 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 현욱선사는 흥덕왕의 요청을 받고 귀국을 결심하였다. 흥덕왕의 선종을 통한 개혁 정치에 도움을 주고자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현욱선사는 귀국하여 실상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흥덕왕이 사망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라 중앙의 정치적인 상황이 매우 혼란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민애왕과 신무왕으로부터 제자의 예를 받았다. 그런 가운데 실상사에도 변화가 있어 현욱선사는 실상사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욱선사는 남악 및 북악과는 거리가 먼 지역을 택하였으며 여주 혜목산에 자리를 잡았다. ~ 이후 경문왕은 현욱선사를 여주의 고달사에 머물게 하였는데, 이는 그동안 여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그를 배려한 것이라고 파악된다. 현욱선사는 고달사를 중심으로 남종선을 알렸으며, 염거선사의 제자인 홍각선사 이관이 그로부터 법을 받아 억성사로 돌아가 현욱선사의 법을 전하였다. ~ 원감선사 현욱은 신라 하대 선종의 수용과 그 전파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봉림산문의 개산조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라 하대 무진주 지역에 위치하였던 여러 선종 사찰 가운데 쌍봉사가 주목된다. 누가 개창하였는지 그리고 언제 개창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동리산문을 개창한 혜철선사가 839년 무렵에 머물렀고, 사자산문의 개산조가 되는 철감선사 도윤도 주석하다 열반에 든 곳이다. ~ 쌍봉사의 사세寺勢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장보고의 경제적인 지원에 말미암아서이다. 장보고가 쌍봉사에 여러 가지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은 무진주 지역에서 쌍봉사의 영향력이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장보고 사후 왕실의 지원을 받고 있던 보림사의 보이지 않는 견제를 받아야 하였다. 경문왕은 당나라에서 귀국해 금강산 장담사에 주석하던 도윤선사를 쌍봉사에 주석시켰다. 도윤선사의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하였기 때문인데, 왕실의 그러한 의도는 결국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도윤선사는 경문왕의 지원을 받아 그곳에 머물면서 그곳의 사세를 더욱 확장하였으며 사자산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후 견훤이 무주 지역의 맹주가 되자 쌍봉사는 다시 견훤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견훤 정권의 보호 아래 계속해서 그 위상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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