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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대 혼인 정치사

신라 중대 혼인 정치사

조범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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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대 혼인 정치사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신라 중대 혼인 정치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신라/통일신라
· ISBN : 9788933708026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22-05-20

책 소개

서강 인문연구전간 58권. 전근대 국가에서 왕실혼은 새로운 성원을 생산하여 왕실을 유지하고 지속하는 방법이었다. 신라 중대 왕들의 혼인이 이루어진 배경과 정치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당대 정치 상황의 특성과 역동성을 파악하고, 신라 중대 정치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고자 하였다.

목차

책머리에

신라 중대 정치사 새롭게 보기

제Ⅰ편 신라 중대 왕실의 족내혼과 정치

제1장 신라 중대를 연 태종무열왕의 혼인

Ⅰ. 문제 제기
Ⅱ. 김춘추의 혼인에 대한 재검토
Ⅲ. 김춘추의 적자와 서자에 대한 검토
Ⅳ. 김춘추 딸들의 혼인 관계

제2장 문무왕의 혼인과 위기 극복
Ⅰ. 문제 제기
Ⅱ. 문무왕과 자의왕후의 혼인
Ⅲ. 취리산 회맹과 정명의 태자 책봉
Ⅳ. 문무왕의 유조와 태자 정명

제3장 신문왕대 족내혼과 그 유산
Ⅰ. 문제 제기
Ⅱ. 정명의 혼인과 왕비의 출궁
Ⅲ. 신문왕과 신목왕후의 혼인
Ⅳ. 신문왕의 원자와 아들에 대한 재검토

제4장 효소왕대 모후 세력과 정국의 향배
Ⅰ. 문제 제기
Ⅱ. 효소왕 즉위 시 나이 문제와 태자 책봉
Ⅲ. 효소왕 전반기의 정국과 신목태후
Ⅳ. 효소왕의 정국 주도와 경영의 난

제Ⅱ편 신라 중대 왕실의 족외혼과 정치

제5장 성덕왕대 김순원 세력의 등장

Ⅰ. 문제 제기
Ⅱ. 김원태 세력과 성정왕후의 입궁
Ⅲ. 성정왕후의 출궁과 왕권의 안정
Ⅳ. 소덕왕후의 입궁과 김순원 세력의 확대

제6장 효성왕대 외척 세력과의 대립과 갈등
Ⅰ. 문제 제기
Ⅱ. 박씨 왕비의 책봉을 통한 왕권의 안정 추구
Ⅲ. 혜명왕후의 등장과 왕권의 후퇴
Ⅳ. 후궁 세력의 몰락과 왕권 강화의 실패

제7장 경덕왕대 외척 세력 퇴출과 한계
Ⅰ. 문제 제기
Ⅱ. 헌영과 삼모부인의 혼인 배경
Ⅲ. 삼모부인의 출궁과 사량부인
Ⅳ. 경덕왕과 만월부인의 혼인
Ⅴ. 삼모부인의 재등장과 경덕왕의 정국 운영

제8장 혜공왕대 원·차비의 공존과 신라 중대의 종말
Ⅰ. 문제 제기
Ⅱ. 만월부인의 섭정하에서 혜공왕의 혼인
Ⅲ. 혜공왕의 친정과 차비와의 혼인

신라 중대 왕권과 외척 세력―결론에 대신하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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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조범환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강대학교 재학 중 부전공으로 선택한 역사학에 매료되어 1986년 같은 대학 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한국고대사를 전공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말여초 선종 불교 사상에 관심을 두어 ��新羅禪宗硏究��(一潮閣, 2001), ��羅末麗初 禪宗山門 開創 硏究��(景仁文化社, 2008), ��羅末麗初 南宗禪 硏究��(一潮閣, 2013) 등의 저서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나말여초 정치사와 관련한��중세로 가는 길목 신라하대사��(새문사, 2018)도 세상에 보탰다. 최근에는 고대 삼국의 정치 및 사회사 등의 연구에 치중하고 있으며, 특히 재당 유이민 묘지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학술지에 처음으로 「新羅末 朴氏 王의 登場과 그 政治的 性格」을 발표한 이후 다수의 논문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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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신라 중대 왕실 혼인의 특징은 신라사 전체를 통하여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왕비의 지위를 둘러싼 지배집단 간의 치열한 권력 쟁탈이라는 견해가 주목된다. 이와 같은 지적은 신라 중대에 지배집단의 규모가 축소되는 가운데 권력을 잡기 위하여 왕비 자리를 놓고 쟁탈전이 벌어졌다고 본다. 지배집단 간의 권력 쟁탈이 왕비 자리를 두고 격화되었다면 이는 신라 중대 정치사를 기존의 이해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신라 중대를 연 김춘추는 두 번 혼인하였는데, 그의 혼인 방식은 이후 신라 중대 왕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김춘추의 혼인은 중혼이었으나 중대의 나머지 왕들은 선비를 출궁시킨 다음 후비를 얻었다. 이는 신라 중대 왕실 혼인의 특징인데, 그것이 김춘추로부터 시작되 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한 가지 더, 김춘추의 혼인은 가야계인 김유신 집안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보다 진흥왕과 피를 나눈 형제와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김유신의 모계는 입종 갈문왕의 후손이었다. 이는 두 집안이 입종 갈문왕의 후손으로서 혼인하였음을 말해 주는 것으로, 신라 중대에는 그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 갔다. 그러나 이런 혼인 방식은 훗날 왕권 강화를 저해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신문왕이 후비로 맞이한 신목왕후는 그의 사촌 여동생이므로 그들의 혼인은 족내혼이다. 이는 그동안 진흥왕을 중심으로 한 방계에서 여인을 맞이하던 관습에서 벗어난 행동일 뿐만 아니라 문무왕이 새로운 가계에서 여인을 맞아들이려 한 노력에서도 벗어난 것이었다. 도리어 혼인 범위가 좁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신문왕이 외척 세력을 물리치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걸림돌이 될 여지를 제거한 조치이자 다른 가계에서 여인을 맞이하기를 거부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혼인을 신문왕대 전제왕권의 확립이라는 틀로써 설명하기에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다만 근친혼과 친영례를 통해 신문왕이 새로운 통혼권을 추구하였고 더 나아가 왕권의 안정을 기하고자 하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이치에 맞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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