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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서양근현대사
· ISBN : 9788933707012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15-09-18
책 소개
목차
서문_같은 시대를 겪은 한 미국인의 평가
저자 서문_유보트함대의 비극과 잠수함전의 실상
역자 서문_한 생존자가 남긴 이야기
해제_대서양전투를 보는 또 하나의 생생한 시점
제1부 영광의 시기
기다림
악운
첫 사냥
위기일발
로리앙
삶과 죽음 사이
영광의 시기
전출
U-230
제2부 우리 머리 위의 지옥
브레스트
암흑의 5월
장기휴가
죽음의 계곡
옛 영광
깡통들이 함께하는 지옥
가라앉는 운명
지브롤터 돌파
죽어 버린 도시
제3부 재난과 패배
늙은 짐말
폭풍 전야
D-day
사망통지서
브레스트의 종말
마지막 잠수함
악전고투
사자와의 재회
강철의 관
종전
에필로그
부록_1939~1945년의 유보트 손실, 대서양전투의 대차대조표, 용어해설
리뷰
책속에서
나는 다음 날 아침 08시에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U-557에 승함했다. U-557은 온갖 풍상을 다 겪은 배였다. 함교탑은 초현실주의자의 그림 같았다. 회색 페인트로 도장된 표면 곳곳이 떨어져 나가 녹을 막기 위한 붉은 밑칠이 보였다. 사방이 녹슬어 있었다. 심지어 그리스를 두텁게 칠한 전방 갑판의 88mm 함포 포신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강철 선체를 덮은 나무 갑판은 옅은 녹색의 해조류가 달라붙어 있었다. 이는 분명히 발트 해에서 겪은 수개월간의 훈련 때문일 것이었다. 나는 강한 흥미를 느꼈다.
전속 명령서를 함장(Captain)에게 제출하며 말했다.
“중위님, 전입을 신고합니다.”
함장이 서류를 흘긋 보고는 고함을 질렀다.
“악마가 사령부에 장난이라도 쳤나? 이미 자네같이 진짜 유보트 냄새도 못 맡아 본 견습사관 두 명으로 날 괴롭히더니만!”
그리고는 인상적인 욕설과 함께, 내가 여분의 무게추로나 쓸모가 있으리란 희망을 표현했다.
이 환대는 실망스러웠지만 함장은 실망스러운 인물이 아니었다. 오토카르 파울센(Ottokar Paulssen) 중위는 금발의 작고 땅딸막한 30대 초반의 사내였다. 재치 있는 푸른 눈이 흰색 정모 밑에서 번득였다. 승함 기간 동안 함장만이 쓸 수 있는 흰 정모의 구리 장식에는 푸른 녹이 보였다. 그가 걸친 연회색 가죽 재킷은 어깨와 주머니 부분이 굵은 실로 손바느질이 된 듯했다.
왼쪽 견장에 부착된 멋진 띠 모양의 해군 장식은 거의 하얗게 탈색되었고 구겨진 바지 아래로 커다란 가죽 장화가 두드러졌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파울센 중위는 내가 상상하던 이상적인 유보트 함장과 정확히 일치했다.
U-557이 서서히 공격 위치로 기동했다. 호위함 하나가 어둠을 뚫고 우리를 향해 다가왔지만 거대한 화물선에 바짝 붙어 은밀히 따돌렸다. 함장은 뒤에서 무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누구도 강풍이 몰아치는 소용돌이에서 우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함장이 집요하게 두 선박 종대 사이로 배를 몰고 들어가자 뚱뚱한 그림자들이 괴물처럼 커졌다. 함장이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소리쳤다.
“부장, 표적을 선정해라! 빨리 해!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표적이 종대로 늘어서 있다. 전 어뢰발사관 사격 준비… 준비….”
“키 오른편 전타!”
함장이 고함치며 지시했다.
“부장, 발사!”
몇 초 후 어뢰 두 발이 발사관에서 뛰쳐나갔다. 신속하게 다음 어뢰 2발도 겹쳐진 선박을 향해 부채꼴로 발사되었다. 마지막으로 함미 발사관의 어뢰가 종대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표적을 향해 거품을 일으키며 돌진했다. 우리는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세 번의 거대한 폭발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화산 세 개가 거의 동시에 분화했다. 날카로운 충격 세 번이 배를 강타했고 오성신호탄 수십 개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낙하산 조명탄이 구름에 걸리면서 넓은 해수면을 섬뜩한 녹색과 노란색 섬광으로 밝혔다.
5월 27일에 우리는 산소와 배터리가 부족하여 부상했다. 긴장감이 절정에 달했다. 내 신경은 곤두섰고, 혀가 바싹 탔다. 나는 지금 당장 우리가 공격을 받는다면, 도저히 살아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디젤엔진이 오래 쿵쾅댔고, 공기흡입구가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만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한 시간의 유예가 주어진 다음, 우리의 시간이 다시 끝났다. 거대한 빛줄기가 급작스럽게 함교를 밝혔다. 빛은 우현 함미 쪽으로부터 왔다. 거대한 리버레이터 폭격기가 또다시 하강하면서 기관총의 총구화염이 번득였고, 총탄이 우리 머리 위를 간발의 차이로 스쳤다. 적기는 밤하늘 속으로 울부짖으며 사라졌고 탐조등도 꺼졌다. 폭탄 네 발이 공기 중으로 물을 뿜어대는 간헐천을 만들었다. 배는 거칠게 흔들렸으나, 추가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다. 우리는 즉시 잠항했다.
나는 함장실에서 소금기가 엉겨 붙은 가죽 재킷을 막 벗고 있는 함장을 지나쳤다. 그는 위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야 알겠네, 부장. 우리 메톡스 경보기는 완벽하게 작동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어. 영국이 뭔가 새로운 레이더를 개발한 게 확실하다고보네. 내 생각이네만, 그렇지 않고선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어.”
우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처음에는 항공모함 때문이었고, 이번에는 영국 항공기들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지 않고 우리를 찾아낼 수 있는 새로운 전자전 기법 때문이었다. 이제 더 이상 낮에 잠항하고 밤에 부상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전술을 반대로 바꾸어, 육안으로 대공 경계가 가능한 낮에 부상해서 항해하고, 밤에 잠항하기로 했다. 밤 동안 두들겨 맞아 산산조각 나는 것보다는 낮에 대공포로 응사라도 시도하는 편이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