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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속 근대한일관계

세계사 속 근대한일관계

나가타 아키후미 (지은이), 김혜정 (옮긴이)
일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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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속 근대한일관계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세계사 속 근대한일관계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근대개화기
· ISBN : 9788933707296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17-03-20

책 소개

1876년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1945년 광복까지라는, 다소 짧은 기간의 한일관계를 중심으로 다룬 책이다. 한 세기도 되지 않는 동안 근대 조선과 일본을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사를 통해 오늘날 한일관계를 되짚어본다.

목차

서문

들어가며
고대~7세기 조선과 일본 / 원과 고려·일본 / 조선왕조의 건국과 조일관계

제1장 조선의 개국과 당시 국제정세
1.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붕괴와 조선
왜란과 통신사/ 쇄국과 개국
2. 일본의 도막·메이지 유신과 조선
메이지 유신과 ‘정한’의 주장
3. ‘정한론’의 대두와 조일수호조규의 체결
‘정한론’과 그 배경 / 조일수호조규의 체결
4. 조선 문제의 ‘국제화’
수교 후 조선과 일본 / ‘음모의 바다’로
5. 조선을 둘러싼 청일대립 및 청의 우위와 조선
민중의 곤궁과 임오군란 / 갑신정변 / 조선에서 청의 우위 확립과 일본의 대응

제2장 청일전쟁 및 러일전쟁과 조선(한국)
1. 청일전쟁과 조선
갑오농민전쟁 / 청일전쟁의 개전
2. 청일전쟁 이후 조선(한국)에서 러시아의 우위
명성황후 시해 / 러시아의 우위 / 대한제국의 탄생과 독립협회 / 독립협회의 해산
3. 영일동맹 및 러일교섭과 한국 문제
청에 대한 열강의 이권 침탈 / 러일전쟁 전야
4. 러일전쟁과 한국 문제
한일의정서 및 제1차 한일협약의 체결 / 일본의 독도 편입

제3장 한국에서 일본의 지배권 확립과 열강
1. 일본의 한국 보호국화와 국제관계
러일강화조약과 ‘가쓰라-태프트 협정’ / 고종의 외교활동 /
친일단체 일진회의 등장과 을사보호조약
2. 한국 내 ‘통감정치’의 전개와 열강
제3차 한일협약의 체결 / 항일운동의 전개
3. 일본의 한국병합과 국제관계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 / 일본의 한국병합

제4장 일본의 조선통치 시작과 국제관계
1. 일본의 조선 ‘무단통치’의 시작과 국제관계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토지조사사업 / 105인 사건의 발생 /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전개
2. 국제정세의 변동과 3·1운동
제1차 세계대전과 파리강화회의 / 3·1독립운동
3. 3·1운동의 전개 및 진압과 국제관계
3·1운동의 전개 / 재외 조선인의 활동 / 3·1운동의 진압과 ‘무단통치’의 종언
4. 일본의 조선‘문화정치’의 전개와 조선독립운동의 지속
새로운 통치정책―‘문화정치’ / 끊임없이 계속되는 독립운동
5. 워싱턴회의 및 ‘극동노동자대회’와 조선 문제
미국의원단의 조선 방문 / 하딩 정권 발족과 조선 문제 / 워싱턴회의와 ‘극동노동자대회’
6.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관동대지진의 발생 / 대지진 당시 조선인 살해
7.‘문화정치’기 조선과 일본의 대응
조선독립운동의 분화 /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회유 / IPR 참가문제

제5장 긴박한 국제정세와 조선의 ‘대륙병참기지’화
1. 만보산 사건 및 만주사변과 조선 문제
만보산 사건 / 만주사변과 ‘만주국’의 건국
2. 조선의 ‘대륙병참기지’화와 국제관계
1930년대의 상황 / 베를린 올림픽과 ‘일장기 말소 사건’ /
운산금광 경영·채굴권 회수활동 / 재소 조선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3. 중일전쟁의 개시와 조선 문제
중일전쟁과 조선인 병사 / 조선인 노동력 동원 /
전선의 확대 및 장기화와 ‘종군위안부’ /광산권익의 매수

제6장 일본의 조선통치 종언과 조선의 남북분단
1. 일본의 조선 ‘황민화정책’과 국제관계
신사참배 / 철저한 일본어 교육 / 창씨개명 / 일본과의 결전
2. 태평양전쟁의 개전과 조선
태평양전쟁으로 가는 길 / 태평양전쟁의 개전과 조선
3. 태평양전쟁의 전개와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
추축국과 연합국 / 카이로 회담과 테헤란 회담
4. 일본의 패전 및 조선통치의 종언과 조선 문제
얄타 회담 / 유럽전선의 종결 / 원폭투하와 소련의 참전 /
‘38도선’의 탄생 / 포츠담 선언의 수락 /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발족 /
‘조선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 재일 한국·조선인의 그 후

나가며
에도시기에서 메이지시기까지의 조선과 일본 / 일본의 조선통치와 그 구조 /
일본 패전 후 조선 분할점령과 통치 / 미국의 조선(한국)정책(19세기~1945년) /
‘38도선’이 결정된 경위 / 러시아·소련의 조선(한국)정책 / 중국의 조선(한국)정책 /
조선의 움직임과 그 배경 / 조선독립운동과 민족주의 / 독립운동의 분열과 한반도의 미래

옮긴이 후기
미주
도판출전 일람
주요참고·인용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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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나가타 아키후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8년 오사카大坂 출생. 와세다대早稻田大 정치경제학부 경제학과와 교토대京都大 법학부를 졸업하고, 히토쓰바시대一橋大 대학원 법학연구과 석사과정을 수료한 뒤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공분야는 한일관계사와 아시아태평양국제정치사이다. 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현재 국제대학원) 객원연구원(2001~2002)과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2009~2010)을 지냈다. 현재 조치대上智大 문학부 사학과 교수이다. 주요저서로는 『セオドア·ル-ズベルトと韓國─韓國保護國化と米國』(未來社, 1992)〔한국어판: 『미국, 한국을 버리다』, 기파랑, 2007〕, 『日本の朝鮮統治と國際關係..朝鮮獨立運動とアメリカ1910-1922』(平凡社, 2005)〔한국어판: 『일본의 조선통치와 국제관계─조선 독립운동과 미국 1910-1922』, 일조각, 2008〕, 공저로는 『現代東アジア─朝鮮半島·中國·臺灣·モンゴル』(慶應義塾大學出版會, 200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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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강대학교에서 「일제의 고문정치와 한국재정 침탈」(2004)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학교 대우교수를 거쳐 세종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서강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논문으로는 「구한말 일제의 엽전정리와 한국민의 저항」(1987), 「청일전쟁 이후 일제의 고문정치 실시와 목적」(2005), 「일제의 재정고문부 조직과 운영(1905~1907)」(2015), 공저로는 『통감부 설치와 한국 식민지화』(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0), 역서로는 『유교사회의 창출』(일조각, 2000), 『한국 사법제도와 우메 겐지로』(일조각, 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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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875년 12월 9일에는 데라시마와 주일 미국공사 존 빙햄John Bingham이 회담을 가졌는데, 이때 빙햄은 이십몇 년 전 페리함대가 일본에 왔을 당시 페리가 직접 기록한 교섭 내용인 『일본원정기日本遠征記』를 데라시마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은 일찍이 페리가 일본에 강요했던 것을 이번에는 상대를 바꿔 일본이 조선 측에 강요하는 것이 ‘수순’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 제1장 「조일수호조규의 체결」


미국의 정책에 대해 일본과 제1회 러일협약으로 북만주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 러시아 역시 위기감을 갖게 되었고, 러시아와 일본은 더욱 협력함으로써 그에 대처하려 했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병합을 서둘렀다. 왜냐하면 미국이 일찍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승인해주기는 하였으나, 만주에 대한 태프트 정권의 ‘달러외교’ 여파가 한국에 미치게 될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 제3장 「일본의 한국병합」


FDR은 완전히 유명무실해진 국제연맹 대신 설립하기로 한 국제조직인 UN에 의한 신탁통치 하에 조선을 40년간 두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그 제안에 대해 처칠과 스탈린은 반대하지 않았다. FDR이 그러한 제안을 한 이유는 미국의 필리핀통치로 필리핀은 회복되었고 1931년의 미국과 필리핀의 합의에 따라 15년간의 회복기(유예기간)를 거쳐 1946년에 독립할 예정이라는 것, 그러한 예에 비추어 조선인은 일본의 통치 하에 30년 이상 있었으므로 통치능력과 경험이 부족할 것이고 때문에 어느 정도의 훈련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FDR의 판단이었다. 단 그의 그러한 판단에는 독립을 염원하는 조선인의 생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편견이 있었던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 제6장 「카이로 회담과 테헤란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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