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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근대개화기
· ISBN : 9788933707319
· 쪽수 : 528쪽
책 소개
목차
책을 내면서
제1부 대한제국을 둘러싼 러일의 대립과 전쟁
제1장 러일전쟁의 발발과 추이
1. 러일전쟁 연구의 동향과 시각
2. 러일의 군사적 대립과 전쟁 발발
3. 대한제국 정부의 동향
4. 문명개화론자의 동향
5. 전쟁의 추이와 파장
제2장 러일전쟁의 전개과정
1. 러시아군의 남하와 일본군의 북진
2. 러시아군과 일본군의 작전구상과 편제
3. 후반기 교전상황
4. 강화조약과 종전
제2부 전쟁과 동원
제1장 러일전쟁과 평안도의 사회경제상
1. 러시아군에 의한 인적·물적 피해상황
2. 일본군에 의한 인적·물적 피해상황
3. 군용수표 유통과 통화시스템의 왜곡
4. 지역경제와 ‘대동강 프로젝트’
제2장 러일전쟁과 함경도의 현실
1. 인적·물적 피해상황
2. 대내외 교역과 지역경제
3. 저항과 협력의 사례
4. 군정 시행과 진위대 폐설
제3장 러일전쟁과 한국인 포로
1. 전시 동원과 포로
2. 포로가 되는 경위
3. 현지 생활과 귀환과정
4. 전시 국제법에서 소외된 한국인 포로
제3부 러일전쟁의 경제적 배경과 결과
제1장 러일전쟁 시기 경제적 수탈
1. 철도부설권 독점과 해운권 장악
2. 「대한방침」과 「대한시설강령」 내용 실현
3. 황무지 개간안을 통한 토지 점탈 기도
4. 제일은행권 유통과 화폐정리사업
제2장 삼림채벌을 둘러싼 러일의 경쟁
1. 러시아 정부의 논의와 추진방안
2. 일본의 개입과 ‘대항이권’ 공작
3. 러일전쟁 이후의 상황 변화
제4부 가중되는 탄압과 저항
제1장 반일운동의 탄압 양상
1. 대한제국 정부 및 지방관의 의병진압
2. 경찰·순사의 의병 정찰, 진압, 체포 및 살해
3. 헌병보조원 활용
4. 밀정의 파견·제보·정탐 및 지역민의 밀고
제2장 일본의 국권 침탈 양상
1. 을사늑약과 민영환의 자결
2. 헤이그 특사와 파장
3. 광무황제 폐위
4. 일제의 한국주차군 배치와 군사력 감축
5. 군대해산
제3장 반일운동의 전개 양상
1. 민중과 반일의병
2. 서울 시민의 투쟁
3. 시위대·진위대의 항쟁
4. 해산군인의 독립군으로의 전환
제5부 인식론과 논의의 지점
제1장 허위의 개혁론과 시국인식
1. 활동과 인맥
2. 러일전쟁 전후의 개혁론과 인식변화
3. 러일전쟁 이후 상황과 시국인식
4. 면직·구금·강제귀향
제2장 삼국제휴론의 논의 기저
1. 삼국제휴론의 대두와 수용
2. 문명개화론자의 인식과 논리
제3장 동양평화론의 대두와 논리
1. ‘동양평화론’의 출현과 확장
2. 대한제국 관료와 황실
3. 일진회 계열과 친일인사
4. 민족주의 계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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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당시 한국 내 러일 군대의 주력 동선이 인천-서울-평양-정주-의주-압록강-만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본군의 만주 진출 이후 평안도 지역의 전투는 소규모 게릴라전을 제하면 큰 내용이 없었다. 만주 방면의 주요 전투는 1904년 2월 일본군의 뤼순 항 기습, 5월의 난산南山전투, 8월의 랴오양전투, 10월의 샤허沙河전투와 1905년 1월의 뤼순공방전, 3월의 펑톈(심양)대회전 등으로, 이후 큰 전투는 없었다. 사할린전투도 이미 1905년 7월 7일 남사할린에 상륙한 일본군 13사단이 24일 북사할린에 상륙하여 같은 날 31일 러시아군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종결되었다. 반면 러일전쟁 초기부터 시작되어 일본군의 압록강 도하 이후에도 육해전으로 이어지던 함경도 지역의 전투는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강화조약」으로 종전이 공식화된 이후에도 크고 작은 전투가 일정 기간 지속되었다.
함경도 지역 전투는 한국과 러시아의 국경선 및 동해에 접해 전개된 전투였다. 한편 이 전투의 승패 여부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일본군의 자국 영토로의 진입이 우려됨은 물론 정반대로 일본 본토 진입 계획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일본 입장에서도 이 지역이 일본과 가장 근접한 전장지였는데,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점으로 한 러시아 함대의 일본 영토에 대한 잦은 침입이 우려됨과 동시에 만주전투와는 별개로 러시아 영토인 연해주와 사할린, 나아가 시베리아 진출에 대한 열쇠가 되기 때문이었다.
― ‘제1부 대한제국을 둘러싼 러일의 대립과 전쟁’ 중에서
의주군수 남치원은 2월 16일 러시아군의 압록강 도강 이후 양초우마粮草牛馬의 응접과 도시와 시골[城村] 인민이 뿔뿔이 도망쳐 흩어지는 것이 나날이 더욱 심해서 한없이 물건을 보냄에도 그들의 구하는 것은 끝이 없고 주민의 피난으로 읍내는 ‘모든 집이 텅 비어버린(十室十空)’ 형세라면서 다음과 같이 하소연하였다.
바야흐로 지금 경작기에 임해 (農牛를) 아라사인이 매일 도살하여 가격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 태반이오니 백성이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려도 어느 곳에 호소할 것이며, 둔병屯兵 내왕이 불과 1달에 도시[城底]는 십실십공十室十空하여 노인과 아이가 서로 손을 잡고 이끌고 너른 들로 끊임없이 울면서 도로에서 방황하는 정황을 차마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으며, 연로 좌우 10리 정도에 사람과 연기가 희소하옵고 …
― ‘제2부 전쟁과 동원’ 중에서
이중하는 그로부터 보름 후의 보고에서도, 일본군이 군량·마량·군용 각 종과 운수의 인부·우마를 민호에 분배하여 민정의 곤란은 대로와 벽읍이 모두 같고, 징수물품을 배정하고 사역使役으로 몰아세우고 압박하는 데 두서가 없어 관리와 백성이 의지할 길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순안·안주·용강·양덕 등은 관청이 비어 거의 무읍無邑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군수는 쓸쓸히 마을[村閭]에 있고 이서와 하인[吏隸]은 흩어지고 여행자[行旅]는 일본군의 조사와 수색으로 인해 스스로 발걸음을 끊고 청년들[丁壯]은 물자를 나른다는 연유로 모두 업을 잃고 절도竊盜가 제멋대로 행해진다면서 그 ‘처참함은 차마 볼 수 없다’는 사정을 전하였다. 미국인 종군기자 잭 런던Jack London도 평양을 지나 압록강 대안 중국 안둥과 펑황청까지 가는 길에서 본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선의 북쪽 지방은 일본군이 통과할 때 이미 황폐해진 상태였다. 도시와 마을은 텅 비어 있었고 논과 들은 버려져 있었다. 김을 매지도 않았고 파종도 하지 않았으며 이 들에는 녹색 식물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 거의 모든 마을에서 종류를 막론하고 단 한 톨의 곡식도 구할 수 없었지만 …
― ‘제2부 전쟁과 동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