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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33872390
· 쪽수 : 420쪽
· 출판일 : 2024-05-21
책 소개
목차
• 작가의 말
•• 나목
••• 작품해설
전쟁상태적 신체의 탄생, 혹은 점령당한 영혼에 관한 보고서 _권명아(문학평론가, 동아대학교 교수)
•••• 헌사
그 거대한 빛, 속삭임, 아우성 _김금희(소설가)
멀고도 깊은 곳에서 _최은영(소설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러나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회색빛 고집이었다. 마지못해 죽지 못해 살고 있노라는 생활 태도에서 추호도 물러서려 들지 않는 그 무섭도록 딴딴한 고집. 나의 내부에서 꿈틀대는, 사는 것을 재미나 하고픈, 다채로운 욕망들은 이 완강한 고집 앞에 지쳐가고 있었다.
문득 나는 내가 전에 애송한 시의 구절을 생각해내려고 골몰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남의 흉내, 빌려온 느낌은 그것을 깨닫자 흥을 잃고 싱거워졌다. 그리고 가식 없는 나의 것만이 남았다. 그것은 무섭다는 생각과 춥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만이 온전한 나의 것이었고 그 느낌들은 절실하고도 세찼다. 나는 어두운 길을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무섭다’를 거푸 뇌까리며 ‘무섭다’ ‘춥다’에 떠밀리듯이 달음질쳤다.
피로와 상심이 짙게 밴 음성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난 뭐라고 대꾸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피곤과 상심은 남의 어설픈 헤아림이나 보살핌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어쩔 수 없는, 그만의 것 —체취 같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북녘 하늘에서 포성이 은은히 울렸다. 두려움과 기대 같은 것으로 가슴이 울렁거려왔다.
나는 승전이고 휴전이고 간에 평화 같은 것은 믿지 않았다. 다만 전쟁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일만이 앞으로 수없이 되풀이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