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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궐

창궐

(제171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치호 미치 (지은이), 민경욱 (옮긴이)
비채
1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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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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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창궐 (제171회 나오키상 수상작)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73324604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6-01-15

책 소개

제171회를 맞은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 나오키상, 낯선 작가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가며 문학계 안팎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나오키상 수상작 《창궐》은 원인 불명의 전염병이 번진 도시를 배경으로 여섯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이다.

목차

날개가 다른 새
로맨스☆
반딧불이
특별 연고자
축복의 노래
잔물결 드라이브

저자소개

이치호 미치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오사카에서 태어나 간사이 대학 사회학부를 졸업했다. 동인지에서 팬픽 소설을 집필하던 중 편집자의 눈에 띄어 2007년부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장편소설 《스몰 월드》를 발표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고, 이 작품으로 제9회 시즈오카 서점대상과 제43회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신인상을 수상했다. 이어 2024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 인물 군상을 묘파한 소설집 《창궐》로 제171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창궐》의 원제는 ‘쓰미데믹’. 죄를 뜻하는 일본어 ‘쓰미’와 팬데믹의 ‘데믹’을 이어 붙인 것처럼, 《창궐》은 전염병이 번진 세계에서 저마다 크고 작은 죄를 저지르는 인물과 그 여파를 조명한다. 그럼에도 이치호 미치의 집필 원칙은 “등장인물 중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라는 것. 선인이든 악인이든,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간에 모든 인물에게 각자의 신념과 살아온 삶이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현재도 독창적 서사와 생생한 인물 조형, 날카로운 시선으로 왕성하게 집필 활동을 이어가며 일본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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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욱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인터넷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며 1998년부터 일본문화포털 ‘일본으로 가는 길’을 운영했으며, 현재는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주요 역서로는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류》, 《내가 죽인 사람 나를 죽인 사람》, 《죄의 끝》,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정근》,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레이크사이드》, 《방황하는 칼날》, 《11문자 살인사건》, 《브루투스의 심장》, 《몽환화》, 요시다 슈이치의 《거짓말의 거짓말》, 《여자는 두 번 떠난다》, 이치호 미치의 《창궐》, 아사히 료의 《정욕》, 《생식기》, 야쿠마루 가쿠의 《데스미션》, 《빈곤의 여왕》, 치넨 미키토의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신카이 마코토의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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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 좋은 대학, 좋은 회사라는 인생의 선로를 순조롭게 걸어 저런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니 머리를 막 헝클어뜨리고 싶었다. 고압적인 학원 강사, 특정 여학생을 끈적한 눈으로 보는 교사, 밥도 제대로 못 짓는 주제에 허세를 떠는 아버지의 얼굴이 머리에 떠오른다. 주위의 성인 남성을 경멸하고 나니 혐오감이 치솟는 한편 가슴이 후련해졌다. 이런 녀석들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무섭지 않다는 마음이 커졌고 성적 고민도 별것 아닌 듯 마음이 가벼워져 오히려 공부가 잘됐다. 유토는 종종 ‘#가출소녀’를 검색했다. 그때마다 남자들의 빤한 감언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화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안에서 그로테스크하게 번쩍번쩍 빛나는 욕망을 증오하고 비웃으면서도 응시했다.


아이스커피 한 잔에 사람을 부린다는 죄책감은 곧 흐려졌다. 그러려고 만들어진 비즈니스이고 가벼울수록 배달하기 쉽지 않을까. 배달할 수 있는 지역 안에서 하루에 두세 번씩 주문할 때도 있었는데 여전히 그 미남과는 만나지 못했다. 아이콘이 뜰 때까지의 기다림에 가슴이 뛰고 온몸의 세포가 활성화된 듯 느껴졌다. 과장이 아니라 ‘살아 있다’라는 짜릿함에 가까운 실감이 들었다. 또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은 남아 있다. 다음 주문에서는, 내일 주문에서는,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긴 의자에 눕는다. 물건을 만질 수는 없는데 이렇게 누울 수는 있다. 그러나 좌석의 감촉은 없다. 죽는다는 거 신기하네. 머리카락을 잡아 눈앞으로 가져오니 갈라진 머리카락이 여러 개 보였다. 이런 건 살아 있을 때랑 똑같네. 몸을 일으켜 창밖을 본다. 국도와 도로변에 늘어선 중고 서점과 야키니쿠, 파친코 가게. 도쿄 도심까지는 전철을 갈아타고 거의 한 시간 반. 일본 어디에나 있는 어정쩡한 시골 풍경은 십오 년 전과 전혀 변함이 없어 보였다. 흘러가는 빛과 산의 실루엣. 하행선 전철과 스친다. 창에 내 모습은 비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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