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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신화/종교학 > 종교학 > 종교학 일반
· ISBN : 9788934119043
· 쪽수 : 646쪽
· 출판일 : 2018-12-15
책 소개
목차
추천사
박경수 박사(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 교수)
최상준 박사(한세대학교 교회사 교수)
삽화 목록 / 10
저자 서문 / 12
역자 서문 / 14
서론 새 것이 되었도다 / 16
제1부 유럽의 종교개혁
제1장 기독교: 더 큰 그림 / 38
제2장 천사들과 종교개혁 / 49
제3장 동정녀 마리아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들 / 63
제4장 존 칼빈 / 101
제5장 트렌트 공의회 / 124
제6장 이탈리아 종교재판소 / 136
제2부 잉글랜드 종교개혁
제7장 튜더 왕조의 이미지 메이킹 / 150
제8장 헨리 8세: 경건한 왕 / 161
제9장 관용적인 크랜머? / 199
제10장 공중기도서의 제작 / 226
제11장 튜더 왕조 여왕들: 메리와 엘리자베스 / 246
제12장 윌리엄 버드 / 259
제13장 킹 제임스 역 이전의 성경 / 273
제14장 킹 제임스 성경 / 286
제15장 베이 시편집 / 302
제3부 잉글랜드 종교개혁에 대한 회고
제16장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지형도 / 318
제17장 잉글랜드국교회의 좌표 / 350
제18장 잉글랜드 종교개혁에 대한 현대 역사가들의 연구 / 382
제19장 토머스 크랜머의 전기 작가들 / 408
제20장 리처드 후커의 명성 / 447
제21장 날조된 종교개혁 역사: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 / 509
제22장 결론: 성공회주의의 특성 / 569
미주 / 575
색인 / 643
책속에서
여기에서 분명히 해야 할 중요한 단서가 있다. 옛 서구의 교회는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이야기와 반종교개혁 이야기들이 주로 근거로 삼고 있는 것만큼 엄청나게 부패한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잉글랜드에서 그랬지만, 잉글랜드와 불편한 이웃 관계였던 아일랜드와 같이 덜 예측 가능했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세 아일랜드의 교회 조직이 혼돈스럽고 역기능적이기는 했지만, 종교개혁이 있기 한 세기 전부터 특히 아일랜드의 서부 게일 (Gaelic) 지역 등에서 비상한 신앙부흥의 징조가 많이 있었다. 이 부 흥은 프란체스코(Francis) 수도사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들은 아일 랜드의 서부 전역에 걸쳐 수도사들의 유산을 남겨 놓았다. 이 운동은 죽어가는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루터의 도움 없이 진행된 강렬한 변화의 과정이었다. 따라서 옛 교회가 비틀거리고 있어서 손끝만 대도 곧 넘어지고 무너질 것 같았다고 말하는 것은 프로테스탄트의 신화일 뿐이다.
초대교회에 대한 크랜머의 독특한 역사적 상대주의(historical relativism)는, 양 극단의 분파주의 위협에서 교회를 지켜내려는 그의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목표를 마음에 품은 크랜머로서는 부처와 칼빈의 발전된 교회론의 매력과 사도적 교회의 체계를 회복하려던 그들의 노력에 귀를 닫을 수밖에 없었다. 급진주의자들이 끊임없이 외치던 것이 사도들의 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급진주의자들은 사도적 교회가 시민 정부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고 생각했으며(사실, 그들이 옳았다), 또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서구 기독교에 대해 행한 것들에 대해서도 솔직히 적대적이었다.
동시에, 다른 분파들에게도 적대적이었던 크랜머는 전통주의자 교회가 성경의 권위에 대항하여 ‘기록되지 않은 진리들’을 언급하는 오류를 통해 계속해서 거짓된 권위를 주장하는 것을 비난했다.
해법은 간단했다.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모두 잡는 것이었다. 교회에 대한 그 어떤 독립적 권위나 정체성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면 되었다. 이것이 바로 크랜머가 1540년에 불거진 문제들에 대해 내놓은 해답이었다.
1550년대에 중요한 단계가 찾아왔다. 문화적, 언어적 배경을 불문 하고 다양한 망명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런던의 ‘나그네교회’(Stranger Church)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교회 감독은, 사실상 주교는, 다름 아닌 얀 라스키였다. 라스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1548 년에 찰스 5세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에 ‘임시’(Interim) 체제가 시행 되자 동프리슬란트를 떠나 잉글랜드로 온 사람이었다. 잉글랜드 정부는 라스키의 리더십을 통해 망명자들 사이에 있던 신앙적 급진주의를 제어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상당히 큰 사례비와 그 도시에서 가장 큰 교회들 중 하나인 어거스틴 수도회(Augustin Friars)를 주었다. 라스키는 교회를 잘 목회함으로써 잉글랜드가 어떻게 순수한 개혁파교회를 얻을 수 있는지 보여 주었다(이것은 분명히 여러 잉글랜드 정치 지도자들의 의도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