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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34973522
· 쪽수 : 340쪽
책 소개
목차
소년이 본 남자 011
자식을 잃은 남자 059
240호실의 남자 109
이니셜이 ‘M’인 남자 161
육교의 남자 209
선택받은 남자 255
후기 322
탐정을 지망하는 남자 325
옮긴이의 말 336
리뷰
책속에서
“스즈키 약국에서 듣고 찾아왔습니다. 실례지만 사와자키 씨 맞습니까?”
남자는 정확한 일본어를 구사했다. 눈이 가늘고 길며 눈썹과 수염이 옅은 전형적인 조선인—아니면 한국인이라고 해야겠지—의 외모였다. 바둑 기사 조치훈 9단이 십 년 더 나이 들고 20킬로그램 정도 체중을 줄인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저는 최정희라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꼬았다. 따라하라고 해도 따라할 자신이 없는 발음의 이름이었다.
“그렇게 해선 이름을 들은 것 같지 않군.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주면 좋겠는데.”
나는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을 한 장 빼더니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그걸 건네주었다. 명함에는 ‘사이테이키(崔貞熙)’라는 이름과 니시신주쿠 7초메에 있는 아파트 주소, 전화번호가 함께 적혀 있었다. 주소로 보아 이 사무실에서 직선거리로 400미터 떨어진 곳이다.
“사이(崔) 씨라고 불러도 괜찮겠어요?”
“그러시죠. 내가 댁을 택기(澤崎) 씨라고 불러도 괜찮다면.”
“괜찮지 않지. 난 그렇게 불린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_<자식을 잃은 남자>에서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엉망이 되었단 말이야. 당신에게 전화하는 것도 이제 이게 마지막이야. 누구든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난 이세상과 작별할 테니!”
“어디 전화한 건가?”
“앗?” 상대가 깜짝 놀라 숨을 삼켰다. “마사히코 아냐? 하뉴 마사히코씨 아닌가요?”
“아니, 여기는 ‘와타나베 탐정사무소’.”
“어머,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전화를 잘못…….” 여자가 불쑥 말을 끊더니 이렇게 물었다.
“탐정사무소라고요? 탐정이라니, 그러니까 사람 뒤를 밟고 바람피우는지 조사하고 품행을 조사하기도 하는 그런 곳인가요?”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번거로워서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당신을 고용해서 마사히코가 어떤 남자인지 진작 알아보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비참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미안하지만 잘못 건 전화라면 이만 끊어줄 수 없겠나?”
나는 보름 동안 내키지 않은 일을 하느라 어디에 구멍이 났는지 찾을 수 없는 풍선처럼 지친 상태였다.
“그렇지만…… 유서를 쓰고 자살하기 직전에 자기를 버린 남자에게 마지막 전화를 하려는 사람이 잘못 건 전화를 받는 일은 거의 없잖아요? 잠깐 대화 상대가 돼줄 수 있나요. 와타나베 씨라고 했죠?”
“이거 새로운 방식의 장난 전화인가?”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사와자키. 와타나베는 탐정사무소 이름이지. 죽을 사람에게 사무실 홍보를 해봐야 소용없겠지만.”
와타나베는 칠 년 전에 실종된 옛 파트너인데 간판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어서 그냥 놔두고 있다.
“나 진짜예요. 정말 죽을 작정이라니까.” 젊은 여자가 발끈하며 대꾸했다.
“아가씨 나이가 열여섯? 열일곱?”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어린 소녀들은 늘 진짜라고 하지. 만화체로 쓰는 연애편지도 진짜고, 고시엔 야구대회 응원에서 흘리는 눈물도 진짜고, 공부하라는 소리만 하는 어머니를 죽이겠다는 생각도 진짜라고 하지. 자살하겠다는 건 대체 어떤 진짜인가?”
십 초 이상 대꾸가 없었다. 온도가 내려간 느낌이었다.
“……내일 신문 보면 알겠죠.”
전화가 툭 끊어졌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사무실을 나섰다. _<이니셜이 ‘M’인 남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