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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34995081
· 쪽수 : 376쪽
책 소개
목차
2 묘코 산 (妙高山)
2 히우치 산 (火打山)
3 야리가타케 (槍ヶ岳)
4 리시리 산 (利尻山)
5 시로우마다케 (白馬岳)
6 긴토키 산 (金時山)
7 통가리로 (Tongariro)
8 가라페스에 가자
리뷰
책속에서
내가 근무하는 마루후쿠 백화점에서 초여름 이벤트로 '아웃도어 페어'가 열렸다. 거기서 무심코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대너 등산화에.
성실하고 정직한 장인이 정성 들여 만든 편상화 같은 분위기의, 소박하지만 튼튼해 보이는 형태. 옷 색깔을 타지 않는 차분한 카키색 천에 짙은 갈색 테두리. 귀여운 악센트를 주는 깃발 모양 미니 태그.
한번 눈에 들자 그 앞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등산화라는 것에 깊은 의미를 두지 않은 채 그냥 사기로 했다.
"에토 씨도 등산해?"
새로 산 구두를 로커에 넣고 있자 한 살 위인 마키노 시노부 씨가 말을 걸었다. 나는 2층 여성복 매장이고 마키노 씨는 6층 기프트 매장 담당이라 행사장 지원을 가기 전까지는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었지만, 한 살 연상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분위기가 늘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뇨, 딱 보고 반해서 저도 모르게 사버렸는데 등산해본 적 없거든요. 평소에 신으려고요. 마키노 씨는 등산 같은 거 하세요?"
마키노 씨는 아버지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등산을 했고 지금도 한 해에 한 번은 취미로 산에 간다고 말했다.
"좋네요, 취미가 등산이라니."
"모처럼 좋은 신발을 샀으니 에토 씨도 산에 한번 올라가보면 좋을 텐데."
"말도 안 돼, 아마추어가 갑자기 무리예요. 조난당할걸요."
"누구든 처음에는 아마추어잖아.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보통 체력만 있으면 여름 산은 오를 수 있어. 운동은 해본 적 있어?"
"직장인이 되기 전까지는 검도를 했어요."
"아아, 그런 느낌이 있네. 지금도 충분히 체력이 있을 것 같고, 괜찮을 거야."
마키노 씨의 이야기를 듣고 같은 층에서 일하는 동기 세 명과 산에 가기로 했다.
행사장에 지원을 나가 이 주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아웃도어 용품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이것저것 갖고 싶어지기도 했고,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등산복을 사러 오는, 우리와 나이도 별반 차이 나지 않은 여자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일본 100대 명산'에 가보고 싶었다. 아마추어도 등반할 수 있는 100대 명산이 어디냐고 마키노 씨에게 물어보자, 니가타 현에 있는 '묘코 산'과 '히우치 산'을 연달아 오르는 종주 등산을 추천해주었다. 그렇게까지 혹독한 여정이 아닐뿐더러 한 번에 100대 명산 두 군데를 제패할 수 있는 추천 코스라고 한다.
"우메모토 씨랑 시바타 씨랑 에토 씨 셋이서 가는 거지? 에토 씨가 제일 산에 반할 것 같은데."
마키노 씨의 생각에 딱히 근거는 없다. 아마 세 사람 중에서 내가 가장 수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는 멋진 등산복이나 등산용품도 잔뜩 있지만 마린 스포츠처럼 튀는 인상은 아니다.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등산을 하는 목적은 '자아 찾기'라는 우중충한 이유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내가 산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은 들지 않는다.
자연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전근을 자주 다니다 보니 논밭이 펼쳐진 시골 마을에서 이삼 년 산 적이 있었는데, 초등학교까지 도보로 사십 분이나 걸리는 것을 원망스럽게 여기기는 했어도 공기가 맛있다거나 경치가 아름답다고 감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음에 이사한 곳은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공원 하나 없었지만 사택 건너편에 편의점이 있어서 대만족이었다.
하지만 산에 올라서 가치관이 바뀐다면 거기에 결론을 맡겨보고 싶은 일이 있다.
결혼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언니, 무슨 생각해?”
등 뒤에서 말을 걸자 언니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오 초 정도 잠자코 있기에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려 했을 때였다.
“남편이 이혼해달래.”
언니는 이렇게 말하고 슥 앞을 보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담담히 말하는 바람에 말뜻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꽤 뒤처져서 엇 하는 목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혼. 언니가 이혼. 분명 언니의 올바른 인생에 이혼이라는 말 따위는 있어서는 안 될 텐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뭐가 원인인가? 언니에게 잘못이 있나? 형부에게 잘못이 있나? 나나카는 어떻게 하나? 물어보고 싶은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 넘쳐흘렀지만 언니가 먼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이쪽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언니가 등산 파트너로 나를 고른 의미가 없어진다.
그걸 보고 남자는 우리를 붙잡지는 않았지만 닳아빠진 바지 주머니에서 명함 크기만 한 종이를 두 장 꺼냈다. 친구가 경영하는 바의 한 잔 무료 쿠폰이니까 들렀다 가보라며 길 앞쪽을 가리켰다. 가로등 불빛이 겨우 닿을 만한 곳에 오래된 서부극에 나올 법한 2층 목조 건물의 술집이 보였다. 근사하다고 생각하면 근사해 보이기도 하고, 수상쩍다고 생각하면 수상쩍게 보이기도 했다. 요시다는 전자고 나는 후자였다.
?분명 뭔가 수상하다니까. 관두자.
?나는 뭔가 재미있는 예감이 확 드는데. 여행 끝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모험해보자. 모험인가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요시다를 따라가기로 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되는 대로 여행이 지금까지는 대성공이었으니까 여기서는 요시다가 하자는 대로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 입구는 2층에 있었다. 거기서 나는 다시금 주춤했지만 요시다는 내 쪽을 돌아보지 않고 폭 좁고 녹슨 철제 계단을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철컹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가자 길거리에서 말을 건 남자와 꼭 닮은 분위기의 점주가 쾌활하게 맞아주었다. 하지만 역시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