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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88935665518
· 쪽수 : 808쪽
· 출판일 : 2018-11-30
책 소개
목차
통신사의 길 전체 경로
답사길 전체 경로
동조궁의 잠자는 고양이 | 머리말
통신사는 누구인가
제1부 떨리는 마음으로 닻을 올리다
부산 → 하카타 구간 세부 경로
1 부산에서 만난 통신사
2 왜관의 자취는 사라지고
3 해신제를 지내며 출항의 안전을 기원하다
4 닻을 올리고 돛을 펼치다
5 물마루를 넘어 쓰시마로
6 조선과의 관계를 생명처럼 여긴 쓰시마번
7 조선인의 심성을 간파한 호슈
8 조선과 쓰시마번, 좁혀지지 않는 거리
9 원나라군의 흔적이 남은 이키시마
10 조선 침략의 전초기지 나고야성
11 고양이의 천국 아이노시마
제2부 외해를 건너니 내해가 펼쳐지다
시모노세키 → 고베 구간 세부 경로
12 시모노세키의 격류를 거스르다
13 천혜의 양항 가미노세키
14 통신사 기록의 보고 조코관
15 시모카마가리지마의 진수성찬
16 일본 제일의 경승지 토모노우라
17 사람과 신이 공존하는 이쓰쿠시마
18 일본의 에게해 우시마도
19 산킨코타이의 거점 무로쓰
20 일본의 국보 히메지성
21 통신사의 객관을 찾아 고베를 누비다
제3부 드디어 일본 땅을 밟다
오사카 → 세키가하라, 다카쓰키 구간 세부 경로
22 바다와 육지를 연결한 오사카
23 활력 넘치는 관광명소 도톤보리
24 마지막 물길 50리
25 수로 항해의 종착지 요도천
26 백성의 피와 땀이 서린 후시미성
27 천년 고도 교토의 사찰을 둘러보다
28 니조성에서 조선 호랑이를 만나다
29 조선인의 한이 서린 이총
30 선의후리를 고집한 오미하치만의 상인들
31 가문을 지켜낸 천하의 여걸 나오토라
32 호슈의 고향 다카쓰키정
33 역사를 바꾼 세키가하라전투
제4부 내처 걷는 발걸음에 관동을 가로지르다
오가키 → 미시마 구간 세부 경로
34 배 300척을 연결한 기소천의 부교
35 성 중의 성 나고야성
36 오카자키성에서 이에야스를 만나다
37 후지카와숙에서 요시다숙까지
38 금절하에서 보여준 조선 관원의 기개
39 후지산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다
40 건너려야 건널 수 없는 오이천
·「도카이도53차」로 보는 에도시대의 풍경
41 슨푸의 오고쇼는 건재하다
42 통신사를 감동케 한 절경 중의 절경 청견사
43 쓰나미가 요시하라숙을 밀어내다
44 통신사 대접에 최선을 다한 미시마숙
제5부 에도에 들어가 장군을 알현하다
하코네 → 닛코 구간 세부 경로
45 에도 방어의 최전선 하코네관소
46 난공불락의 오다와라성이 함락되다
47 오이소의 고려인 마을
48 요코하마의 밤을 밝히는 랜드마크타워
49 시나가와에서 관복으로 갈아입다
50 풍악을 울리며 입성한 에도성
51 장군을 알현하다
52 금빛 찬란한 닛코의 동조궁
53 장군이 사랑한 마상재
54 나라를 뒤흔든 야나가와 잇켄
55 장군은 일본국왕인가 대군인가
제6부 우여곡절 끝에 귀환하다
56 피로인의 슬픔을 누가 달래줄까
57 오사카의 원혼이 된 최천종
58 수행원의 다툼과 죽음
59 임금 앞에 복명하다
역사 해석의 간극 | 맺는말
통신사의 길에서 만난 한·중·일 118인
역사용어·역사지명 풀이 113선
표로 정리한 통신사 파견
통신사 관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목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통신사는 ‘믿음을 통하는 사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윤안성은 임란 때 도굴당한 선릉과 정릉의 능묘에 심은 소나무에 아직 가지도 나지 않았는데 일본에 사신을 파견한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토해냈다. 조정 대신들은 새로이 등극한 장군이 다이묘들에게 권위를 세우기 위해 통신사를 청한 것이라며 파견 중지를 극렬하게 아뢰었다. 마치 조선이 장군을 후원하는 것처럼 이용된 데 대해 원망하고 후회했다. 불구대천의 원수를 향한 복수심을 해소했다며 자조하는 이도 있었다.
길 떠나는 통신사에게는 조정 대신들의 반대라는 부담 외에도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많은 이가 이를 두려워했다. 항법장치나 기상예보, 철선(鐵船)이 없는 시대였기에 당연했으리라.
숙종 33년(1707) 부장 송중만이 감옥(甘玉)이라는 조선 여인을 데리고 몰래 왜관에 들어가 일본인과 매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선은 이들을 모두 사형에 처하도록 지시했고 실제로 감옥과 송중만은 왜관의 문밖에서 사형당했다. 하지만 왜관 관리의 총책임자인 관수왜(館守倭)가 일본인의 사형을 거부했다. 동래부사가 외교 의례의 기본을 무시한 무례한 행위라며 강력하게 비난했으나 죄를 범한 일본인은 결국 쓰시마로 건너갔다. 그는 양국에 분쟁을 일으켰다는 죄명으로 벌을 받았으나 사형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