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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6424930
· 쪽수 : 164쪽
· 출판일 : 2023-11-10
책 소개
목차
제1부 • 백지 위에 실황으로
백지상태
별들의 속삭임
낮눈
밤눈
천국행 눈사람
눈사람 신비
눈사태 연주
명동대성당
불광동성당
계산동성당
길음성당
리틀 드러머 보이
백색소음
썰매와 아들
맑은 종이
제2부 • 틴티나불리
거울 겨울
틴티나불리
대합실의 밤
신비한 로레토 교회
돌아가셨다는 말
향
빵의 맛
무언어
상선약수
언중유골
겨울 거울
Summa
유리잔 영혼
제3부 • 하얀 사슴 연못
사슴과 유리잔
흰 종이에 물로 1
하얀 사슴 연못
에릭 사티
흰 종이에 물로 2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거울 속의 거울
워터스톤
사슴벌레
아이스크림의 황제
에스컬레이터
평화 여백
사슴 머리 여인숙에서
제4부 • 볼륨은 제로가 적당합니다
켜진 불
포카라
아침
작은 종들
오토리버스
담배가게 성자
air supply
2D 마음
자명종
휴관
올해 가장 시적인 사건
에어플레인 모드
아르보 패르트 센터
Z치는 물결
해설|조강석
시인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삼청동 카페 이층 창밖 빈 나뭇가지에
텅 빈 말벌집 하나 매달려 있었다
벌써 다 그친 줄 알았던 눈이
다시 내리고 있었다
찬 바람이 불고 있었고
말벌집은 그것이 매달린 가지의 흔들림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카페에선 늘 음악이 들려오고 있고
음악이 들리면 뭔가 진행되는 것 같다
침묵이 침묵을 깨뜨리며 잠시
활동하는 것도 같다
(…)
바람에 날리는 눈발이 새하얀 벌떼 같았지만
말벌집이 벌들이 들어가 쉬어야 할 집 같았지만
눈은 말벌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말벌집은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에 따라
흔들리고만 있었다
여름에 왔었다면 저게 저기 있는 줄 알 수
없었겠지 헐벗은 말벌집
안에 든 저 어두컴컴한 것은 또 대체 무엇일까
―「낮눈」 부분
눈사람에서 사람을 빼고 남은 눈이
녹고 있는 놀이터
사람이 없어질 거란 생각보다
사람이 없으면 눈사람도 없을 거란 생각이
놀이터를 더욱 적막하게 만들지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눈사람은 아무 미련 없다는 거
눈사람은 녹아가면서도
자신을 만들어준 사람의 기억을 품고 있고
이번 생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어쩌면 그런 생각만이 영영 무구하다는 거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눈과 사람의 합산
오직 사람이 만들어낸 눈사람만이
천국에 간다는 거
―「천국행 눈사람」 부분
한밤중에 뜨거운 물 끼얹으면
좋은 생각이 나는 것 같다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다
사실 그건 생각이 아니라 기분인데
기분이 꼭 생각인 것만 같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기분이 꼭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생각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
눈사람이 제 몸에 뜨거운 물 끼얹어
아래로 평등하게 고이게 된 물이
잘 정리된 생각인 것만 같다
오늘 밤 사라진 육체야말로
지상 최대의 생각인 것만 같아
생각은 육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은 애초에 육체의 몫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주가 느끼는 기분
생각을 잘 정리해놓고 죽어야지
―「눈사람 신비」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