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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아프리카소설
· ISBN : 9788936464899
· 쪽수 : 356쪽
책 소개
목차
제1강 리얼리즘
제2강 아프리카에서의 소설
제3강 동물의 삶 1—철학자와 동물
제4강 동물의 삶 2—시인과 동물
제5강 아프리카에서의 인문학
제6강 악의 문제
제7강 에로스
제8강 문 앞에서
후기 / 프랜시스 베이컨에게 보내는 레이디 챈도스, 엘리자베스의 편지
작품해설 / 믿음을 믿지 않는 작가의 불편한 도발
작가연보
발간사
책속에서
이제는, 어떤 것들은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더라도 진실할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이란 결국 하나의 에너지원에 불과할지 모른다. 어떤 생각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 끼워넣는 건전지 같은 것 말이다. 글을 쓸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 즉,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 믿어야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믿는 것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무언가를—이성이든, 자의식이든, 영혼이든—공유하는가가 아닙니다.(이 질문에 따른 결론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들을 감금하고, 죽이고, 그 시체를 모욕하면서 그들을 우리 마음대로 대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수용소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수용소에 특징적인 공포, 거기서 진행된 일이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고 확신하게 만드는 공포는 살인자들이 희생자들과 어떤 인간성을 공유함에도 그들을 이(lice)처럼 대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건 너무 추상적입니다. 공포는 살인자들이 희생자들의 자리로 생각해 들어가기를 거부했고, 다른 모든 이들 역시 그랬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덜컹거리면서 지나가는 저 가축 수송 열차에 그들이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 가축 수송 열차에 있는 게 나라면 어떨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 가축 수송 열차에 있는 건 나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늘 소각돼서 공기에서 악취를 풍기고 내 양배추들 위로 재가 되어 떨어지는 건 틀림없이 그 죽은 자들일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불타고 있다면 어떨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불타고 있어, 나는 재가 되어 떨어지고 있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가슴을 닫아버렸습니다. 가슴은 어떤 능력, 공감이 자리한 곳으로, 우리는 이 능력 덕분에 때로 다른 이의 존재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 아마도 좋은 사람일 토머스 네이걸이나, 저로서는 공감하기가 더 어려운 토마스 아퀴나스와 르네 데까르뜨의 시각과 달리, 우리가 다른 이의 존재 속으로 생각해 들어갈 수 있는 범위는 무한합니다. 공감적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애들한테 불쌍한 어린 송아지라느니, 나쁜 사람들이 송아지한테 무슨 짓을 저지른다느니 하는 말을 들려주면서 내 뒤통수를 치려고 하지 않으면 나는 어머니를 더 존중할 거야. 애들한테 닭고기나 참치 요리를 주면 그걸 깔짝거리면서 ‘엄마, 이거 송아지고기야?’ 하고 묻는데, 아주 지긋지긋하다고. 이건 그저 파워 게임이야. 어머니의 위대한 영웅 프란츠 카프카도 자기 가족들이랑 똑같은 게임을 했어. 이것도 안 먹겠다, 저것도 안 먹겠다, 자긴 차라리 굶어 죽겠다고 했지. 얼마 안 가서 모두가 카프카 앞에서 음식을 먹는 데 죄책감을 느꼈고 카프카 본인은 느긋하게 앉아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어. 이건 넌더리 나는 게임이고, 우리 애들이 날 상대로 그런 게임을 하게 놔두진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