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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6478711
· 쪽수 : 396쪽
· 출판일 : 2021-06-3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대신에
1부
그립구나, 조태일!/천이두 선생의 추억/실향의 아픔 넘어선 문학의 큰 산/김규동 선생의 시적 행로/김용태와 함께 보낸 3년/김윤수 선생과의 30년/자유인 채현국 선생을 기억하며/권정생 선생님 영전에/『샘터』 창간 시절의 추억/열망과 방황 사이에서
2부
용산 선언문 3제/예술은 예술가의 것인가/40년 만에 공개된 김수영의 ‘불온시’/『임꺽정』에서 『국수』까지/언어들의 엇갈린 운명/던져진 땅에서 살아내는 일/무엇을 반대하고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우리 운명의 결정권자는 누구인가/문인의 역할과 작가회의의 나아갈 길/한국문학, 경계선 너머로 한 걸음 내딛다
3부
무엇이 삶을 버티게 하는가/‘압도적인 절망과 한 줌의 희망’/냉전의 시작과 끝/독일 통일의 경험이 가르쳐주는 것/가장 가까운 나라의 아주 낯선 풍경/언젠가 찾아올 초월의 날에/동아시아공동체·일본·한국/‘우리 문제’로서의 일본/은폐된 전쟁으로서의 분단/서경식의 질문이 우리에게 뜻하는 것
4부
두 여름을 기억하며/적군묘지 가는 길/‘10월유신’ 30년/‘임정’의 시선으로 ‘용산’을 보면/영국인 참전용사의 증언/국기는 무엇을 상징하나/3월, 4월, 6월 그리고 다시 4월에/혁명적 목표를 비혁명적 방법으로?/촛불을 들고 역사 속으로/더 나은 세상을 위한 간절함/2박 3일의 방북, 7분의 절정/우리 자신을 위한 베팅/분단시대를 넘어선다는 것
저자소개
책속에서
당장의 재난을 넘기기 위해 급한 대로 우선 지어놓은 가건물(假建物) 같은 인생을 우리가 영구히 계속할 수는 없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탄탄하게 구상되지 않은 임시적 삶은 당연히 불안과 위험에 무방비일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엄청난 외형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감정과 정신이 날로 저열하고 황폐해진다고 느껴지는 것은 다들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예로부터 항심(恒心)의 근거가 항산(恒産)이라 했는데, 이때 ‘항산’은 단지 일정한 재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인간에게 ‘한결같은 마음’의 가능성과 기반을 보장해주는 조건들, 가령 실직을 하거나 중병이 들어도 생계가 통째로 무너지지는 않으리라는 보장, 동료와 이웃이 느닷없이 칼을 들고 달려들지는 않으리라는 믿음, 힘들거나 지쳤을 때 가족과 친구의 위로가 있으리라는 기대, 6·25전쟁 같은 사태가 돌연히 일어날 리 없다는 확신,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에게 삶의 지속을 담보하는 사회적·심리적 ‘항산’일 것이다. 실존주의자들이 말했던 이 우연히 ‘던져진 땅’에서 그래도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자면 그런 ‘항산’의 지속적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 가능성을 일상생활 속에서, 즉 현존하는 주변의 생활공동체 안에서 구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구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던져진 땅에서 살아내는 일」 중에서
머리말 대신에(부분)
책의 표제로 내세운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는 독일의 저명한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Wolf Biermann)이 한국 인터뷰어에게 했던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비어만의 아버지는 유대인 공산주의자로서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되었고 비어만 자신도 부모의 뜻을 이어받아 일찍이 소년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열일곱 살 때인 1953년 고향 함부르크를 떠나 이념의 조국이라 생각한 동독으로 넘어갔다. 거기서 그는 대학을 다니면서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으며 노동자극단을 만들어 활동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의 공연은 금지되고 작품은 엄격한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동독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그의 시집을 비난하고 한동안 그를 가택에 연금시키기도 했다. 그가 꿈꾸었던 이상적 공산주의와 실재하는 독일민주공화국의 현실은 너무도 다른 것임이 드러난 것이었다. 결국 비어만은 1976년 서독 금속노조의 초청으로 쾰른에서 공연한 직후 동독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된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독일은 하나로 통일되고 그는 자신이 동독으로 건너갈 때 지녔던 꿈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기에 이른다. 머릿속에서 구상한 낙원을 억지로 지상에 건설하려는 것은 지옥에 이르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확신에 도달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자본주의 체제에 투항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사회적 불의와 체제의 모순에 대한 고발을 멈춘 것도 절대 아니었다. 다만 그는 낙원에 대한 환상 때문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서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이념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열차를 막기 위해서였다.
내가 처음 비어만의 이름과 그의 노래를 들어본 것은 1980년대 중반 독일 유학에서 갓 귀국한 경북대 김창우 교수를 통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브레히트의 발라드를 계승한 그
의 시 형식에 주로 관심을 가졌고 정치적 배경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다가 중앙대 김누리 교수 등의 인터뷰집 『변화를 통한 접근』(한울 2006)을 통해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비어만은 2005년 초 한국의 독문학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나서 몇 달 뒤 내한하여 동숭동 학전소극장에서 공연을 했고, 나는 가수 정태춘 선생의 초대로 운 좋게도 공연을 관람했다. 그는 혼자 기타를 쳐가며, 또 자기의 이름 Wolf (늑대)와 Bier(맥주)mann을 소재로 농담을 던져가며 유쾌하고 질펀하게 노래를 불렀다. 잊지 못할 공연이었다. 비어만의 말에서 제목을 가져오면서 그의 이력을 길게 살펴본 것은 이 책의 바탕에 깔린 내 생각이 그에게 깊이 공명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인들 앞에 가로놓인 지옥은 독일인들의 것과 다르고, 따라서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그들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인터뷰에서 말한 ‘지옥’ 자체가 지구 상황의 전면적 위기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오늘의 기준에서는 아주 제한적인 개념으로 보인다. 그래도 어쨌든 극단적 냉전의
시대에 동독과 서독 양쪽을 모두 살아본 비어만의 경험은 한반도 분단 76년의 엄혹한 지뢰밭을 숨죽이며 건너온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부럽다고 할 만한 것이다. 그런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환경과 인간의 현실이 지옥으로 화하지 않도록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만은 비어만도 나도, 아니 이 세상 어디에 사는 누구라도 공유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조태일(趙泰一, 1941~99) 시인과 작별한 지도 어느덧 20여 년이 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