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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박지원

(글쓰기의 혁신과 새세상 만들기)

박지원 (지은이), 김혈조 (편저)
창비
2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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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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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박지원 (글쓰기의 혁신과 새세상 만들기)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일반
· ISBN : 9788936481148
· 쪽수 : 356쪽
· 출판일 : 2026-02-20

책 소개

창비 한국사상선 제10권 『박지원: 글쓰기의 혁신과 새세상 만들기』는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적 사상가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산문 중에서 현대적 의의를 지닌 글들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전통의 완강한 성벽에 도전하여
글과 생각의 새로움을 추구한 연암 박지원의 사유


창비 한국사상선 제10권 『박지원: 글쓰기의 혁신과 새세상 만들기』는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적 사상가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산문 중에서 현대적 의의를 지닌 글들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정조 임금이 ‘연암체’라고 규정했을 정도로 당대의 글쓰기 풍토를 단번에 뒤엎었던 박지원의 문체는 전통 한문학에 대한 끊임없는 반역의 산물이다. 박지원은 단순히 문체의 변혁만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당대 세계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실학의 이념을 개진함으로써 문명 대전환의 방향을 제시한 대문호였다.
하지만 박지원의 산문이 이처럼 재평가받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열하일기』가 사람들에게 읽히던 18세기 후반은 청나라에 대한 적대감이 팽배했던 시기였고, 박지원은 청의 연호를 쓰고 청을 우호적으로 바라본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근대 이전까지 유학자들 사이에서 ‘이단자’로 낙인 찍혔다. 이와는 역설적이게도 박지원이 쓰는 글은 족족 경쟁적이고 열광적으로 복제되고 읽혔으니, 당대의 위선을 들춰낸 그의 글이 금기 따위는 쉽게 뛰어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조선을 뒤흔든 박지원의 글 중에서 『열하일기』를 포함하여 총 84편의 산문을 소개한다. 박지원의 글을 가장 정확한 한국어로 옮긴다는 평을 듣는 김혈조 영남대 명예교수의 정갈하고 간명한 번역이 글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었다.

당대의 글쓰기 풍토를 단번에 뒤엎은, 시대를 앞서나간 문필가 박지원

박지원이 태어난 18세기 조선에서는 지배층의 당쟁과 맞물려 다수 양반층의 몰락이 큰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관직의 수가 한정된 데 비해 양반의 수가 급격히 늘었고 과거시험이 공정한 선발대가 되지 못하다보니 대다수 양반들은 필연적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박지원 또한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 아래서 반남박씨 집안의 명성과는 달리 청년기를 내내 곤궁하게 보냈다. 박지원의 대표작 「양반전」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정도를 벗어나 세력가에 아첨할 수도 없고, 또다른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박지원은 끝내 좌절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선비’로서의 책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선비의 학문은 농·공·상을 갖추고 있기에 ‘글을 읽는 선비’라면 세상을 경영할 수 있다고 믿었고,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에서 억압받는 존재인 여성, 노비, 천주교도 등의 처지에 관심을 두었다. 특히 자신의 일상을 두루 살피며 쓴 글들은 ‘하찮은 것들에서 이야기를 발견하는’ 대단히 현대적인 산문이라 할 수 있다.
19세였던 1755년 처삼촌 이양천이 귀양을 다녀온 뒤 세상을 떠나자, 그는 한동안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박지원은 시종과 이야기꾼을 불러 모아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괴로움을 달랬고, 그때 들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사회비판 의식을 담아 인물전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방경각외전』의 인물전이 여기서 비롯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양반과 하층민 간의 우정을 다룬 글들은 무척 독특하다. 문제는 조선의 현실에서 이처럼 계층 간의 우정이란 구현되기 어려웠다는 점이고, 그리하여 박지원은 서얼들과 깊이 교유하며 우정을 쌓고,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눈길을 돌려 천하를 주유할 호걸과 함께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박지원이 젊은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이들의 신분은 주로 서얼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포용해주는 연암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 이들과 맺은 우정을 담은 글들에는 오래 눈길이 머문다. 「벗을 잃은 슬픔」 「정석치 제문」 등 친구들의 죽음에 부친 애사나 그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에서 보게 되는 절절한 우정담은 펼칠 때마다 그의 고통과 애정 어린 마음 씀에 공감하게 된다.
이 시기 각별한 벗이던 이희천이 국가의 야만적 폭력으로 죽임을 당했고,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은 박지원은 세상과 단절한 삶을 살게 된다. 인간관계를 모두 끊고 셋방에 폐인처럼 틀어박혀서는 자신을 끝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여기에 더해 당시 세도정치의 권력자이던 홍국영에 의해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자, 연암은 황해도 연암협으로 은거하게 된다.
홍국영이 실각한 뒤 한양으로 돌아온 박지원은 청나라 황제 칠순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에 동행하게 된다. 그 자신을 조선 최고의 작가로 만든 『열하일기』의 첫 페이지가 쓰이는 순간이다. 박지원은 청나라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청나라를 적국으로만 여기지 않고 세계의 문명국으로 보았으며, 그 세계 전체를 배움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다.
그의 성실한 자세는 『열하일기』 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조선과 청나라의 경계를 넘으며 더이상 봉건윤리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일까. 박지원은 자신의 글에서 “사상가, 학자, 지식인, 양반의 진지하고 점잖은 모습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경쾌하고 발랄하기도 하고, 진솔하고 구김살 없기도 하고, 호기심으로 좌충우돌하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약여하게 묘사했다”.(28면) 박지원은 사절단 여정 내내 자신이 보는 것들을 범상히 넘기지 않고 무척 세밀하게 관찰하기도 했다. 중국의 집 구조, 벽돌을 쌓는 법, 각종 수레의 모습과 사용법, 말 기르는 법 등 중국의 산업과 제도 전반을 『열하일기』 전편에 구체적이고 면밀히 담았다.
『열하일기』에 실린 「허생 이야기」와 「범의 호통」은 문제적이다. 박지원 사후에 그의 손자 박규수가 연암 문집 발간을 제안받았을 때 당시 유학자들의 반응을 가늠해보고 두려운 마음에 거절했을 정도로 이 두 작품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효종 시대의 북벌론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아나키즘적인 사상의 발흥까지, 「허생 이야기」가 지닌 평론적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또한 호랑이의 말에 빗대어 당대 인류문명 자체를 비판하는 과감함은 왜 박지원이 근대에 이르러서까지 ‘문제적 사상가’로 주목과 논쟁의 중심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문명 대전환의 방향을 제시한 대문호, 박지원

박지원이 선보인 새로운 문체는 곧 새로운 생각에서 나왔다. 작가 생전에도 파격적이었던 글쓰기는 21세기인 현재까지 빛을 발한다. 이 책을 엮은 김혈조 교수는 서문에서 ‘연암체’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글쓰기 이론을 몇가지로 압축해 소개한다. ‘옛것을 본받아서 새것을 창조하라’ ‘진실하고 독창적인 글을 써라’ 등, 총 일곱가지의 명제는 연암체가 얼마나 현대적인지를 다시금 일깨운다. 전통의 글쓰기와는 판이한 문예적 글쓰기, 당대 사회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 통찰력을 가진 선비가 지녀야 할 책임감 등 박지원이 바랐던 세계의 변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연암이 자신의 주체를 자각하고 역사의 주체로 서서 백성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고 문명국가를 기획하고 건설하려 했던 프로젝터로서 우뚝 섰던 것처럼, 이 시대 문명적 대전환에 값할 가치와 사상, 이를 연암의 저작에서 찾아내고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연암을 다시 살리는 길이고, 이 거칠고 척박한 시대를 부드럽고 기름지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그 책임은 연암의 글을 읽는 이 시대의 고독한 사람에게 주어진 몫일 터”(46~47면)라고 편저자는 말한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나 개벽사상 등 한국사상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역사의 주체로 서다

핵심저작
1장 연암 박지원, 그의 사의식과 인간의 발견
2장 우정론과 그 실현
3장 『열하일기』, 북학과 세계정세 인식
4장 사유의 전환과 인식론
5장 글쓰기의 혁신과 창조적 문학 추구
6장 변혁사상과 경세론

박지원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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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박지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후기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실학자다. 박사유(朴師愈)와 함평(咸平)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세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李亮天)에게는 《사기(史記)》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인 이재성(李在誠)과는 평생의 문우(文友) 관계를 이어 갔다. 청년 시절엔 세상의 염량세태에 실망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라는 이름으로 편찬했다. 영조 47년(1771) 마침내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은거하면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비롯한 많은 젊은 지식인들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의 세계를 펼쳐 갔다. 정조 2년(1778)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벽파를 박해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있는 연암협(燕巖峽)으로 피신해 은둔 생활을 했다. 연암이라는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정조 4년(1780)에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연행(燕行) 권유를 받고 정사의 반당 자격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다. 이때 건륭 황제가 열하에서 고희연을 치르는 바람에 조선 사신 역사상 처음으로 열하에 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연행을 통해 깨달음을 확대한 연암은 여행의 경험을 수년간 정리해 《열하일기》를 저술했다. 정조 10년(1786) 유언호의 천거로 음사(蔭仕)인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 정조 13년(1789)에는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했고, 정조 15년(1791)에는 한성부 판관을 지냈다. 그해 12월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다음 해부터 임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정조 임금이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쓴 연암을 지목하고는 남공철을 통해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 명령했으나 실제로 응하지는 않았다. 정조 21년(1797) 61세에 면천군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절에 정조 임금에게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쳐 칭송을 들었다. 1800년 양양부사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순조 5년(1805) 10월 20일 서울 가회방(嘉會坊)의 재동(齋洞) 자택에서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선영이 있는 장단(長湍)의 대세현(大世峴)에 장사 지냈다. 박지원의 문학 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지어내되 법도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는 문학의 참된 정신은 변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글을 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되려는 것은 참이 아니며, ‘닮았다’고 하는 말 속엔 이미 가짜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연암은 억지로 점잖은 척 고상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참되게 그려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지향했다. 나아가 옛날 저곳이 아닌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중국이 아닌 조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문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암의 학문적 성취와 사상은 《열하일기》에 집대성되어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기반으로 청나라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자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북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연암은 《열하일기》 외에도 《방경각외전》, 《과농소초》,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등을 직접 편찬했다. 연암의 유고는 그의 아들 박종채에 의해서 정리되었는데 아들이 쓴 〈과정록추기〉에 의하면 연암의 유고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으로 정리되었다. 《열하일기》는 오늘날 완질은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암의 작품은 대부분이 문(文)이며 시(詩)는 50여 편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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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혈조 (편저)    정보 더보기
1954년 경북에서 출생하였다. 성균관대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한문학과에서 『연암체의 성립과 정조의 문체반정』과 『연암 박지원의 사유양식과 산문문학』으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이래로 영남대 한문교육과에 재직하며 한국한문학의 산문문학에 관심을 두고, 연암의 산문문학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2019년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이래, ‘연암문학연구원’이라는 작은 공간을 열고 연암 문학을 계속 공부하고 있다. 특히 『열하일기』의 각종 이본을 대조하며 원문 정본화 작업을 진행하였다. 저서 『박지원의 산문문학』, 역서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열하일기』 등 연암 관련 도서를 출판하였다. 현재는 연암 시문집 정본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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