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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7419577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24-07-19
책 소개
목차
1부 연재
검은 초콜릿 11
허허한 공원 21
목적지 29
바캉스라는 것 36
난간에 기대어 44
그의 이름은 친구 54
커다란 건물 65
돌을 들어 75
결말 82
말 음악 90
2부 연재 이후
모습은 보이지 않고 99
발톱 105
말 —말하기는 말하는 사람에게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113
기도 —데이비드 린치, 홍상수, 시몬 베유 121
아득한 사람? 얼굴? 131
쉬는 방법 138
내가 말하는 조금이란 정말 조금이다 145
그림 149
시간 —Virtual Reality라는 이름의 블랙홀 155
소리 —이옥경의 「소리 나누기」, 그 이후 172
말 185
쓰는 방법 —다시 쓰기에 대하여 192
후프 —기괴한 글쓰기 195
말 202
집 —오타르 이오셀리아니의 집 206
집 214
재활용 219
풍경, 언덕 너머로 어서 사라졌으면 225
작가의 말 231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혼란을 좋아하는 것 같다. 혼란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혼란밖에 모르는 것 같다. 혼란 속에서 가느다란 이해가 균열처럼 솟아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글쎄, 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혼란을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를 직조하고, 세계를 포기한다. 포기라는 게 단순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혼란을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포기를 첩첩이 쌓아나가는 일은 일종의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당연히 혼란을 가지고 노는 작업 중 하나이다. 혼란을 가지고 논다고 생각하다가 혼란에게 잡아먹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런 작업에서 성공과 실패는 큰 의미가 없다. 실낱같은 웃음과 시시한 이해만 가끔씩 배어 나온다면 말이다.
나는 나를 총알처럼 쏘아 버리기 위해서 푸른 하늘과 푸른 숲, 푸른 바다를 눈앞에 두고 난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제약이 필요하다고. 없다면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 이것이 시 짓기, 그러니까 글쓰기의 기본 원칙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무한에 가까운 백지의 상태에서 조금씩 조금씩 나 자신을 좁혀 들어가기, 제한하고 구속하기, 그러나 그러한 제한과 구속이 작동하는 방식을 기꺼이 즐겁게 혹은 다소 끈질기게 파고들어 감으로써 가능해지는 무한을 항상 의식하고 있기.
세 번째 시집 『별세계』에서 같은 곳을 훑고 또 훑는 듯한 시를 많이 쓴 것도 근시의 영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고, 그래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여서 하나같지 않은 무수히 많은 것. 하나지만 무수히 많은 단어, 단어들. 그것들을 세우고 세워서 내가 꼭 맞다고 생각하는 형태로 두기. 고정은 시켜 두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한번 단어를 빼내서 어디 다른 곳에 두어도 그건 그대로 완벽하고 좋게끔. 그렇게 쓰고 싶다. 언제든 무한히 단어를 들어내고, 집어넣고, 다시, 그리고 다시, 들어내고 옮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젠가를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런 느낌도 어쩌면 내가 심한 근시인 것과 연관성이 없지 않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