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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7482946
· 쪽수 : 226쪽
책 소개
목차
성탄 피크닉
작가의 말
작품 해설
웰컴 투 강남_ 김미현(문학평론가.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헐떡거리며 소리치는 사이 남자들이 바짝 쫓아왔다. 그들은 택시 트렁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멈추라고 윽박질렀다. 택시는 외벽에 금이 가고 칠이 벗어진 백회색의 아파트 단지를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재빨리 뒤쪽 창을 확인해 보았다. 덩치 큰 남자들이 주차장에 세워 둔 구형 에쿠스에 올라탔다.
이제 막 속도를 올리던 택시가 아파트 단지 내 도로 끝에서 멈추었다. 공항 터미널 방향으로 가려면 좌회전 신호를 기다려야 했다. 차창 앞 신호등은 빨간색이다. 곧이어 에쿠스가 뒤따라왔다. 택시 바로 뒤에서 멈춘 에쿠스의 보조석 문이 왈칵 열렸다. 두 명 중 덩치가 좀 더 커다란, 사진을 들고 있던 남자가 차 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심장이 훅 조이는가 싶더니 쿵쿵 날뛰었다. 그때까지 신호는 바뀌지 않았다.
저들은 누구인가.
“야, 빨대, 너 우리 아빠 좀 어떻게 해 봐.”
“너희 아빠?”
“그 새끼가 자꾸 용돈을 끊어 버리겠다고 난리야. 재수 안 하면 국물도 없대. 내 개인 통장에 있는 돈은 진즉에 다 빼 버렸어.”
“…….”
“네가 꽂아서 안 넘어가는 남자 봤어?”
(……)
지희가 뭔가 잊은 게 있는 듯 구찌 백 속을 뒤적거렸다. 대니가, 대리 운전기사가 도착했다고, 이제 그만 가자고 지희를 끌어당겼다. 지희가 앙칼지게 “저리 가!” 소리치곤, 긴 팔로 은비의 목덜미를 감쌌다. 목덜미를 감싸지 않은 주먹 쥔 손을 가슴까지 들어 올렸다. 앙증맞은 주먹을 펼쳐 보였다. 손바닥 위에 분홍색 라이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BACCHUS’라는 상호가 박힌 라이터였다.
“아빠가 다니는 단골 룸살롱이야.”
지희가 손에 라이터를 쥐어 주며 윙크했다.
은영은 처음엔 카프가 뭔지도 몰랐다. X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1학년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도서관에 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날이었다. 텅 빈 책상 두 개를 보곤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그 자리에 앉았다. 지나가던 학생이 “거긴 카프 자리잖아.”라고 우려하는 투로 속삭였다. 앉아선 안 된다는 듯이.
“근데 카프가 뭐야?”
“카프카의 줄임말.”
왜 그 자리를 비워 두어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카프카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사람들도 없었다. 카프카가 뭐냐고 물으면 모두 대답하길 꺼렸다. 그러나 모두들 그 비어 있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시도하진 않았다.
언젠가 민우가 그 자리에 앉아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과외를 하는 여학생의 오빠여서 학교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누기도 할 때였다. 은영은 민우를 통해 비로소 카프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카프는 은영이 다니는 X대학 내의 모임이었다. 기원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꽤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먼저 가입한 선배들이 직접 후배들을 지목한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주로 친목을 도모하며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쳤다. 그들은 대부분 강남 출신이거나 간혹 성북동, 평창동 학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