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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37834202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13-06-04
책 소개
목차
전두엽의 틈
신데렐라의 검정 구두
미아가 된 영구차
다이후쿠 아코의 우울
시신의 몸값
노란색 문
리뷰
책속에서
“이번 의뢰는 M&A 상담인가요?”
모모세는 매달리는 듯한 눈으로 노로에게 물었다.
“M&A는 아닙니다.”
그러자 나나에가 “이혼 소송?” 하고 끼어들었다.
“아니에요.”
노로는 역시 딱 잘라 부정했다.
“의뢰인은 애완동물 금지 맨션에 사신다는군요.”
역시 애완동물인가.
모모세는 과거에 받아들인 의뢰를 되새기며 추측해보았다.
“의뢰인은 거기서 애완동물을 기르고 싶은 거로군요. 즉, 맨션 규약을 바꾸고 싶은 거겠죠.”
“아니요, 의뢰인은 이미 친칠라 골든을 기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나나에가 목소리를 높였다.
“또다! 의뢰인은 친칠라 골인이 처치 곤란해진 나머지 우리에게 떠맡기려는 거라고요!”
모모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나에를 달래야 한다. 화풀이로 문에 노란 페인트를 덧칠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아코는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며 입을 다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모모세는 얼굴을 들고 입을 열었다.
“변호사를 그만두고 싶은데요.”
“네?” 아코는 소리를 빽 질렀다. 방음 설비가 된 방이 아니었다면 사방에 울려 퍼질 만큼 큰 목소리였다.
“변호사를 그만두려고요?”
“아니요, 그러니까 프로필의 직업란에 변호사라고 기재하는 걸 그만두고 싶어요.”
“어째서요? 그게 모모세 씨의 가장 큰 자랑거리잖아요! 그것 말고 내세울 게 도대체 뭐가 있다고…….”
말하다 말고 아코는 입을 다물었다.
모모세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소개해주신 여성들은 변호사라는 제 직업에 매력을 느끼고 맞선을 보러 나오신 것 같아요. 그 결과 30연패죠. 슬슬…….”
“슬슬?”
“모든 걸 걷어내고 벌거숭이가 된 저를 받아들여주실 분을…….”
아코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리고 더 이상 부풀어 오르지 않을 만큼 뺨을 부풀린 끝에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결과 모모세는 얼굴 가득 아코의 침 세례를 받고 말았다.
고작 하룻밤을 함께 지낸, 이름도 지어주지 않은 카오스 고양이의 목숨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진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여느 때와는 달랐다. 분노보다 슬픔이 앞섰다.
이유는 분명 모모세의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모모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집에 들여놓은 새끼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깨달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동물 소송을 맡아왔지만, 단 한 번도 주인의 마음과 동화된 적은 없었음을. 마음을 함께 나눈 줄 알았으나 거리가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랑하는 동물을 잃은 당사자의 마음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