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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농업 > 농업일반
· ISBN : 9788942300198
· 쪽수 : 1022쪽
· 출판일 : 2025-12-05
책 소개
목차
VI. 소 길들이고 소통하기: 부림소 되기와 구실 7
2. 소와 함께하기 ? 소를(는) 생각한다 9
1) 소 사육과 소 위상의 변화 9
(1) 한우의 역사와 특징 9
(2) 부림소 시대에서 고기소 시대로 33
2) 소 마련하는 다양한 제도 67
(1) ‘도지소’ 또는 삯소 75
(2) 그리소와 맞멕이 85
(3) 소 매매와 우시장 122
3) 소 기르기? 전통농업의 생태적 고리 168
(1) 소의 일생 168
(2) 소 먹이의 종류와 특징 212
(3) 마구간/외양간 278
4) 소: 일꾼, 친구에서 신이 된 동물 387
VII. 겨리공동체: 소와 소를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다 435
1. 소겨리 구성과 특징 438
1) 소겨리의 여러 이름 451
2) 구성 시기와 조건 465
(1) 구성 시기와 지속 기간 465
(2) 소짝 구성 고려 조건과 대상 478
3) 소겨리의 구성 방식 494
(1) 독겨리 495
(2) 맞겨리와 소겨리 510
4) 소겨리의 운영방식: 품 계산 552
(1) 소겨리의 등가적 교환 기제 552
(2) 품 계산 방식 571
2. 소겨리: 생산공동체를 넘어 일상공동체로 595
1) 보냄 의례 596
(1) 보냄의 의미와 여러 이름 596
(2) 시기와 날 잡기 606
(3) 장소와 갈이 방법 617
2) 농우공동체: 공동노동과 공동식사 633
3) 일상공동체: 겨리사촌 그리고 겨리공동체 646
3. 겨리 생산공동체의 특징: 두레와 비교를 중심으로 654
1) 논농사와 밭농사지역의 공동노동조직의 특성 662
2) 공동노동조직의 발생과 변화 672
(1) 품앗이: 공동노동의 기초 673
(2) 소겨리: 축력 공동노동조직 698
(3) 두레: ‘조직적’ 공동노동조직 708
(4) 강원도 노동조직의 특성: 두레와 소겨리의 관계 731
3) 조직의 내적 차이와 공동체성 764
(1) 두레의 구성 시기와 규모 764
(2) 소겨리의 구성과 구성원리 804
4) 조직 구성원리와 내적 차이 817
(1) 두레와 소겨리의 계층성 827
(2) 마을 공동체성과 ‘개인-공동체성’ 847
4. 연장사회기술체계에서 농기계사회기술체계로의 변화 866
1) 농업기계화와 소짝의 해체 866
(1) 농기계의 보급 현황 867
(2) 농기계화와 생산조직의 변화 874
2) 농축산복합체제와 농기계과학기술체계의 역설 905
(1) 연장사회기술체계: 나무와 흙의 시대 912
(2) 농기계사회기술체계: 쇠붙이 시대 920
VIII. 나가며: 겨리공동체를 꿈꾸며 939
1. 농민 ?닮고 싶지 않은 이름! 941
2. 다시 농農을 생각한다 967
1) 농의 의미와 존재 양식 967
2) 농민 농업과 자연 984
3. 분단과 식민성을 넘어 997
1) 잃어버린 땅: 역사의 빈곤 997
2) 전통의 자기부정과 지식의 식민성을 넘어 1008
국문요약문 1032
Abstract 1038
참고문헌 1045
찾아보기 1085
부록: 이 책을 만드신 분들 1113
저자소개
책속에서
강원도에서 뒷일을 보는 공간은 지역에 따라 변소, 뒷간, 잿간, 정낭(간) 등의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 이름들 가운데 잿간과 정낭은 지역적 특징을 달리하였다. 춘천 사암리의 최봉규는 예전에는 화장실을 변소라고 했는데, 특히 잿간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 점은 횡성 상안리 최영환의 “과거 똥을 누는 잿간” 또는 원주 대안리 한만준의 “잿간에 이렇게 돌 두 개 놓고서”라는 말에서 확인된다. 춘천 사암리, 횡성 추동리·상안리, 원주 대안리 등의 사례에서 미뤄볼 수 있듯이 잿간이란 용어는 영서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쓰였다. 반면에 〈지도Ⅵ-5〉와 양양 갈천리 엄익환의 “대소변 보는 걸 요즘은 그런 데 뒷간이라 그러기도 하고 정낭간이라 그러기도 하고”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영동지역에서는 정낭(간)이 말이 주로 쓰였다. 요컨대 잿간과 정낭은 뒷간이나 변소보다 강원도의 지역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증보한국방언사전》과 《한국언어지도》에서는 ‘잿간’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잿간〔灰家〕은 말처럼 불을 때고 난 후 생긴 재를 갖다 모아두는 곳이었다. 대체로 뒷일을 보는 뒷간과 잿간은 엄연히 분리되는 공간이었다. 예컨대 양양 갈천리의 엄익환과 양양 상복리의 조광복의 말처럼 정낭(간)의 똥독과 잿간의 잿독은 엄연히 달랐다. 이는 꽤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인용한 유진의 《위빈명농기渭濱明農記》(1618년)에서도 “측간 옆에 연이어 가가假家 몇 칸을 지어서 잿간〔灰家〕으로 삼는다. 때때로 분糞을 모으고 오줌을 끄집어내어 재 위에 섞는 장소로 이용한다.” 또는 유중림柳重臨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년)의 “잿간은 반드시 측간 옆 조금 가까운 곳이 좋다. 잿간의 3면에 담을 쌓고 서까래를 걸어 진흙으로 바르고 지붕을 인다. 매일 소변을 재 위에 뿌려 주면, 뜨거운 재에서 불이 나는 것도 방지한다(농촌진흥청, 2003:57).”고 하여 조선 중후기에도 잿간은 측간과는 다른 별도의 공간으로 재를 모아두거나 재거름을 만드는 곳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강원도에서는 잿간에서 뒷일을 보는 기능이 더해졌다. 한마디로 “옛날에는 뭐 화장실이 지금 같아요? 그냥 이 다리만 두 개 놓고 재에다가 또 끼얹었다고. 그래 잿간이지.”라는 횡성 추동리 김철수의 부인 말처럼, 뒷간과 잿간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요컨대 잿간이 뒷일을 보는 공간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뒷간의 또 다른 이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잿간의 뒷일을 보는 구조물은 땅속에 큰 항아리나 소 구유처럼 나무를 깎아 만든 똥독, 이른바 망우통 또는 액비통을 땅속에 묻고 그 위에 발판을 놓아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두 개의 부ㅤㅊㅜㄷ돌을 놓아서 만들었다. 대체로 잿간이라고 하면 두 개의 부ㅤㅊㅜㄷ돌을 놓아 만든 것을 일컬었다. 잿간에서 뒷일을 본 뒤에 그 위에 재를 덮고 그 재를 ‘재가래’로 쳐내서 한 곳에 쌓아두면, 자연스럽게 ‘인분재’, 곧 재거름이 만들어졌다. 재거름을 만드는 공간으로써의 기능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 사람들이 변소를 잿간이라고 많이 부른 것은 잿간을 거름을 생산하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도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는 듯하다. 무릇 강원도에서 잿간은 거름, 이른바 ‘재거름’ 또는 ‘똥재’를 만드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훨씬 강했다.
잿간은 강원도만의 변소 형태가 아니었다. 필자가 이 책을 쓰던 초기부터 오랫동안 잿간을 강원도 산골지역의 독특한 뒷간 문화로만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동범(2010)의 《자연을 꿈꾸는 뒷간》을 읽다가 다음 글을 접하면서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1997년 여름, 필자는 남해안의 청산도에 간 적이 있다. 청산도의 어느 해안마을 농가에서 부ㅤㅊㅜㄷ돌 잿간을 며칠 동안 사용할 기회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으나 쓸수록 편하고 위생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집주인의 말씀을 빌리자면 청산도 같은 작은 섬에서는 잿간처럼 깨끗하고 실용적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선 수세식의 경우 조그마한 섬에서는 정화조를 거친 분뇨 희석수를 처리할 곳이 마땅치 않고, 수거식의 경우 자칫 지하수에 스며들어 수자원을 오염시킬 염려도 있으며, 청산도 같은 섬 지역은 비료를 운송하기 어렵고 비용 부담도 높아 분뇨를 자가 비료로 활용하는 잿간이 제일 적절하다고 한다. 잿간 변소는 위생적이면서도 천연퇴비를 많이 생산할 수 있어 매우 쓸모 있는 뒷간 형태이지만 오늘날에는 많이 자취를 감추었다. 난방체계가 장작불에서 기름보일러로 변화되어 재를 마련하기 어렵고, 편리한 수세식의 보급과 손이 많이 가는 분뇨퇴비보다는 화학 비료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고향 청산도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내 집뿐만 아니라 자주 드나들었던 외갓집 등의 변소는 한결같이 수거식, 일명 ‘푸세식’이었다. 청산도의 변소는 수거식 구조가 기본형이라고 생각했던 필자는 윗글을 읽고 나서 즉시 필자의 어머니(임문자, 1941년생, 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 2019.3.15.)에게 전화로 이에 관해 물었다. 옛날 외갓집 변소도 수거식으로 바꾸기 전에 잿간 구조였는데, 잿간이라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고, 보통 ‘통시’로 불렀다고 했다. 통시라고 불렀지만, 제주도와 달리 돼지를 키우지는 않았다고 했다. 수거식의 똥오줌은 채소밭에 조금씩 주기도 했지만, 가을철 보리 파종할 때 똥 장고로 져 옮겨서 보리 고랑에 뿌렸다. 온 가족의 똥오줌뿐만 아니라 부엌 등에서 나오는 허드렛물까지 빠짐없이 모았지만, 늘 부족해서 똥오줌을 쳐내기 전에 통에 물을 섞어서 양을 늘리기도 하고, 보리 고랑에 바다 해조海藻 가운데 하나인 몰(모자반을 깔기도 했다. 어머니로부터 이 얘기를 듣고, 경상도 지역의 변소는 어떠했는가를 알아보고자 경남 함양이 고향인 대학 선배(박동성, 1963년생)에게 곧바로 전화했다. 그의 고향에서는 보통 변소를 잿간, 통시라고 불렀다고 했다. 《한국언어지도》에서 함양은 통시 언어권으로 분류되었다. 본인이 어렸을 때 잿간이 있었고, 중간에 돼지 마구 위에서 일을 보는 통시를 만들었다가 다시 구덩이를 파서 변소를 만들었다고 했다. 변소에서 똥을 풀 때는 ‘수앙 푼다.’라고 했는데, 푸기 전에 물을 많이 붓고 잘 저어서 똥장군에 퍼 담아서 밭으로 날랐다고 했다.
이렇듯 잿간은 강원도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변소 형태였다. 장보웅(1995:261 참조)에 따르면, 잿간은 “한반도 서남부의 평야부에 넓게 분포하였다.” 재와 혼합해서 인분의 습기를 어느 정도 제거하는 건식乾式 처리방식의 잿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분을 저류貯溜하는 습식濕式 처리방식의 수거식으로 많이 바뀌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