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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외교정책/외교학
· ISBN : 9788946065390
· 쪽수 : 400쪽
책 소개
목차
제1부 제1차 북핵위기와 제네바합의
1. 북한 핵문제의 서막
2. 남북한과 IAEA의 진실게임
3. 벼랑 끝의 북한과 미북 협상
4. 제네바합의로 가는 길
제2부 제2차 북핵위기와 6자회담
1. 제네바합의의 종언
2. 위기 속에서의 6자회담 출범
3. 9·19 공동성명과 새로운 난관
4. 벼랑 끝에서 뛰어내린 북한
5. 파국의 늪을 건너서
제3부 제3차 북핵위기와 환상의 종말
1. 검증문제, 그 진실의 덫
2. 20년 만에 깨어난 미몽
3. 미래의 과제와 난관들
제4부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서
1. 전략적 재점검의 필요성
2. 북한 핵문제의 사슬을 넘어서
에필로그
부록(보다 전문성을 요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Ⅰ. 핵문제의 심층 이해를 위한 전문지식
Ⅱ. 북한 핵문제 주요 일지
Ⅲ. 북한 핵문제 관련 합의문/유엔결의
저자소개
책속에서
미국이 제공해온 첩보위성 자료에는 재처리시설 인근에 위치한 2개의 폐기물저장소를 은폐하기 위한 북한 당국의 고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것은 의심할 수도 변명할 수도 없는 너무도 명백하고도 확실한 은폐의 증거였다. 미국이 제시한 증거는 한마디로 더 이상의 설명이나 질문이 필요 없는 자료였다. 당시 한국 정부 내에는 핵문제의 해결보다 남북관계 개선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고, 이들은 당초부터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적나라한 증거 앞에서 어느 누구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핵문제의 협의주체가 일단 미국으로 넘어가자 그것은 점차 미국 자신의 협상이 되었고, 한번 한국의 손을 떠난 협상은 다시는 한국의 손에 돌아오지 않았다. 미국이 대북한 협상을 직접 수행함에 따라 한국은 북한 핵문제 협상구도에서 점차 멀어졌고, 북한은 그 뒤로 다시는 한국을 핵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도 처음에는 한국을 대신해서 핵협상을 한다는 기분으로 임했지만, 그들의 인식 속에서 그것은 점차 미국 자신의 협상이 되었고, 이에 따라 미국이 한국과 공유하는 정보의 양은 점차 줄어갔다. 물론 협상전략에 관해 한미 간에 협의는 빈번히 이루어졌으나, 그것은 미국이 한국의 의견을 성의 있게 경청하고 필요시 반영하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차이는 미국은 대북한 협상에 직접 참석을 하고 한국은 나중에 그들이 설명해주는 것을 받아 적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매일 몇 시간 동안 열리는 회담 내용을 모두 있는 그대로 정확히 알려준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북한의 허가를 받아 뒤늦게 파견된 IAEA 사찰단이 망연자실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은 약 한 달에 걸쳐 연료봉 8,000개를 마구 섞어서 인출했다. 이것은 연료봉 재처리의 증거를 인멸하겠다는 노골적 의지의 표출이었다. 허를 찔린 국제사회가 놀라 입을 벌린 채 구경만 하는 동안 북한은 뒤도 안 돌아보고 연료봉 인출 작업을 마쳤다. 이는 북한이 핵문제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벼랑끝전술」의 극치였고, 마치 국제사회의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북한의 5MW 원자로 연료봉 인출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첫째는 연료봉을 원자로에서 제거함으로써 과거의 핵활동 기록을 정확히 추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었고, 둘째는 인출된 연료봉을 언제라도 재처리하여 플루토늄을 추가로 추출할 준비가 갖추어졌다는 점이었다. 그 어느 것도 미국이나 IAEA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최악의 사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