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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 ISBN : 9788972972020
· 쪽수 : 394쪽
· 출판일 : 2026-02-10
책 소개
당신은 이 세대를 이해할 수 없다
‘은둔고립청년’으로 이름 붙여진,
당장이라도 증발해버릴 것처럼 고립되고 지친 청년 세대를 들여다보다
‘그들-청년’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닌
‘우리-청년’을 이해하게 만드는 청년 당사자의 세대론
‘은둔고립청년’. 사회적 고립이나 장기간 은둔 상태에 놓인 청년을 지칭하는 이 단어가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2023년 조사 통계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집이나 방 등 한정된 장소에 머물러 있는 은둔고립청년의 수가 54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숫자에 속하는 이들만이 ‘은둔고립청년’일까?
‘관계’를 지금 여기의 핵심적 화두로 붙들고 동양고전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는 ‘유학자’인 저자 김고은은 ‘존재클럽’이라는 은둔고립청년 커뮤니티에서 인터뷰 워크숍을 진행하며, 청년 당사자이자 고립 경험 당사자로서 또래 은둔고립청년들을 만났다. 그 경험 속에서 저자는 은둔고립의 경험이 특수한 경험이 아니며, 특히 공동체의 부재가 일반적인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함을 깨닫게 됐다.
책을 시작하며 저자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방법론을 이야기하며, 이 책이 학제적인 연구방법을 통해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힌다. 대학을 중퇴하고 인문학 공동체에서 배움을 이어오며 저자는 공부란 일상에서 세상을 만나는 일이고, 그것을 자신의 일상 안으로 가져와 곱씹으며 익히는 일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대상과 거리감을 유지하며 분석하는 방법이 아닌, 관계와 맥락에 녹아들고 그것을 자신의 삶 위로 가져와 만나는 방법으로 은둔고립청년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인류학자 샹바오(項飇)가 언급했던 ‘향신(鄕紳)’이라는 중국의 지방 관리처럼, 저자는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관계를 가꾸면서 은둔고립청년의 경험을 공부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은둔고립청년의 직접적인 목소리와 대화가 담긴 인터뷰와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담은 글이 어우러져 있다.
오늘날 청년 세대는 사회적 관계에서 배제되거나 자기 기반을 잃은 경험, 나를 지키는 방법이 ‘각자도생’뿐이라는 생각, 나와 비슷한 위치에 놓인 이들이 모두 경쟁 상대일 뿐이며 나에게 관심 갖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규칙 속에서 설 자리를 잃은 감각을 언제나 느끼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은둔 혹은 고립 경험이 있거나, 언제든지 고립될 수 있겠다는 예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은둔고립청년’, ‘쉬었음 청년’, ‘일쉼청년’ 등의 개념이 만들어지고 정부 차원의 여러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여기에는 이들을 경제적·사회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실패자’로 규정하고, 그들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고 경제인구의 손실을 회복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시선이 깔려 있다. 저자는 이런 사회에서 청년 세대의 고립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기성 세대들이 이 고립의 감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청년 세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청년 당사자인 저자가 만난 은둔고립청년들에 대한 기록임과 동시에, 자신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내왔으며 이것은 일종의 ‘시대감각’임을 이해하는 과정의 기록이다. 또한 개인의 삶과 그 삶이 놓인 구조가 어떻게 얽혀 고립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고, 그런 고립을 겪은 사람들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이 굴레를 끊어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타인을 마주할 수 없다.
세상에 내 자리가 없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자신 및 타인과의 연결이 끊어진, 더는 이 세계를 견딜 수 없어진
청년 세대의 고립을 진단하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은둔고립청년 당사자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의 ‘혼맹(Soul blindness)’이라는 개념으로 은둔고립청년을 진단한다. 혼이란 한 존재가 그의 신체나 언어를 넘어서 관계 위에서 존재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모두 혼을 가지고 있고 혼을 인식할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관계 위에서 만날 수 있고 서로를 마주할 수 있다. 이것은 존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다. 만약 혼을 잃고 혼을 마주할 능력을 잃는다면 다른 이들의 삶 속에 실존할 수 없고, 다른 이들이 내 삶 위에 실존할 수 없다. 저자의 시각에 따르면 은둔고립청년들은 이 세계의 관계망에서 떨어져나와 고립된 이들이다. 혼을 잃어버려 나도 남도 나를 인지할 수 없게 된 것이며, 그래서 존재 자체가 실질적인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이 세계에 참여할 수 없고, 세상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며, 그렇기에 타인을 마주할 수 없고,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감각한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이 사회는 경쟁하며 타인을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주입하며 서로 혼을 주고받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경쟁 때문에 세상 속에서 붕 뜬 존재들에게 ‘진짜 자신’을 찾으면, ‘완벽한 파트너’를 찾으면, 정상성 속에 편입되어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자기 자리’를 찾으면 된다고 끝없이 몰아붙인다. 하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부추김은 더더욱 청년들을 혼맹과 고립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급속한 성장기를 거쳤던 한국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성장과 성공이 가능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이제 이전과는 다른 삶의 양식, ‘정상’ 궤도에서 탈락하고 이탈한 후에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환경이 필요하다.
‘정상 궤도’에서 이탈해 ‘실패자’, ‘낙오자’로 불리는 청년 세대가,
이탈과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를 피해
‘탈락한’, ‘이탈한’, ‘도태된’ 존재로서 도망하고 싸우며 연대하는 방법
청년 당사자의 생생하고 통렬한 사회 고발이자
이전과는 다른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제안
저자는 은둔고립청년을 ‘실패자’, ‘이탈자’가 아닌,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기엔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가진, 혹은 경쟁 사회에 의해 내쫓겨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바라본다. 경쟁에서 끝없이 이기기를 강요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정상’ 생애주기에 편입되지 않으면 낙오되는 사회에서, 더는 이렇게 살아갈 수 없음을 몸으로 절실히 깨닫고 “자신의 삶에 브레이크를 건”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들은 물리적으로 죽지만은 않기로 결심하고 삶을 버티고 있으며, 사회의 시각으로는 포착되거나 편입되지 않는 각자의 방식으로 도망치고 싸우고 있다. 이런 ‘다른 존재’들의 존재에는 사회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역동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탈락’하고 ‘이탈’하고 ‘도태’된 존재로서 계속 살아가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런 이들의 삶의 궤적을 짚으며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해보기를 제안한다.
이 책은 은둔고립청년 당사자의 목소리와 함께 고립을 만들어내는 사회를 진단하고, 우리가 서로를 인간답게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 양식, 관계와 공동체의 단서를 말한다. 또한 사회가 강요하는 인재상을 넘어, 우리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인간상과 관계망의 상상력을 촉구한다. 이 책은 청년 당사자인 저자의 생생하고 통렬한 사회 고발이자,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제안이 될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너의 혼맹을 만나며
1장 점
* 그냥 세상에 없는 존재이고 싶어
* 혼맹
이미 죽은 사람들
삶에 브레이크를 걸다
개인이라는 허상
죽기 대신 버티기
2장 선
* 초라하고 장엄한 움직임
* 애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다시 태어나기
끝끝내 움직이지 않을 것 같지만
영원히 제자리일 것 같지만
* 한국이 싫은 이유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3장 면
* 과도기
* 재혼맹의 두려움
불화
연결
4장 입체
* 베이글과 눈동자
* 전환
나가며: 나의 혼맹에 관하여
저자소개
책속에서
은둔고립청년 문제는 일종의 시대적인, 세대적인 문제다. 고립 문제를 시대나 세대와 결부시켜 이론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더 실용적인 동기로 움직였다. 무력감, 절망, 불안, 고립, 자괴감 내지 혐오감을 통과하지 않고는 나와 나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 우리 세대가 경험한 일종의 공통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 은둔고립 문제를 마주하고, 그것에 내재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에 관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친구 중에 자살한 이가 한 명만 있는 경우도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주위에 친구 사별자가 된 친구를 한 명만 알고 있어도 이 또한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가 친구를 떠나보냈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능숙하게 친구 사별자를 챙기고 그들의 마음을 살필 줄 알게 된 이들이 늘고 있다. 마치 장년이 부모를 떠나보내듯 청년은 친구를 떠나보낸다. 전자에게 죽음은 자연의 섭리고 후자에게 죽음은 시대의 섭리다. 시대의 섭리란 것이 있을 수 있다면 말이다.
진짜 곤란함은 혼을 잃어버린 사람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데에서, 귀를 맞대야 한다는 데에서,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데에서 온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군가를 마주할 능력이 사라진 사람과 어떻게 마주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마주할 수 없는 사람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