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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50955175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4-06-02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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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한밤중에 이벤트용 팸플릿을 완성하고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컴퓨터 책상 선반의 시계가 오전 2시를 가리키고 있다.
스탠드 불을 끄고 커튼을 열어젖혔다. 담배에 불을 붙인다. 깊게 들이마시자 담배 끝이 누사마이바시 다리 너머로 이어지는 가로등 색깔과 비슷해졌다. 불빛은 한 모금 들이마실 때마다 이쪽으로 다가온다. 가로등 불빛은 오늘 밤도 여전히 인적이 드문 중앙로를 비추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빛을 비추는 불빛에 동질감을 느낀다. 왼손 중지로 관자놀이를 세게 눌렀다. 눈을 질끈 감으니 어느새 류세이의 아내가 노부키를 바라보고 있다.
과거에 어머니였던 물체.
지금은 무엇으로 변했단 말인가.
이 사람이 주는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자랐으면서. 쓰러지고 나니, 모자라는 관계 또한 서로 제정신이어야 성립되는 이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이제 아무리 애원한들 어머니의 정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결말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만족스런 답이 나오지 않는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애정의 형태와 냄새조차 잊힐 날이 오리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할까.
바닥을 드러낸 정을 어머니보다 한발 먼저 깨달았다.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마지막 날까지 어머니가 어머니의 형태를 갖춰줬더라면. 류세이는 스스로의 소망에 상처 입었다.
‘사자’, ‘자동차’, ‘차고’, ‘고드름’.
늘 준카가 진다. 그렇게 많이 하고도 마지막에 승부가 갈리는 놀이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준카가 졌으니까 끝.”
“고드름 좋아하는데.”
“좋아해도 안 돼. 이만한 게임에도 규칙이 있어.”
게임의 끝을 알리는 말투치고는 상당히 매정하게 들려 백미러로 뒷좌석을 힐끗 쳐다보았다. 리나가 토라진 준카에게 가방에서 꺼낸 과자 봉지를 건넨다. 차 안에 캐러멜 맛 팝콘의 달달한 냄새가 퍼진다.
‘결혼’이라는 단어는 이 셋의 관계를 바꿔놓을 것이다. 리나는 자신의 큰 짐을 함께 질 유일한 사람이었다. 눈이 점차 깊어지고 바다 마을에서는 탁 트였던 푸른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스키장에 딸린 온천 관광호텔이었다. 눈이 쌓이지 않으면 좋을 게 없었다.
결론을 내려야 하는구나.
이제 와서 뻔뻔하긴 하다. 끝말잇기에도 규칙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조건을 달고 결혼해서 행복해질 사람이 있을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결말은 사실 아무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걸음을 내딛지 않고도 그냥 시간만 흘러갔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