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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외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88950964825
· 쪽수 : 480쪽
· 출판일 : 2016-04-29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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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그가 매장에 왔던 5월의 그날,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전체적인 모습은 다소 당혹스러운 데가 있다. 그는 서커스의 원형 무대 한가운데 서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관중을 쳐다보는 아이처럼 남성복 코너를 천천히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가서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그게 내 일이었고, 회사가 만든 고용인 지침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으니까. 그건 예스페르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로 노조는 그 지침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날 향해 돌아섰고 당황해서 손을 가슴 위로 움직이며 셔츠 앞부분에 커다란 오렌지색 얼룩을 가리켰다.
“30분 후에 중역 회의가 있어서 새 셔츠가 필요해요.” 그는 내 시선을 계속 피하면서 매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볼로네즈 스파게티?”
몸이 굳은 그의 그을린 얼굴에서 미소의 기미가 스쳤다. 내 눈을 쳐다보는 순간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의 존재가 갑자기 굉장히 압도적이고 뚜렷이 느껴져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무 말 없이 그가 나를 혼자 내버려두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1분, 아니 2분쯤 걸렸을까. 결국 정신이 들었다.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어머니가 오랫동안 알코올 문제가 있으셨나?”
“내가 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였어요.”
나는 돌이켜봤다. 엄마가 술을 마시지 않을 때가 있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행복했고 에너지가 가득했다. 우리는 잘 시간이 훨씬 지나 밤늦게 밖에 몰래 나가 맨발로 눈밭에서 서로를 쫓아다니곤 했다. 한번은 엄마가 취했을 때 애완동물 가게에 가서 강아지 한 마리를 샀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나는 몸을 심하게 떠는 엄마를 부축해야 했다. 돈이 떨어지면 우리는 식료품 가게에서 함께 물건을 훔쳤다.
그 모든 일들이 있었지만 좋은 기억들이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지?” 예스페르가 물었다.
“아빠는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를 자주 생각해?”
“가끔요. 아빠 꿈을 꿔요.”
그는 정확히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아버지는?”
마음속에 셴트 모습이 떠올랐다. 즉각 몸서리가 쳐졌다.
엄마는 그와 몇 년을 함께 지냈다. 술 마시는 것 외에 그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알코올 중독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건 힘들지.”
예스페르의 손이 내 손을 덮었다. 햇살 같은 온기가 그에게서 내게로 흘러왔다.
“그건…… 외로웠어요.”
“그것 보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면서 그는 내 손을 더 꼭 쥐었다.
“뭐라고요?”
“당신 역시 외로웠다고. 내가 말했던 것처럼. 난 알고 있었어.”
나는 궁금했다. 예스페르는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이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날 찬 거라면. 그가 그림을 훔쳐갔다면. 내게 돈을 돌려줄 마음이 없다면. 그렇다면 올가가 옳다.
“어떻게 해야 된다고 쓰여 있어?”
올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조용히 움직여 마지막 문단을 읽었다.
“할 수 있는 한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사이코패스는 변하지 않는대. 기사에 그렇게 나와 있어.”
올가는 날 향해 몸을 숙이고 손을 내 팔에 얹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크고 옅은 색의 눈 속에 걱정의 빛을 담고 날 쳐다봤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절망보다는 알고 싶다는 욕구가 내 안에서 더 강하게 샘솟았다.
“이해가 안 돼.” 난 웅얼거렸다. “그는 돈이 아주 많아. 그리고…… 유명해. 그런 그가 내게 10만 크로나를 사기 치려고 모든 위험을 감수하겠어?”
“어쩌면 돈 때문이 아닐 거야.” 올가가 주저하며 말했다.
“무슨 뜻이야?”
“그는 네게 굴욕감을 주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 널 열 받게 하려고 한 거지.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