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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 ISBN : 9788950976279
· 쪽수 : 480쪽
· 출판일 : 2018-08-20
책 소개
목차
제1장 15
제2장 53
제3장 81
제4장 111
제5장 133
제6장 157
제7장 173
제8장 193
제9장 227
제10장 259
제11장 279
제12장 299
제13장 329
제14장 349
제15장 365
제16장 397
제17장 419
제18장 445
에필로그 476
리뷰
책속에서
“사형, 뭘 걱정하는 거야?”
여가가 옥자한의 무릎에 엎드리자 여가의 밝고 투명한 뺨이 푸른 도포에 폭 싸였다.
“이미 지난 일이잖아. 다 잊은 지가 언젠데 전풍이 혼인을 한다고 내 마음이 흔들리겠어?”
여가는 웃고 있었다. 옥자한은 여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여가는 왠지 자신이 알던 여가가 아닌 듯했다.
한 달 전 사흘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다시 만난 여가에게서는 성숙미가 물씬 느껴졌다. 마치 단 하룻밤 사이에 여인으로 변한 듯했다. 여가는 예전처럼 옥자한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따뜻이 보살펴주었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전처럼 웃었지만, 눈빛만은 예전처럼 웃고 있지 않았다.
“가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찌하여 이제는 여가의 웃는 얼굴에서 티 없이 맑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어. 사형 부쩍 의심이 많아졌네. 모든 게 다 잘 되어가고 있는 거 안 보여? 무슨 일이 일어날 게 뭐 있다고 그래?”
여가는 웃는 얼굴이었지만 대답하는 내내 옥자한의 눈을 피하는 것 같았다.
“설은?”
마침내 옥자한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옥자한에게 내려진 한의 저주를 빨아들인 설은 어째서 세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궁에서도 설의왕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설…….
여가의 심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날 밤, 설의 몸은 차츰차츰 투명해지다 수천, 수만 개의 광채로 변하면서 여가의 품에서 조금씩, 서서히 사라져갔다…….
“떠났어.”
여가의 목소리는 땅에 닿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시월의 눈만큼이나 가벼웠으나, 얼굴에는 쓴웃음이 배어 있었다.
“떠났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어.”
“저 여인을 죽이시오.”
칼날처럼 싸늘한 목소리였다. 전풍은 이어서 주례에게 말했다.
“혼례를 계속 진행하시지요.”
옥의는 어안이 벙벙하여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손에 쥔 비수는 곧 땅에 떨어질 듯했다.
열화산장 제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풍 도련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는 터라 마음을 독하게 먹고 그 가냘픈 여인을 둘러쌌다.
흥겨운 주악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전풍의 얼굴은 미동조차 없었다. 도열향의 입가에 조롱기 담긴 미소가 스치고, 옥구슬이 매달린 예모의 술이 다시 얼굴에 드리워졌다.
옥의의 눈빛에서 증오가 뿜어져 나왔다. 옥의는 이를 악물고 전풍의 거만한 몸을 향해 달려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당신의 아이를 가졌다고요! 내 뱃속에 당신의 아이가 있어요!”
비수가 전풍의 앞가슴을 향해 날았다.
옥의는 전풍을 증오했다. 증오심에 그를 죽이려 했다.
여가가 눈을 떴을 때, 비수는 전풍의 손에 들려 있었다. 전풍은 옥의의 머리채를 잡고 뒤쪽으로 끌어내며 잔인하고 비정하게 말했다.
“내 아이를 가졌다고?”
“그래요.”
옥의의 눈은 메말라 있었다. 더 흐를 눈물이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린 뒤였다.
비수가 옥의의 배를 겨누었다.
“내 아이가 자라면 틀림없이 악마가 될 것이니, 아예 지금 싹을 잘라버리는 게 낫겠지.”
날카로운 비수가 옥의의 배를 찔렀다. 한기가 뼈에 사무쳤다……. 옥의는 절망과 두려움에 휩싸인 채 절규했다.
“안 돼! 아가야!”
전풍의 눈이 어두워지고, 비수는 옥의의 부드러운 배 속으로 들어갔다.
열화산장의 경삿날. 불이 활활 타오르는 듯 시뻘건 단풍나무와 등롱. 술 냄새와 음식 냄새. 한곳으로 뿌려진 꽃잎, 사탕, 땅콩, 대추…….
“그녀를 놓아줘.”
불꽃같은 목소리가 적막을 찢어놓았다.
“그녀를 놓아줘!”
붉은 단풍나무 아래,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은빛을 띤 여인이 서 있었다. 고집스럽게 깨문 입술, 불꽃이 이글거리는 눈빛 그리고 낙엽과 함께 바람결에 흩날리는 붉은 옷을 입은 여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