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강한 자에는 호랑이처럼 약한 자에는 비둘기처럼

강한 자에는 호랑이처럼 약한 자에는 비둘기처럼

(스코필드 박사 자료집)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지은이), 김승태, 이항, 유진 (엮은이)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20,000원 -0% 0원
1,000원
19,00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강한 자에는 호랑이처럼 약한 자에는 비둘기처럼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강한 자에는 호랑이처럼 약한 자에는 비둘기처럼 (스코필드 박사 자료집)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88952113160
· 쪽수 : 648쪽
· 출판일 : 2012-04-10

책 소개

스코필드 박사 자료집. 이 책의 출간 목적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에 큰 도움을 주고 일제의 3.1 독립운동 탄압 실상을 사진 자료와 함께 해외에 알리고, 일제의 만행과 한국인의 인권 침해에 대하여 일본 총리와 조선총독 등 일본인 고관들에게 항의했던 스코필드 박사의 영문, 국문 자료를 발굴 번역하여 연구자에게 도움을 주고 학생과 일반인들에게도 그의 숭고한 인도주의 정신과 실천을 널리 알리려는 데 있다.

목차

화보
일러두기
추천사 | 박유철
머리말 | 유 진
[해제] 한국을 조국처럼 한국인을 동포처럼 사랑한 캐나다인, 스코필드 박사 자료 | 김승태

I. 일제 강점기 스코필드 박사의 보고서 및 기고문
1. 스코필드 박사의 일제 만행 보고서
01. 제암리 학살 만행 보고서(1919. 4)
02. 수촌리 학살 만행 보고서(1919. 7. 26)

2. 스코필드 박사의 식민지 한국의 상황에 대한 영자 신문 기고문
01. 한국 사태를 조사할 제국조사위원회(1919. 7. 1)
02. 한국 민심의 파악: 일본의 가장 중대한 문제와 실패의 원인(1919. 8. 2)
03. 한국에서의 개혁 I: 한국에 대한 일본의 도전 - 불가능한 정책(1919. 8. 26)
04. 한국에서의 개혁 II: 캐나다 혹은 아일랜드? - 조사의 필요성(1919. 8. 27)
05. 한국에서 행해지는 고문: 미즈노 박사가 해결할 문제(1919. 11. 29)
06. 한국에서 죄수들에게 행해지는 고문: 일제 통치 하에서의 죄악(1920. 1)
07. 한국의 개선책: 새로운 제도의 비평적이고 건설적인 조망(1920. 3. 12)
08. 한국의 개선책: 비평적 조망 II - 헌병경찰제도의 폐지(1920. 3. 13)
09. 한국에서의 개혁 III - 실패의 원인: 가혹한 통치 탓에 진정한 개선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다(1920. 3. 14)
10. 한국: 프랭크 헤론 스미스 목사에 대한 답변(1920. 4. 10)
11. 압제자의 멍에 아래 신음하는 한국: 서울의 한 의료인이 전하는 한국의 자유를 향한 부르짖음(1920. 7. 12)
12. 한국에서 일본의 개혁(1920. 7. 17)
13. 한국의 미래: 하라 일본 총리와의 인터뷰(1920. 9. 4)
14. 한국의 여성들은 ‘힘’을 가지고 있다(1920. 6. 7)

3. 스코필드 박사의 국내 신문 기고문
01. 한국 발전의 요결(1920. 4. 1)
02. 조선의 친구여(1) 캐나다로 귀국 중인 스코필드씨 편지(1926. 9. 17)
03. 조선의 친구여(2) 실행이 제일(1926. 9. 19)
04. 나의 경애(敬愛)하는 조선의 형제여?스코필드 박사 서한(1927. 1. 5)
05. 경애(敬愛)하는 조선 형제에게(1931. 12. 26)

II. 해방 이후 스코필드 박사의 기고문
01. 민심은 공포에 잠겨 있다 의사당 앞에 무장경관이라니(1959. 1. 3)
02. 의, 용기, 자유의 승리(1960. 4. 28)
03. 내가 본 한국혁명(1961. 1. 8)
04. 한국 교회의 어제와 오늘(1961. 3)
05. 정직은 번영에의 유일한 길이다(1961. 4)
06. 나는 이렇게 본다. 한국의 군사혁명(1961. 6. 15)
07. 3·1 운동(1962. 3. 2)
08. 서울대의 문제점(1962. 12. 3)
09. 1919년 3월 1일과 1963년 3월 1일(1963. 2. 28)
10. 스코필드 박사, 박의장에게 서한(1963. 3. 23)
11. 3·1 독립선언기념탑 제막식에서 한 스코필드 박사의 축사(1963. 8. 17)
12. 나도 한국의 분신, 할 말은 해야겠다(1963. 9. 13)
13. 내핍은 수범(垂範)에서만(1964. 1. 16)
14. 사건의 전모 밝혀야(1964. 3. 3)
15. 나는 왜 돌아왔나?(1965. 1. 4)
16. 1919년 3월 1일, 삼일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1966)
17. 하나로 뭉친 독립만세(1969. 3. 1)
18. 3·1 운동은 한국 정신의 상징(1969. 3. 1)
19. 현대사조(1967~1969)
20. 한국 국민에 보내는 메시지(1970. 3. 1)
21. 스코필드 박사 병상 단상록(1970. 4. 16)
22. 박정희 신임 대통령을 위한 기도문(1963. 12. 15)

III.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회고
01. 석호필 박사의 최후 | 백난영, 전택부(1970. 5)
02. 고 스코필드 박사 간병 365일 | 태신자(1970. 4. 17)
03. 1919년 3·1 운동과 선교사들 | J. 어니스트 피셔(J. Ernest Fisher)(1975. 3)
04. 구두 밑창에 3·1 운동 사진 필름 숨겨 임정(臨政)에 전달 | 정환범(1997. 5)
05. 스코필드: 조선을 치유한 의사 | 정운찬(2004. 2)
06.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 비범한 수의학자 | 더글라스 C. 메이플스던(Douglas C. Maplesde)(2005)
07. 국립묘지에 잠든 벽안의 애국지사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 | 이삼열(2006. 3)

IV.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연구 논문
01.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와 한국인의 민족의식 | 도레타 모티모어(Doretha E. Mortimore)
02.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의 영성 | 남태욱
03. “주동자:”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와 한국 독립운동 | 바바라 리걸트(Barbara Legault), 존 프레스콧(John F. Prescott)
04. 스코필드 박사의 의료(교육)·사회선교와 3·1 독립운동 | 이만열

부록
I. 원문
II. 스코필드 박사 연보

찾아보기 | 인명
§

저자소개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지은이)    정보 더보기
3·1 독립운동의 민족대표 34인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캐나다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한국 이름 석호필石虎弼)는 세계적 수의학자로 1916년 자원하여 한국에 선교사로 왔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세균학 교수로 일하였는데, 3·1 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이갑성으로부터 독립만세 현장의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사진 기록으로 남겼으며, 독립운동을 측면에서 적극 지원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사건이 일어나자, 감시의 눈을 피해 제암리 일대의 현장을 사진에 담아 전 세계에 알렸다. 만세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과 어윤희, 애국부인회 사건으로 잡힌 사람들을 옥중 방문하였고, 감옥에 갇힌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였다. 그러나 고등계 형사의 밀착감시, 암살 미수 등 일본의 전방위 견제와 캐나다 선교회와의 갈등으로 반강제로 캐나다로 귀국하게 되었다. 캐나다에 돌아간 후에도 국제 언론에 한국에서의 일본의 만행에 대한 기고를 계속하였고, 이에 일본은 한국에서의 무단통치와 문화 말살 정책을 다소 완화하게 된다. 토론토 수의과 대학에서 그는 가축에서의 출혈 원인을 규명하여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이 연구는 오늘날 사용되는 혈액응고 방지제 디큐모랄과 비타민 K 발견으로 이어졌다. 캐나다에서 은퇴한 후 1958년부터 한국에 영구 정착하여 서울대 수의과대학, 연세대 의과대학, 중앙대 약학대학에서 세균학 등을 강의하였다. 보육원 후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신약성경반 주관 등으로 바쁜 날을 보냈으며, 이승만 정권을 비롯한 역대 정권에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정의사회 수립과 고아, 과부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여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놓인 적도 있었으나 당시 지식인들에게서 많은 존경을 받았다. 1970년 4월 12일에 별세하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묻혔다.
펼치기
김승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를 거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근현대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자료과장,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을 거쳐 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와 수탈』(독립기념관, 2009), 『개화개혁의 선구자 서재필』(역사공간, 2011), 『식민권력과 종교』(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2), 『자유독립을 위한 밀알 신석구』(역사공간, 2015) 등이 있고, 편역한 책으로는 『일제강점기 종교정책사 자료집』(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신사참배문제 자료집』 전3권(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4), 『3・1독립운동과 기독교』 전5권(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9-2020) 등이 있다.
펼치기
이항 (감수)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생화학 전공교수. 수의생화학을 강의하면서 야생동물과 관련된 보전생물학 및 정책 연구에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물을 존중할 때 인간의 건강과 복지 역시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펼치기
유진 (엮은이)    정보 더보기
2012년 현재 KAIST 신소재 공학과 교수 학력 1972. 2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 1979. 5 펜실베이니아 대학 재료공학 박사 주요 경력 1979~1981 막스프랑크 철강연구소 포스트 닥터 1982~현재 KAIST 교수 재직 1992~1995 KAIST 서울 분원 교학처장, 분원장 2001~2003 국가 과학 기술위원회 위원 2000~2009 KAIST 전자패키지 재료 연구센터 소장 2003~2004 KAIST 부총장 2001~2004 한국 전자패키지 학회 부회장, 회장 2006~현재 국제 전자패키지학회(IMAPS) 아시아위원회(ALC) 부회장, 회장 2009 국제전자패키지 학회 Stein Award 수상 2009~현재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회장
펼치기

책속에서

스코필드가 ‘한국’에 대하여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은 그의 나이 아홉 살 때인 1897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아버지는 1891년에 재혼을 하면서 더비셔(Derbyshire) 주의 ‘배즈로’라는 마을로 이사했다. 그곳의 선교사 양성 학교인 클리프 대학(Cliffe College)으로
이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897년 어느 날, 당시 클리프 대학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여병현(呂炳鉉)이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날 어린 스코필드는 여병현에게서 처음으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들었다.


그 기사는 모든 중요한 부분들이 진실이었습니다. 그 진실은 적어도 23명이 총에 맞았으며 그 후 교회에서 불에 타 죽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의 명령에 의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진실은 두 여자가 죽었으며, 한 명은 총에 맞고 다른 한 명은 집에 가라는 군인들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두 번의 칼질에 의해 몸에서 거의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또한 진실은 군인들이 근처 공주에 있는 김씨 집에 가서 노부부의 세 아들과 세 손자인 여섯 명의 남자들을 끌고 나온 뒤 그들을 밧줄로 묶어 총검으로 모두 찔러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중 가장 어린 사람은 열다섯 살 난 소년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무릎을 꿇고 자식과 손자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이것이 거부되자 그는 군인들을 향해 자신도 죽여 달라고 간구했고, 그 요청 또한 거절당했습니다. 군인들이 시체들을 불태우자 그 가여운 노인은 스스로 불더미로 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은 그것조차 그의 마음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저는 그 노인을 봤는데, 그가 미쳐 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한국인들에게 마침내 신문 발행이 허가되었다. 10년 동안 한국인들에게는 신문다운 신문이 없었다. 『매일신보』와 그와 비슷한 몇몇‘관보’는 진실을 왜곡하고 경찰 당국의 통제 하에 있었으므로, 의식 있는 한국인들은 일본 신문을 구해 읽지 않는 이상 신문을 아예 읽지 않는 편을 택했다. 아직까지 발행된 신문이 없으므로, 신문 발행 허가와 더불어 언론의 자유까지 보장될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신문 발행을 감독하는 경무총감은 상당한 자유의사 존중의 정신을 표명하였다. 일본 당국의 오랜 철천지원수인 한 정치적 망명자는 어떤 일간
지의 편집장 신분으로 한국에 귀국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또 다른 정치범도 사면을 받아 역시 같은 일간지에서 중요한 위치를 맡게 되었다.
총 세 종류의 신문 발행이 허가되었는데, 오직 하나의 신문 ―『동아일보』 ― 만이 한국인의 관심을 끌 뿐이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