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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예배/기도/묵상(QT)
· ISBN : 9788953131293
· 쪽수 : 252쪽
· 출판일 : 2018-05-23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마음 순례》 사용법
첫 번째 순례처. 항복 ―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을 만나다
01일. 내 인생 행로, 누가 정하는가
02일. 외로움, 어떻게 이겨 낼 것인가
03일.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고 있는가
두 번째 순례처. 배신 ― 가룟 유다에게 배신당하신 예수님을 만나다
04일. 나도 '친구인 체하는 스파이'인가
05일. 캄캄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빛을 볼 수 있는가
06일. 위협을 느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세 번째 순례처. 불의 ― 산헤드린 공회에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예수님을 만나다
07일. 불의한 세상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가
08일. 모함을 당해도 침묵할 믿음이 있는가
09일. '무엇'이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가로막는가
네 번째 순례처. 실패 ―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만나다
10일.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이용하는가
11일. 실패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12일. 나를 규정하는 것은 '내 죄'인가, '내 구주'인가
다섯 번째 순례처. 유죄 판결 ― 빌라도에게 재판 받으신 예수님을 만나다
13일. 악한 행동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가
14일. 예수님은 내 어떤 기대를 깨뜨리셨는가
15일. 하나님 일을 세상 방식으로 하고 있는가
여섯 번째 순례처. 굴욕 ― 채찍질 당하고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만나다
16일. 굴욕을 당한 주님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17일. 내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 아는가
18일. 모든 사람이 존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일곱 번째 순례처. 자기 부인 ―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나다
19일.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은가
20일. 붙들던 것을 다 붙든 채로도 갈 수 있는 길인가
21일. 누구를 따라가고 싶은가
여덟 번째 순례처. 수치 ― 구레네 시몬에게 도움받으신 예수님을 만나다
22일. 허다한 무리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가
23일. 무엇 때문에 남의 짐을 대신 져 주지 못하는가
24일. 날 위로해 줄 공동체를 원하는가,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원하는가
아홉 번째 순례처. 긍휼 ―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하신 예수님을 만나다
25일. 부당한 처우를 당했을 때, 희생자의 권리를 악용하는가
26일. 어떻게 하면 나보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울어 줄 수 있을까
27일. 고통을 핑계로 자기 연민에 매몰되었는가
열 번째 순례처. 용서 ―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만나다
28일.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가
29일. 내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30일. 하나님이 어떤 일로 내 예상을 깨뜨리셨는가
31일. 십자가가 어리석어 보이는가
열한 번째 순례처. 자비 ― 범죄자에게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신 예수님을 만나다
32일. '당장의 만족'과 '영원한 만족' 가운데 무엇을 추구하는가
33일. 십자가를 통해서 보면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
34일. 고통이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가, 원망하게 만드는가
열두 번째 순례처. 연합 ―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 곁을 지킨 이들을 만나다
35일. 오직 나만을 향한 하나님 사랑을 느껴 본 적 있는가
36일.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한 가족'으로 용납하지 못하는가
37일. 오늘, 누구를 사랑하라고 명하시는가
열세 번째 순례처. 죽음 ―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만나다
38일. 언제 하나님께 버림받은 기분을 느꼈는가
39일. 언제 믿음을 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꼈는가
40일. 무엇을 맡기지 못하고 있는가
41일. 신앙 때문에 자유를 잃을까 봐 부담스러운가
열네 번째 순례처. 패배 ― 장사 지낸 바 되신 예수님을 만나다
42일.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 적 있는가
43일. 어떤 죄를 장사 지내고 싶은가
44일. 아직도 죽지 못한 부분이 있는가
열다섯 번째 순례처. 평강 ―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다
45일.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의 평강이 간절한가
46일. 무엇이 가장 겁나는가
47일. 오늘, 어디서 예수님을 뵈었는가
48일. 예수님께로 가기 위해 어느 한길만 고집하는가
49일. 세상에서 대접받는 사명자가 되고 싶은가
50일. 내 상처가 누군가에게 치유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책속에서
그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다.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이 고집쟁이 목수는 도저히 전능하신 메시아요 성육신한 하나님일 수가 없었다. 제사장들은 예수님의 주장을 신성모독으로 여겨 옷을 찢고 만장일치로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고 나서 너도 나도 그분을 때리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조롱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거짓말쟁이보다도 나쁜, 악질 중에 악질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배운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성경을 줄줄 외우고 평생 그 의미를 탐구해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정작 그 성경의 하나님을 눈앞에서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친절히 알려 주시는데도 깨닫지를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인가! 이는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지식만으로는 진리를 보거나 하나님을 알아볼 수 없다. 우리가 강하고 화려한 무리 중에서만 그분을 찾는 사이, 그분은 한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나가실지도 모른다.
성전 뜰 건너편에서 예수님이 쳐다보셨을 때 베드로의 진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알고 보니 그는 견고한 반석보다 비열한 배신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에 관한 이 부끄러운 진실을 도저히 마주할 수 없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도망쳤다. 베드로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두 눈을 바라보면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우리가 꾸며 낸 거짓된 모습, 우리가 SNS에 올려서 자랑하는 그 모습, 진짜인 것으로 믿고 싶은 그 모습은 녹아내린다. 자신이 얼마나 밑바닥까지 타락했는지를 처음으로 적나라하게 보는 순간은 지독히 고통스럽고 곤혹스럽다. 하지만 기억할 것이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부인이나 약한 믿음에 전혀 놀라시지 않았다. 그분은 베드로의 진짜 모습을 전부터 계속해서 봐 오셨다. 그래서 그날 밤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할 줄 이미 아셨다. 보다시피 그날 밤 진실을 처음 마주하고 놀라서 운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베드로였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약함과 죄를 늘 보면서도 상관없이 사랑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 관한 진실을 주님보다 훨씬 못 받아들인다.
우리는 우리가 공동체로서 함께 성공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의 백성으로서 함께 고난을 당할 때 진정한 변화가 찾아온다. 데이비드 괴츠는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더 풍성하고 더 깊은 그리스도의 삶으로 들어가는 문은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직접적으로 관통한다. …… 고난과 분리된 영적 형성은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공동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물론 공동체에서 고통으로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다. 더불어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공동체 안에서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성장시켜 줄 곳이 아니라 단지 자신을 잘 위로해 줄 수 있는 곳만을 공동체로 선택한다. 진정한 기독교 공동체는 언제나 그렇듯 무거운 십자가 기둥 아래서만 만날 수 있다. 강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이 함께 서로의 팔짱을 끼고 어우러진 그곳에서 바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