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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53134577
· 쪽수 : 404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믿음'이라는 미지의 섬에 발을 내딛다
1부. '세상'과 '나'를 옳게 읽고 싶었다
― 탐험이 시작되다
: 좁은 '합리주의'의 우리를 빠져나오다
1. 지금껏 경험한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
: 탐험을 도와줄 최적의 준비물
2. '신경'이라는 지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진부한 교리 요약본이라는 편견
3. 신경,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도인가
2부. 하나님을 찾아서
― '살아 계신 창조주'와 '피조물 인간'에 대한 핵심 이해
기독교 신앙의 본질
4.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그분 이야기'의 일부가 되겠다는 결단이다
: 반석 하나님
5. '나'라는 존재의 근거이시다
: 아버지 하나님
6. 나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신다
: 창조주 하나님
7.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만드셨다
: 하나님과 인간 본성
8. '하나님의 창조'의 절정, 인간이라는 수수께끼
3부. 예수를 찾아서
― '주요 구주이신 그리스도'와 '구속받은 죄인'에 대한 핵심 이해
: 예수의 정체성
9. '역사적 지도'와 '신학적 지도'를 겹쳐야 온전히 보인다
: 예수의 성육신
10. 길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나와 연대하신다
: 예수의 속죄
11. 죄로 틀어진 내 운명, 죽음으로 바로잡으셨다
: 예수의 고난
12. 내 슬픔을 온통 짊어지셨다
4부. 성령을 찾아서
― '내 안에 사시는 성령'과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에 대한 핵심 이해
: 은혜의 성령
13. 알아서 굴러가라고 방치하는 신이 아니다
: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인의 삶
14. 하나님의 신비를 보존하다
: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
15.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마음의 눈'이 치료되다
: 성례와 그리스도인의 삶
16. 어제와 내일을 이어 주어 '지금'에 갇히지 않게 하다
: 영생과 그리스도인의 삶
17. 다함없는 천국 소망을 보고, 붙잡고, 그 빛 아래서 살라
에필로그. 불안의 시대, 마침내 '믿음의 섬'에 정착하다
감사의 글
책속에서
'믿음의 풍경'이라는 이미지는 기독교 전통 안에 깊이 박혀 있고 성경 자체에 근거한다. 출애굽과 약속의 땅으로의 진입, 바벨론 유배와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다루는 성경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고대 근동이라는 물리적 풍경을 여행하는 모습을 그려 보게 한다. 하지만 세상을 통과하는 여행에 대한 이런 묘사는 하나님의 임재와 행위라는 더 심오한 풍경을 배경으로 한 상태에서 봐야 한다. 우리는 이 땅을 지나는 순례자이자 잠시 머무는 체류자이기에, 우리가 여행하는 물리적 풍경과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여러 정보를 주고 여행 중에 처하는 상황을 해석하도록 돕는 상상 속 신앙의 풍경을 결합시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이 믿음의 풍경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다(C. S.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 마지막 부분에서 "더 높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라고 이것을 표현했다). 믿음의 풍경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세상이 더 잘 보인다.
(다소 단조롭게 제시되었으나) 여러 신경에 합의된 정통 기독교의 틀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한다. 신약성경이 시력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신앙을 통해 갖게 되는 영적 분별력'과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인간 특유의 조건'을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시력에 손상을 입은 탓에 사물을 실제 모습 그대로 보지 못한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세상과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려면 우리 눈에 드리운 베일을 벗겨 내야 한다.
신경에는 열망과 초대가 담겨 있고, 우리가 그 개별 주제들을 탐험하고 그 주제들을 아우르는 더 큰 실재를 발견하도록 틀을 제공한다. 아빌라의 테레사가 사용한 이미지를 빌려 말하자면, 기독교 신앙은 탐험해 볼 방이 많은 대저택과 같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현관홀 안쪽으로 더 들어가지 않는다. 신경은 이 믿음의 저택의 지도를 그려 주고, 그 많은 방에 친숙해지고 그 안에서 사는 법을 배워 보라고 권한다.
신경의 아주 중요한 기능은 "내가 보는 기독교는 이렇다. 따라서 이것이 기독교의 본모습이다"라는 식의 개인주의적 기독교 신앙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나름의 개인적 신조가 있고, 그것은 우리의 필요에 부합하지만 우리의 시각과 관심사라는 한계에 갇혀 있다. 하지만 신경은 기독교 신앙의 광대한 풍경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버거운, 한 개인의 능력의 한계를 초월한다. C. S. 루이스는 다른 사람들의 시각적 틀에 들어감으로써 신앙에 관한 자신의 이해가 풍성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그의 제한된 개인적 시야가 넓어지고 확장되고 풍부해졌다. "나는 내 눈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눈을 통해서도 볼 것이다. …… 어느 그리스 시에 나오는 밤하늘처럼, 나는 수많은 눈으로 보지만 보는 사람은 여전히 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만 믿는 것은 아니다. 모든 도덕적, 정치적, 종교적 혹은 반종교적 세계관은 그 핵심 신념들이 옳음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믿음을 요구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크세노파네스가 주장한 것처럼, 삶에는 "이리저리 엮인 추측의 그물망"이 담겨 있다. 어떤 믿음이나 도덕적 가치를 고수한다는 것은, 그것이 증명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옳고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자명하게 옳은 것으로 기분 좋게 믿었던 젊은 날의 무신론이 증거에 의거한 거부할 수 없는 사실 진술이 아니라 하나의 판단, 즉 세계에 대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함을 깨닫고 매우 불쾌했다.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거나 하나님의 부재를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 만큼 압도적인 논증은 없다. 굳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무엇이 가장 신뢰할 만한 믿음인지를 선택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누구나 "나는 믿습니다"로 시작하는 신조를 갖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적 헌신을 숨기거나 경시하는 쪽을 선호하는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알리고 투명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