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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54616416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11-11-07
책 소개
목차
1. 산은 높고 골은 깊다
알렌산드로스, 포용의 리더십으로 대제국을 건설하다
팁 : 한눈에 읽는 마케도니아 역사 | 영웅과 신의 이미지로 표현된 알렉산드로스
아우구스투스, 역사가 낳은 최고의 통치 달인
팁 : 한눈에 읽는 로마의 역사 | 로마의 미술시장
루이 14세, 절대왕정의 환영에 목을 맨 태양왕
팁 : 한눈에 읽는 프랑스의 절대주의 | 루이 14세의 수석 궁정화가 샤를 르브룅
나폴레옹, 시대를 창조한 위대한 전략가
팁 : 한눈에 읽는 나폴레옹의 역사 | <나폴레옹 대관식> 자세히 들여다보기
이반 뇌제, 차르는 하늘보다 높고 멀다
팁 : 한눈에 읽는 러시아의 역사 | 전제군주 차르
스탈린, 20세기 빅브라더의 가장 공포스러운 전형
팁 : 한눈에 읽는 러시아 혁명 | 러시아 혁명과 아방가르드 미술
2. History 속의 Herstory
클레오파트라, 사랑의 전략으로 일어선 권력의 화신
팁 : 한눈에 읽는 이집트의 역사
퐁파두르 부인, 파리의 스타일을 지배하다
팁 : 코티잔
매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팁 : 로트레크와 홍등가의 여인들
오달리스크, 오리엔탈리즘 회화 속 여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
팁 : 한눈에 읽는 터키의 역사 | 사실적으로 표현된 오리엔탈 여성 그림
3. 역사는 피를 먹고 자란다
전염병, 죽음의 기사 대륙을 정복하다
팁 : 역사를 흔든 전염병 | 전염병 수호성인 성 로코
왕들의 처형, 그들은 왜 심판대에 섰는가?
팁 : 한눈에 읽는 영국의 종교분쟁 | 역사화의 대가 폴 들라로슈
일차세계대전, 바람같이 사라진 한 세대
팁 : 한눈에 읽는 제1차 · 제2차 세계대전
이차세계대전의 상흔을 담은 장 포트리에의 <인질> 연작
4. 정신의 역사, 역사의 정신
카리스마, 사도 바울에서 J. F. 케네디까지
팁 : 고대 조각의 카리스마
종교개혁, 프로테스탄트 윤리로 자본주의 정신을 그리다
팁 : 한눈에 읽는 유럽의 종교개혁 | 기독교와 성상 파괴
그리스의 지성, 화포 위로 나들이한 철학자들과 시인들
팁 : 한눈에 읽는 서양철학의 흐름 | 그리스의 천재 조각가 페이디아스
로마의 지성들과 예술혼들
다비드의 역사화, 시대를 초월해 당대를 기록하다
팁 : 다비드의 역사화를 이은 장 제르맹 드루에
네이처리즘, 벌거벗고 태어난 인류, 벗는 자유를 외치다
팁 : 공공장소의 누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반 4세의 별명은 이반 뇌제(雷帝)다. 영어로는 ‘이반 더 테러블(Ivan the Terrible)’, 러시아어로는 ‘이반 그로즈니(Ivan Grozny)’라고 한다. ‘the terrible’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그로즈니(Grozny)는 ‘지엄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등의 뜻을 담고 있다. 이 별명으로부터 알 수 있듯 이반 4세는 단순히 무섭고 잔인한 군주만은 아니었고 유능하고 강력한 통치자이기도 했다. 이반 4세는 러시아를 중세적 변방 국가에서 떠오르는 제국으로 탈바꿈시켰고, 카잔의 타타르인들을 정벌하고 시베리아를 개척하는 등 러시아의 영토와 위세를 확장한 대제였다. 그의 치세 동안 러시아의 영토는 10억 에이커가 더 늘어났다. 그럼에도 피에 굶주린(점철된) 그의 삶은 오늘날 그를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군주의 한 사람으로 기억하게 만들고 있다.
이반이 이렇듯 비뚤어진 삶을 살게 된 것은 무엇보다 그가 어릴 때 겪은 ‘간난신고’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 바실리 3세는 1533년 그가 세 살 때 죽었다. 권좌에 오른 세 살짜리 아기를 대신해 어머니 엘레나가 막후 실세로 통치하게 되었는데, 그 어머니조차 1538년 사망한다. 독살설이 나돌지 않을 수 없었다.
보호자가 사라지자 대귀족 비엘스키 가와 슈이스키 가가 어린 이반을 꼭두각시로 세워놓고 마음대로 국정을 농단했다. 그동안 어린 이반과 그의 동생은 심한 학대를 당했다. 이반이 가장 사랑하고 따르던 유모 아그레페나를 떼어내 수녀원에 가뒀고(이반이 유모의 스커트 자락을 잡고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옷은 귀족 아이들이 입던 것을 물려 입어야 했으며, 이반 스스로 “극심한 빈곤 속에서 지냈다”고 할 만큼 먹을 것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혹시 이반에게 측근이 생길까봐 철저히 감시한 탓에 이반은 청각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동생 유리와만 놀았다. 그런 상황에서 대귀족 슈이스키가 아버지 바실리 3세의 침대에 앉아, 그것도 베개 쪽에 발을 올려놓고 앉아 경멸 어린 시선으로 자신에게 훈계하는 것을 들어야 했으니 그의 가슴은 늘 분노로 타올랐다.
이반이 상황의 반전을 시도한 것은 그가 열세 살이 되었을 때였다. 그것은 일종의 전격전이었다. 성탄절 무렵 크렘린 궁에서 향연이 벌어질 때였다. 이반이 벌떡 일어서서 귀족들이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책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대귀족 슈이스키를 가리켜 가장 큰 죄인이라고 힐난하고는 경비병들에게 체포를 명령했다. 귀족들이 어안이 벙벙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슈이스키는 경비병들에게 맞아죽었다. 그의 시신은 사냥개들에게 던져졌고 개들이 뜯어먹다 남은 유해는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시간 동안 그대로 방치되었다. 이어서 슈이스키와 가까웠던 귀족 30여 명이 체포되어 모조리 처형되자 귀족들은 큰 두려움을 느꼈고 어린 이반에게 복종하기 시작했다.
<이반 뇌제, 차르는 하늘보다 높고 멀다> 중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살아 있을 때부터 신화를 양산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본질적으로 신적인 존재다. 왕가 숭배는 이집트의 전통이며, 클레오파트라는 왕국의 권력과 종교를 체화한 살아있는 여신이었다. 그에 더해 클레오파트라는 전통적인 왕조숭배보다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에 대한 개인숭배를 보다 강조했기에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게 신비의 광채를 덧입을 수밖에 없었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인들에게도 매우 신비로운 존재였다. 물론 그 신비로움은 긍정적인 색채보다는 부정적인 색채를 띤 것이었다. 당대의 로마인들에게 클레오파트라는 위대한 로마의 영웅들을 사로잡은 ‘여성 공포증’을 불러일으킬 만한 존재였다. 이는 옥타비아누스가 정적이었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관계를 선정적으로 포장해 비난함으로써 보다 강화되었다. 두 사람이 죽은 뒤에도 옥타비아누스는 이른바 ‘로마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클레오파트라의 부정적인 측면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켰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요부의 이미지가 이때 이미 확고히 뿌리내렸다.
관능과 미모의 현현체로 클레오파트라를 그린 그림은 매우 많다. 주제의 측면에서 보면 카이사르와 만날 때, 또 안토니우스와 만날 때 그 요부성이 특별히 더 강조되어 그려지곤 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이 그린 <카이사르 앞의 클레오파트라>가 그런 그림이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 해는 기원전 48년이다. 당시 클레오파트라는 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의 권력 투쟁에서 패해 폐위된 상태였다. 마침 이집트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마의 지도자 카이사르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궁정에 머물고 있어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힘을 빌고 싶었다.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안정을 위해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클레오파트라의 화해가 긴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클레오파트라의 입장에서 매우 바람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두 사람에 대한 카이사르의 소환에도 불구하고 프톨레마이오스의 군사들이 가로막고 있어 클레오파트라가 그 소환에 응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클레오파트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아폴로도르라는 이름의 하인에게 자신을 값비싼 천에 말아 어깨에 이고 카이사르 앞에 가도록 한 것이다. 설마 천에 둘둘 말린 진상품, 그것도 심부름꾼이 어깨에 이고 온 진상품이 여왕이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인은 궁궐의 경비마저 속이고 카이사르 앞에 이르렀고, 양탄자를 펼치자 거기서 마법처럼 클레오파트라가 솟아나왔다.
<클레오파트라, 사랑의 전략으로 일어선 권력의 화신>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