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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54671408
· 쪽수 : 504쪽
책 소개
목차
물의 밤 _015
땅의 밤 _085
장미들의 밤 _157
피의 밤 _255
재의 밤 _357
밤 밤 그 밤 _453
옮긴이의 말 _465
리뷰
책속에서
대지는 그들에게 영원한 지평선이었다. 언제나 그들의 시선에 닿을 듯이 미끄러지는, 언제나 하늘에 닿을 듯이 사라져가는, 언제나 그들의 가슴을 붙잡지는 못한 채 스치기만 할 뿐인 고장. 대지는 무한을 향해 열린 들판, 묽은 모르타르 같은 안개와 비 속에 푹 적셔진 숲과 늪과 평원의 영지였고, 이상할 정도로 멀고도 친숙하게 표류하는 풍경이었다. 그 속에서 강은 그 느린 물줄기를 시침질하듯 흘려보냈고 그들의 운명은 강줄기를 따라 더욱 느리게 새겨지고 있었다.
“그래, 맞아, 아버지 생각이 옳아! 왠지 알아? 왜 아버지가 자기 이름을 망각과 침묵 속에 간직하려는 건지 알아? 왜냐하면 말이지, 아버지는, 아버지는 알고 있기 때문이야. 아버지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 아니, 아버지는 심지어 신이 말이 없고 심보가 못됐다는 걸 알아! 아버지는, 아버지는 죽었어, 완전히 죽었어,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도 죽었어. 그러니 그 이름을 말하면 안 돼. 말하면 불행한 일이 생겨. 아버지의 이름은 오직 죽음만이 아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그 이름을 줬다가 금방 도로 가져가는 거라고. 그리고 또, 당신 알기나 해? 신의 은총이란 건 없어. 없다고. 오직 신의 분노가 있을 뿐이야. 분노 말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 뭐!”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기세로 날카롭게 죽음이 달려드는 육신의 그 지독한 냄새를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하면서까지 자기 아내를 옆에 데리고 있겠다는 그의 고집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 곁에 머물고 싶은 욕망이라기보다는 참을 수 없는 분노 때문이었다. 이 세상이 한갓 구렁텅이에 지나지 않고 신은 그 속에 빠져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인간들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으므로, 그는 마땅히 신의 그 모든 악의를 고발하고 도처에서 인간들의 악취가 난다는 사실을 높이 소리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