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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88954689861
· 쪽수 : 212쪽
· 출판일 : 2022-11-22
책 소개
목차
서문
1장. 엄마
2장. 말도 안 되는 일
3장. 구획화
4장. 최악의 하루
5장. 정리하기
6장. 죽음의 서커스 1부
7장. 죽음의 서커스 2부
8장. 뉴노멀
9장. 좋은 것, 나쁜 것, 그리고 어색한 것(하지만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은 나쁜 것)
10장. 엄마 없이 영원히
후기. 많고 많은 사진
책속에서
나는 미숙했고 안절부절못했다. 무엇보다 아무도 이 일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게 최악이었다. 아빠와 두 여동생이 나와 같은 편인 건 분명했지만 저마다 각자의 슬픔에 빠져 지냈기에 나무 대신 숲을 보지 못했다. 친구들은 다정했고 교수님들도 놀라울 만큼 나를 잘 이해해주셨다. 그러나 과제 기한을 연장받고 한밤중에 열띤 단어 보드게임을 벌이는 건 미봉책일 뿐이었다. 남몰래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연민을 바란 건 아니었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도 질색이었다! (자기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건넨 적 있는가? …… 대단히 어색하다.) 그저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고 싶었다. 내 말에 소란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정말이지 엄마의 죽음에 대해 농담을 하면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웃어주길 바랐다.
새로운 정상은 과거의 정상과 같되, 모든 게 남모를 슬픔에 물들어 있다는 차이가 있다. 때로 슬픔은 가장 즐거운 순간에 조용히 부드럽게 찾아오는 알람이다. 때로 슬픔은 요란하다. 배를 한 방 얻어맞거나 오열하는 것처럼. 때로는 어색함이고 좌절이고 분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슬픔은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평화롭게, 가만히.
이 책을 쓰는 지금, 엄마가 죽은 지도 꼬박 십 년이 흘렀다. 내 이력서에 십 년이라는 치유의 시간이 적혔다는 의미다. 슬픔과의 싸움에서 검은띠는 못 땄지만, 모르긴 해도 보라띠 정도는 따지 않았을까? 때론 엄마가 어제 죽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생생한 슬픔은 대부분 흐려졌다. 나는 그저 엄마를 잃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우선, 아주 사소한 것부터 이야기해보자. 부패라는 건데…… 자, 나는 과학을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아직도 뇌의 상당한 부분에선, 우리 엄마가 어딘가 먼 곳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고 믿는다. 키우던 금붕어가 죽었을 때 어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거짓말을 스스로에게 하는 셈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건 알지만, 내게 ‘죽음’이란 비디오게임 속 귀여운 괴물이 쓰러져서 동전 몇 개만 남기고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일과 마찬가지다. 내가 병실을 나선 그 순간, 엄마의 몸이 그저 존재하기를 멈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