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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699044
· 쪽수 : 328쪽
책 소개
목차
I. 종일 옷을 지킨 적이 있다 _007
II. 관찰의 끝 _085
III. 화롯불 속의 알밤 _171
IV.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_247
작가의 말 _324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사다리를 잡고 물속으로 걸어내려간다. 한 발씩 디딜 때마다 몸이 물에 잠겨간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이제는 그게 두렵지 않다. 오히려 더 자유롭다.
석현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롤러스케이트가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석현은 점점 더 빨리 롤러스케이트를 탔다. 쐐―액, 쐐―액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석현은 넘어지지 않고 잘도 달렸다. 그것이 너무 기뻐서, 석현은 자꾸 웃음이 나왔다. 롤러스케이트에서 나는 소리, 드르륵, 드르륵, 쐐―액, 쐐―액, 끊어지지 않는 소리, 나중에야 석현은 그것이 전기톱 소리였다는 걸 알았다. 의료용 전기톱이 석현의 팔뼈를 잘라나가는 소리였다. 어머, 얘가 눈을 뜨고 있어요. 간호사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석현이 툭 넘어졌다. 전기톱 소리가 멈추었다.
석현은 다정했던 사람들을 한 명씩 떠올렸다.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 간호사와 치료사들. 동네 이웃들. 버스와 지하철, 편의점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석현의 친구가 되었던 아이들. 다정한 관계였지만 깊이가 없었다. 지속성도 짧았다. 그래서 끝까지 다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큐베이터를 옮겨가며 살아온 것 같았다. 그들의 따뜻함을 가식이나 거짓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병실 커튼 안쪽에서 본 할아버지의 표정처럼, 지속성이 없는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