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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57076057
· 쪽수 : 360쪽
책 소개
목차
1권
0. 늑대 서사
1. 흰머리를 풀어 헤친 귀신 바람이 불던 날
2. 발자국 조드
3. 사내들의 행복은 초원에 있다
4. 손금이 보일 만큼의 작은 빛
5. 아내를 위한 전투
2권
6. 비 오기 전의 바람, 늑대 오기 전의 까마귀
7. 늑대병법
8. 자네와 나를 푸른 하늘이 보셨네
9. 저녁에 핀 꽃이 아침에 지다
- 책을 내면서 (김형수)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아버지가 생전에 하던 말, 고원에서 부는 열두 가지의 바람소리를 식별할 수 있어야 어엿한 어른이 되는 거다, 때문에 공기의 흐름을 섬세하게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말라비틀어진 염소 가죽에 붙은 엉덩이를 슬쩍 떼었다가 다시 붙여놓는다. 간밤에도 며칠간 잠잠하던 날씨가 한없이 고요해지더니 어느 순간 바람의 숨결이 바뀌던 것, 또 간헐적으로 대기의 순환이 멎을 때마다 우웅-, 머리가 울리던 것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다시 이명 소리가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것이 틀림없는 전조였다. 날이 밝고 서너 참이 지나면 흰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 바람이 불 것이다. 그 바람이 부는 날은 하늘 아래, 초원 위에, 목숨을 가진 것들은 모두 무서워서 떤다. 덕분에 공기를 더럽히는 것들이 없어서 대평원의 기운이 티 없이 맑은 허공에 떠 있다. 그런 날 말을 타고 달리면 원기가 회복되고 하늘의 정기를 얻는다는 말을 족제비 할머니에게 들었다.
소년은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값을 하느라 성정이 더없이 차분하였다. 부모는 아이에게 등자에 오를 수 있게만 해주면 된다. 아버지가 타던 황금색 늑대귀 말에 오르면 부자가 바뀐 사실을 푸른 하늘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알겠는가? 또 알아본들 달라질 것도 없다. 황금처럼 번쩍거리는 털빛에 두 귀가 늑대의 그것처럼 꼿꼿이 서 있는 황금색 늑대귀 말이 나타나면 유목민이라면 죄다 그 모습이 사라져 안 보일 때까지 넋을 잃고 바라보기가 일쑤였다. 오늘은 아버지가 지켜본다고 생각하자, 하고는 훌쩍 뛰어서 말에 올랐다.
그때 말 등뼈 산 너머에서 늑대 우는 소리가 들렸다. (1권, 47~48쪽)
“이번 겨울에 많이 죽어나갈 거예요. 초원이 어지러울 때 잘해야 합니다.”
“전쟁인가, 조드인가?”
“아주 무서운 추위가 올 거예요. 가을가뭄이 시작되면 준비를 단단히 하세요. 백성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사람을 따릅니다.”
사실이었다. 텝텡그리는 며칠 전 기러기 떼가 남김없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 곧장 개미집을 확인했다. 개미 둥지가 꿩이 사는 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높이 솟아 겨울나기가 예삿일이 아닐 것을 일러주고 있었다. 굿을 하면서 불을 피울 때도 풀포기가 온통 하얀 재로 변해 바람에 날린다. 까마귀들도 가까이 와서 시끄럽게 굴고, 참새 떼는 날마다 난리가 몰아치기라도 하는 듯이 떠든다. 이렇게 엄청난 추위가 닥쳐오리라는 것을 하늘과 땅 그리고 모든 동물들이 예고하고 있었다. (2권, 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