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57078402
· 쪽수 : 216쪽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음악은 몸의 감각의 리듬이 특화된 것, 그 리듬이 상당 부분 사상되고 남은 것이다. 음악의 뿌리에 몸이 있다. 모든 리듬에 대한 감각과 그 예술적 표현의 뿌리에 몸이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그가 주목하는 시예술의 리듬·운율·가락도 그 근원을 끝까지 추적하면 몸의 리듬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몸의 리듬의 감각이 언어의 영역으로 분화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리듬은 몸의 움직임으로 전이된다. 모든 춤에는 마술적·종교적 의미 가 있다. 춤은 신들을 제압한다고 한다. 발을 구르는 몸짓은 신들을 불러낸다. 그 효용이 리듬을 시에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니체의 말은 다시 한 번 디오니소스 숭배 의식을 이끌었던 미메시스의 의미를 환기시켜주고 있으며, 언어의 기원에 음악이 있다는, 니체 자신도 반복해서 표명한 적이 있는 견해를 다시 들려주고 있다. 언어 이전에 음악이 있으며, 음악 이전에 몸이 있다.
「몸의 음악」
문제가 되는 몸은 결국 보이는 몸이 아니다. 보이는 몸이 보이지 않는 형태로 변형되어 남은 몸의 리듬, 몸의 음악 또는 음악적인 몸이다. 모든 음악의 근원으로서의 몸, 어떠한 내면보다 더 내적인 정념의 파동波動, 보이는 몸을 매개로 전파되는 보이지 않는 몸. 감각기관들(가령 오감)의 구체적·생물학적 몸과 무관하지 않지만, 그 몸이 추상화되어 남은 장소 없는 몸(온몸, 온몸은 손가락으로 가리켜 지정할 수 있는 장소를 갖지 않으며, ‘온몸으로 느낀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미 모든 구체적인 감각기관을 떠나 있다), 오히려 ‘나’의 외부를 지정하고 그 외부로 향해 나아가는 몸, 리듬의 몸. 그 몸은 타인의 몸과 접촉하고, 그 안에서 공명을 가져온다. 몸과 몸의 교차, 어떠한 관념이나 사유보다도 더 보이지 않고 더 내적인 정념의 교호交互, 바로 그것이 시원적 미메시스가 우리에게 지금까지도 주목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바로 거기에 여전히 예술이라는 물음과 관련해 지금까지도 주목을 요구하는 점이 있다.
「몸의 음악」
태어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최상의 답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인간이 고통에 빠지게 되는 근본적 이유는, 개체화의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지만, 바로 언어가 그 분리의 상태를 만들어낸다. 인간은 언어 덕분에 자연-세계와 분리되어 자아의 주관적·관념적 영역을 구성하고 확보할 수 있게 되지만, 정확히 그러한 분리(언어가 야기한 분리)로 인해, 자연-세계를, 특히 자신의 구도에 들어오지 않는 사물과 현상과 사건을 종속시키고자 투쟁할 수밖에 없게 된다(니체가 「비도덕적」에서 말한, 동일하지 않은 것들을 동일화시키려는 끝없는 투쟁). 거기에 인간에게만 고유한, 인간만의 진정한 고통이 있다. [……] 따라서 인간이 언어를 발판으로 삼아 자연-세계와 분리되어 관념적 영역으로 상승했다는 것은 사실상 인간이 그 영역으로 매몰(관념적 세계로의 매몰)된 것에 불과하다. 인간은?철학에서 흔히 말하듯?거기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언어에 휘둘려, 자신도 모르게 어떤 단어들과 명제들의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거기로 매몰당하는 것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숭고」